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정현구목사님 목회칼럼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며 ..(새롭게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5)

왕언니 2022. 3. 3. 23:57

누가복음 3:1~9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지 열다섯해 곧 본디오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함과 같으니라

                       요한이 세례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누가복음3:16~17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누가복음 3:21~22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 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람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우리가 아는 예수님과 성경이 말씀하신 예수님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림이나 영화에서 보면 영화배우 같지만, 성경 속의 예수님은 외모가 그렇게 매력적인 분은 아닙니다.

마리아도 조각상에서 보는 그런 여인이 아니라, 민족의식이 강한 유관순 같은 여인입니다.

우리는 문화에 의해 해석된 예수가 아닌 성경이 말씀하시는 그 예수님을 알고 만나야 합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을 볼 때에도

우리가 받는 세례와 같은 의미가 아닌, 당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는 의미를 알고 보면

성경속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왕이 가까이 왔다

 

예수님이 탄생할 때 헤롯이 유대를, 아구스도가 로마 전역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마침 아구스도가 호적령을 내림으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30세까지 지내시다가 ,어느 날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단강에 오십니다.

 

그때는 아구스도가 아닌 티베리우스가 로마를, 본디오 빌라도 총독이 유대 땅을,

헤롯의 아들들이 유대의 다른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고,

아주 부패했던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었지만

그들의 음흉함, 타락, 불의함으로 인해서

세상은 곳곳에서 아프다 고통스럽다는 외침이 다양한 형태로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세례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가 외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 3:2).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죄 용서함을 받으라는 말씀은

임종이 가까운 분에게 천국이 가까웠다고 말하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행할 왕이  우리곁에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그 다윗의 후손이신 메시아입니다.)

 

그 왕이 오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어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눅 3:4-5, 이사야 40:3-5).

모순된 현실을 바로잡아 평탄하게 만드는 구원이 온 세상에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사함으로 왕의 길을 만들라.

 

이러한 왕이 가까이 왔으니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 준비는 백성들이 회개하고 죄사함을 얻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킨 백성들이 왕을 맞는 길이기에, 요한은 왕이 오시니 회개하라고 한 것입니다.

 

왜 회개와 죄사함이 왕을 맞는 길이 됩니까?

당시 유대 땅은 정치적 억압, 문화적 변질, 종교적 타락으로 총체적으로 어려운 때였는데,

이 상황이 마치 과거 조상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때,

바벨론에서 포로로 지냈던 때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국제정세를 보고 신냉전 시대의 회귀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과거 조상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것은 우상숭배를 포함한 백성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마찬가지로 그들이 다시 바벨론 포로 상황처럼 된 것도 죄 때문이기에

그 죄에서 벗어나기위해 ,이제 하나님이 보내신 그 왕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이 죄를 회개해야 할 죄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개인적인 윤리 도덕적 죄도 있지만, 그것은 개인적 죄만이 아닌 민족적 죄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한 죄,

즉 소명을 망각하고 이방인처럼 살았던 죄를 씻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이 회개해야 할 죄는 민족의 죄인데, 이것은 요한이 세례를 베푼 요단강과 관계가 있습니다.

 

당시 죄사함의 공식적 채널은 성전에서 속죄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요단강 물에 몸을 잠그라고 한 것은

과거 조상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복의 통로와 열방의 빛이 되기 위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를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요단강 물에 몸을 잠근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했던 죄를 회개하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백성이 되겠다는 뜻으로

이렇게 지금 나라의 문제 속에  백성의 죄 ,그 죄 속에 내 죄가 있다고 생각한 이들은,

다시 오시는 왕의 백성이 되고자 하여 요단강에 와서 물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회개한 사람들은 왕이 오는 길이 됩니다.

내 탓이라고 고백하면서 요단강 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신 왕의 백성이 됩니다.

요한은 물세례를 통해서 그런 사람을 준비함으로 주의 길을 예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요단강에 와서 세례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스스로 가르치는 위치에 있거나 성전 제사를 맡고 있으면서,

회개해야 할 이들은 세리들과 종교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지,

자기들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자들을 향하여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눅 3:7)

우리도 나라에 여러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다들 인정하지만,

그 속에 내 문제 내 죄가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부분 저 사람 탓이라고 말합니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한국 교회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그 문제가 다른 이의 탓이지, 내가 제 역할을 못한 탓이라고 회개를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세례 요한이 우리 시대에 왔다면 어떤 말로 호통을 쳤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요한의 길로 왕이 오신다.

 

이처럼 요한은 모든 백성들이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왕이 오시는 길이요,

그것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는 길이라고 외쳤을 때

요단강에 물세례를 받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당시 주요한 네 부류의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문제는 정복자 로마에게 있으니 과거 마카비 형제들이 헬라와 싸운 것처럼

로마와 싸우는 것이 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열심당,

성전 제사만 잘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하고 그외에는 타협하고 지냈던 사두개인,

유대인의 종교법을 잘 지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방인을 배척하는 배타적 민족주의의 길을 갔던 바리새인,

정치도 종교다 다 타락했다며 광야에 은둔하며 지냈던 에세네파들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처럼 정치적 종교적 입장이 서로 다른 이들이 좌충우돌하고 있었던 때에

요한은 로마와 싸우는 길도, 로마와 타협하는 길도,

유대 율법에 문자적으로 매달리는 것도, 광야에 은둔하는 것도 아닌,

지금 여기에서 죄를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백성의 길을 걷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타협함으로 로마의 문화에 의해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

로마에 반항함으로 로마의 무력에 의해서 나라가 망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요한은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인 것과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로마 편에 서거나 로마에 반대하는것을 답으로 여기면

로마란 도끼가 성전과 나라란 나무를 찍어 버릴 수 있으니,

다시 하나님 편에 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성전과 나라란 나무는

후 70년 로마란 도끼에 의해서 찍혀 버리고 맙니다.

 

주님은 요한의 세례 현장에  오셔서 세례 요한이 제시한 그 길이 옳다고 인정하시고,

자신도 그 길에 들어서시고 친히 걸어가십니다.

 

 

물세례를 받으시는 예수

 

드디어 예수님이 요한의 요단강 세례 현장으로 오셔서

많은 이들이 요단강 물에 몸을 잠그고 있을 때,

그 무리들 중의 한 사람으로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가 요한 앞에 서시자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봤던 요한은 말합니다.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태 3:14)

 

이에 예수님은 요한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태 3:15)

자신이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길이요,

메시아의 일을 이루는 과정의 시작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인류구원의 공적 생애를 시작하시는데,

그 시작을 거대한 취임식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고

요단강에 몸을 잠그는 것으로 조용히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물 세례를 받으심으로, 자신을 죄용서를 받아야 할 죄인으로 여기십니다.

죄사함을 베풀어야 할 분이 죄사함을 받아야 하는 사람의 자리에 두시고,

심판을 행하실 분이 심판을 받아야 죄인 중에 한 사람이 되십니다.

나중에 죄인의 대표자로 십자가에 올라가시어 자신을 속죄의 어린 양처럼 드릴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보고 요한은 말합니다.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 1:36)

 

 

 

성령과 불 세례

 

예수님은 물세례를 받으심으로 죄인된 우리들과 같이 되셨는데,

그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죄를 해결하시는 분이 될 것입니다.

요한은 물세례를 베풂으로 죄사함을 받은 새 백성이 되어야 하는 메시지를 전하고도

실제 죄를 용서하고 새 백성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은 예수님과 비교할 때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종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에게 그런 비천한 일을 하는 것조차도 과분한 종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기 때문에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예수님은 성령과 불세례를 베푸신다고 하십니다.

자신은 요단강에서 물 세례를 베풂으로 죄사함을 얻는 새 백성이 되라고 외쳤다면,

예수님은 실제 죄 용서와 새롭게 하심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신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세례는 우리가 부흥회를 통해서 받는다고 하는 그런 성령세례가 아니라

선지자 에스겔이 예언한 그 일을 행한다는 뜻입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에스겔 36:25-28).

 

이 구절은 메시아가 죄를 정결하게 하고 새 영을 줌으로 마음까지 새롭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역을 요한은 성령세례라고 했고 그것을 예수님은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요한은 예수님은 불로 세례를 준다고 했습니다. 불세례는 심판을 말합니다.

또한 메시아가 행할 심판은 마치 농부가 추수할 때  키질을 하여 알곡은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바람에 날려 보내거나 불에 태우는 것처럼

악한 이들, 로마를 포함한 이방인들에게 그런 심판의 불을 내리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심판을 요한은 악인들에게만 내린다고 생각했지만,

메시아는 그 심판의 불을 자기 자신에게 내리심으로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시는 분이심을 그 당시는 몰랐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인데,

이런 사역을 위해 먼저 요한의 물세례를 받으심으로 죄인들 중의 한 사람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 사역의 시작이 됩니다.

 

 

하늘의 문이 열림.

 

이렇게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몸을  잠그시는 세례를 받으시고 물 위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누가 3:21-23)

 

물세례를 통해서 요단강에 몸을 잠그신 것은 죄인의 자리로 내려가신 것인데,

지리적으로도 예수님이 몸을 잠그신 요단계곡은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입니다.

이처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신 예수님은 앞으로 그보다 더 낮은 십자가의 자리로 내려가실 것입니다.

 

 

 

이렇게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자 가장 높은 하늘이 열립니다.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요,

가장 낮은 고난의 자리가 열린 하늘을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물 속으로 내려가신 후 물 위로 올라오자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했습니다.

이 모습은 물 위에 성령이 운행하사 창조를 만들어낸 창세기 1장의 창조 모습과 비슷합니다.

죄인의 자리에 내려가진 예수님은 새 창조를 가져오실 분이십니다.

이어 “내 사랑스런 아들”이라고 하십니다. 신성을 가진 존재란 의미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아들이란 뜻입니다.

 

이 땅에 이루어어야 할 아버지의 뜻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짐승의 형상처럼 살아가는 이들을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여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아들이 되시기 위해 자신을 요단강에 잠그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이런 세례 사건에 이후에 아담까지 올라가는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아담의 후손들을 하나님의 아들들,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하시는 새 아담이 되심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

나사렛에서 자라신 예수님,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을 봤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그 예수님은 당시 일세기 정치적 종교적 혼돈의 상황에 오신 분입니다.

주님은 정치적 경제적 영적 혼돈 속에 있는 이 시대에 오십니다.

당시 네 부류가 서로 길이라고 주장하듯 오늘도 서로의 주장들이 있는데,

주님은 죄사함을 받고 참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길임을 알려주십니다.

 

당시도 그랬지만, 지금도 각자가 자기 죄에서 돌이키고

하나님의 참 백성의 자리에 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탓이라고 고백하면서 요단강 물에 몸을 잠그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이 이 땅에 오는 길이 됩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요단강에 몸을 잠그면,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왕이 이 땅에 오시는 길이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복된 통치가 임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모습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을 만나러 이 시대의 요단강으로 가서

내 탓이요 자백하고 회개하면 마음을 새롭게 해주실 것이요,

우리를 통해 이 땅에 왕이 오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