그룹명/정현구목사님 목회칼럼

나사렛사람 예수.....새롭게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4)

왕언니 2022. 2. 28. 23:05

 

 

마2:19~23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하시니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 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사람이라 칭하리라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나사렛 사람 예수

 

성경이 증거하는 그 예수님을 바로 알려면 예수님 생애 전체를 봐야 합니다.

그분의 탄생 이야기, 십자가 이야기, 공생애의 일부만이 아니라,

유년기, 성장기까지를 포함한 일생을,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맥락 그리고 더 긴 역사 속에 두고 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받으시면서 당시 유대 사람들에 의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후대에, 더 큰 역사 속에서는 예수님의 일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더 근본적인 하나님 구원역사 속에서 볼때

예수님이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는 결정적인 일을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자를 역사적 질문이라고 하면, 후자는 신학적 질문입니다.

 

우리는 두 질문을 하면서 예수님을 알아가야 하는데

그 예수님이 나와 무슨 관계인지, 나의 역사와 어떤 관계인지를 생각하는,

역사적, 신학적, 실존적 질문을 다 함께 할 때 비로소 제대로 예수님을 아는 신앙이 됩니다.

 

예수님의 유년기와 성장기의 모습을 살펴보면

유년 성장기의 자료는 제한되어 있지만, 꼭 알아야할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30세까지 대부분을 나사렛에서 보내셨기에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웠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패에 나사렛 예수라고 새겨졌습니다.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요한 19:19)

 

예수님이 어떻게 나사렛에서 사시고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게 된 것에 대한 더 깊은 의미는 없을까요?

이 두 질문은 예수님을 좀더 알게 해줍니다.

 

태중의 예수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남쪽 지역 베들레헴이었는데,왜 북쪽 갈릴리 나사렛에 살게 되셨을까요?

 

헤롯이 유대 왕으로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황제로 있을 때,

천사가 갈릴리 나사렛에 살고 있는 한처녀 ,마리아를 찾아갑니다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눅 1:31-32).

 

천사가 말한 다윗의 왕위를 가진 아들은 메시아를 말합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마리아는 처음에는 

남자를 모르는데 아기를 갖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의심을 갖게 되었고,

약혼 상태에 있었던 그녀가 아기를 갖게 되면

당시 문화에서는 돌에 맞아 죽거나, 파혼을 당하거나, 가문에서 쫓겨나거나할것이고

(물론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 이 아기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말했기에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

 

또 태어난 아이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하면

미친 여자 취급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더 두려웠지만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천사의 말을 듣고 믿게 됩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라고 말합니다

 

비록 죽을 위험도 있지만, 나를 통해 기다리던 메시아가 온다면 목숨도 드리겠다는 뜻입니다.

놀라운 결단과 헌신으로 이 말을 했던 마리아는 당시 12살에서 14살 정도였지만

착하기만한 시골 소녀가 아닌, 민족의 처한 역사에 자기를 바치려는 역사의식이 투철한 처녀였습니다.

 

마리아가 아기를 가진 후에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영이 내 구주 하나님을 기뻐하였으니”(누가 1:47).

 

이 노래의 첫 부분이 라틴어로 “Magnificat anima mea Dominum!”이어서

마리아의 찬가를 '마그니피카트'라고 부릅니다.

 

그 노래속에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신다는 내용은, 메시아가 오셔서 행하실 일들입니다.

이 노래는 출애굽때 홍해를 건넌 후 미리암이 춤추며 불렀던 노래와 비슷합니다.

 

그 노래도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로 시작하고 내용도 애굽을 심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이 노래를 불렀던 미리암의 헬라식 이름이 마리아인데

미리암이 모세의 출애굽 구원을 노래했다면,

마리아는 메시아의 죄로부터의 출애굽 구원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탄생한 예수

 

나사렛에서 잉태되셨기에 다른 일이 없었다면 보통은 그곳에서 출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그때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호적령을 내림으로

만삭인 마리아와 요셉은, 요셉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내려 가게 되었고,

호적령 때문에 모인 수많은 인파들 때문에 머물 곳이 없어 구유에서 탄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에 모여들었던 많은 이들이 돌아가면서

해산 이후 머물 곳을 찾아서 그곳에서 좀더 머물다가 해산 후 40일이 지났을 때,

남자 아이는 출산후 40일째 유대인의 정결의례를 드려야 한다는 율법을 따라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서,

가난한 가정의 예물인 비둘기를 드리는  정결의식을 치릅니다(눅 2:23-24).

 

정결예식을 마치고 나오다가 경건한, 시므온과 여선지자 안나를 만납니다

이때 시므온은 아기를 안고 찬양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 2:31-32)

 

이 아기가 이방을 비추는 빛이 되고 이스라엘의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방의 빛이 되는 것은 원래 이스라엘의 목적인데 그 목적을 이 아기가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자,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와 선물을 드리며 경배하는데

이들을 통해서 유대 왕이 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헤롯 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함으로 예수님 가족은 애굽으로 내려가서 그곳에서 지내다가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헤롯이 죽게 되자, 다시 유대 땅으로 돌아옵니다.

 

헤롯 왕이 죽은 이후 헤롯의 세 아들이 이스라엘을 분할 통치를 했습니다.

(그래서 분봉왕이라 불렸습니다. )

남쪽의 유대 사마리아 지역은 아켈레오가, 북쪽 갈릴리 지역은 빌립이,

그 너머 이두매 지역은 안디파스가 통치했습니다.

 

그런데 남쪽 유대 지역을 통치하던 아켈라오는 너무 포악해서 쫓겨나고

그 지역을 로마 총독인, (빌라도)가 직접 통치합니다.

요셉일가는 아켈레오 폭정 하의 남쪽 유대 지역 대신, 북쪽 갈릴리 나사렛에 가서 살게 되어

 

이렇게 아기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유대를 거쳐 ,잉태된 땅, 나사렛에 올라와서 살게 된 것입니다.

 

 

12살 그 이후 예수

 

 

그러다가 만 12살이 되었을 때,

율법의 의무를 준행할 책임을 갖는 정결의식,

율법의 아들이 되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내려 갑니다(눅 2:41-42)

 

마침 유월절이었기에 수많은 인파들이 모였고, 절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잃어버린후 다시 하룻 길을 내려가 삼일만에 예수님을 찾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당하고 부활때까지 ,예수님부재의 삼일을 연상케하기도 합니다)

 

 

그 삼일 동안 예수님은 성전에서 랍비들과 율법을 논하고 있었고,

그들은 예수님의 질문과 대답을 듣고 매우 놀라고 있었습니다(눅 2:46-47).

부모를 잃어버릴 때 예상되는 대부분 소년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고

많이 찾았다고 걱정하며 말하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하는 말씀은 더욱 특별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

 

성전이 자신이 거해야 할 곳이며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십니다.

이때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의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리아는 이 말을, 잉태시 천사의 말을 포함해서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눅 2:51).

그리고 소년 예수는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30세까지, 목수였던 아버지와 함께 목수일을 하며 지냄으로

나사렛 사람으로 불리웠고, 나사렛 사람이란 호칭으로 죽으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생애 33년 중에 거의 대부분을

나사렛에서 보내시고 나사렛 사람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것은 별 뜻이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더 깊은 뜻이 있는 것일까요?

 

 

 

 

 

 

예언의 성취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는,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살고 나사렛 사람으로 불리게 된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하다가 ,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메시아에 대한 성경 예언의 성취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마 2:23)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라 불린 것이 선지자 예언의 성취란 뜻입니다.

 

마태가 ‘선지자로 하신 말씀’이라고 한 것은 , 복수로, 즉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 선지자들이 메시아에 관해 예언했는데,

그 예언들이,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으로 불리게 된 것 속에 종합적으로 성취되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여러 선지자들이 메시아에 관해 말씀했는데....

 

어떤 선지자는 영광스러운 인자의 모습으로 온다고,

어떤 선지자는 고난 받는 종으로 온다고...,

어떤 선지자는 다윗의 왕위를 계승한다고,

어떤 선지자는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는다고 예언했습니다.

 

이처럼 메시아에 대한 여러 예언들 중에는 서로 모순된 것들도 있습니다.

그 다양하고 모순적으로 보이는 예언들이 한 인물 속에서 종합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가  바로 메시아인데,

나사렛 사람으로 불리우신 예수 속에서 그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메시아에 관한 여러 선지자들의 다양한 예언들이

어떻게 나사렛 사람 예수 속에서 종합적으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나사렛 출신

 

먼저 나사렛 사람이란, 나사렛 출신이란 말입니다.

당시 예수란 이름이 많았기에 나사렛 출신 예수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나사렛이란 지역명이 중립적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을 평가하는 선입견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다나엘은 친구 빌립에게서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란 소리를 듣자마자

즉각 .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라고  반응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나사렛 출신이란 초라한 이름을 꼬리표처럼 달고 사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아버지를 따라 나무와 돌을 다루며 집짓는 육체 노동자로 지내셨습니다(마가 6:3).

그렇게 노동하며 지냈던 탓인지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 보여,

바리새인들이 30세 가량의 예수를 향해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요한 8:57)라고 말한 것을 보면

예수님의 외모가 어떠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사렛 출신, 목수란 직업, 나이들어보이는 얼굴은...

배경과 출신과 풍채가 좋은 그런 모양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나사렛 사람 예수님의 모습은 이사야 53장에 나타난 메시아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는 …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1).

 

 

나실인

 

나사렛 사람, 나사렛인이라고 했을 때

그 호칭은 ‘나자르’에서 나온 나실인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자르’는 ‘봉헌하다, 바치다’는 뜻을 가진 단어이고, 여기서 ‘나실인’이 나왔습니다.

 

원래 성전에 봉사하는 제사장들은 레위지파여야만 했지만,

레위지파가 아닌 이들 중에 성전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려는 이들이 나실인입니다.

하나님은 나실인을 세우셔서 무너진 성전과 나라를 세우십니다.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실인을 일으켰나니”(아모스 2:11).

 

구약의 사무엘은 에브라임 지파 나실인이었고,

삼손은 단 지파 나실인이었으며,

사도 바울은 베냐민 지파로서 나실인 서약을 한 사람이었고....

예수님은 유다 지파로서  자신의 몸으로 성전을 세우는 나실인이었습니다.

 

유다 지파였던 다윗이 통일왕국을 이룬 후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때 하나님은 도리어 자신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삼하 7장 5, 11)

 

결국 그 성전은 아들 솔로몬이 지었지만,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지어 주신다는 그 집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아니라 ,다윗의 한 후손을 통해 세워질 영원한 참 성전입니다.

 

그런데 그 성전을 예수님이 세우십니다.

12살 때 성전에 가셨던 소년 예수님은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시며

이미 자신이 성전을 세우는 나실인이란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눅 2:49).

 

그리고 목수로서 평생 집을 지으면서 자신은 성전을 짓는 자임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공생애 기간 중에 헤롯이 중축하고 있었던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한 2:19)

 

이처럼 나사렛 사람 예수는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짓는 나실인 예수였고

사람의 마음 속에 세상 속에 짓는 일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나실인이었습니다.

 

 

 

 

새 가지, 새 왕

 

셋째 나사렛 사람이라고 할 때 그 호칭은

‘네체르’에서 나온 새 가지, 새 왕의 모습을 한 메시아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사야 11장에 메시아에 관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이사야 11:1).

 

아버지 이새의 가문에서 난 싹은 다윗인데, 그 싹이 자라 다윗 왕국이란 큰 나무가 되었지만

유대가 망하면서 나무가 밑둥 뿌리까지 잘려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뿌리에서 다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합니다. 그 가지가 “네체르”입니다.

 

그 새 왕은 이런 분입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이사야 11:2-5)

 

그 새 왕이 다스릴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이사야 11:6-10)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잘라진 나무의 밑둥에서 새 가지로 올라와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시는 새로운 왕이십니다.

새 왕을 통해서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의 참된 통치가 어떤 것인지를

온 세상이 알게 되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게 됩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에 관한 예언들이 많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4)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이런 예언 속에 나오는 아들, 아기는 다윗의 뿌리에서 다시 돋는 새 가지(네체르)입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선한 통치를 가로 막는 세상의 왕들과 달리

하나님의 선한 통치를 세상에 보여주는 새 가지(네체르)가 되신 참 왕이십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그 예수님을 바로 알기 위해

예수님이 사셨던 나사렛 동네와 연결해서 보는 역사적 지식이 필요한데

그 역사 속의 인물이신 나사렛 사람 예수를, 더 큰 역사인 하나님의 구원역사 속에서 두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역사 속의 인물 나사렛 사람 예수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구원 역사를 이루시는 고난 받는 종이신 메시아,

참 성전을 짓는 나실인 메시아,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새 왕이신 메시아이심을 알게 됩니다.

 

나사렛이란 곳에 실제 사셨던 역사적 인물에게

여러 선지자들의, 다양하고, 심지어 모순처럼 보이는 예언들이 다 이루어진 분은

오직 나사렛 사람 예수 외에는 없기에 나사렛 사람 예수를 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나사렛 예수를 머리로만 아는 지식을 넘어

그분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구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나사렛 사람 예수는, 우리에게 누구이십니까?

 

세상에 좋은 곳도 많지만 하필 나사렛이란 지역에서 평생을 보내시고

그 땅의 사람으로 불림을 받으신 나사렛 사람 예수는

나사렛 지역과 같은 초라한 내 마음의 땅에 오시고 계속 거하시는 분입니다.

나사렛 동네 사람으로 불렸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듯이,

나의 이름의 예수로 불리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그 나사렛 사람 예수는 무너진 성전을 세우는 분으로

무너진 내 마음의 성전, 무너진 이 땅의 성전을 다시 세우시는 분입니다.

 

그 나사렛 사람 예수는 죄와 악의 통치를 받아

망가진 마음과 세상에 다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선한 왕이십니다.

이 나사렛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나와 관계 있는 분,나의 주님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 나사렛 사람 예수님을 알고 만나고자 하면 ,

그 예수님은 나의 나사렛 땅으로 오셔서,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동행하십니다.

그분은 과거 역사 속에 계셨던 분이면서 나의 지금 역사 속에도 계시는 분입니다.

그 나사렛 사람 예수를 알면 그분은 우리의 마음과 삶을 바꾸시고 우리의 현실을 바꾸십니다.

 

 

 

                                                                        2022년 2월 20일 설교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