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21~25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예일대 얄로슬라브 펠리컨 교수가 <예수의 역사 2000년>이란 책에서 이런 내용의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믿는가에 상관없이
예수님은 2,000년 역사에 우뚝 솟아 있는 분입니다.
만일 거대한 자석을 가지고 역사로부터 예수라는 이름의 흔적을 담고 있는 쇳조각들을 모아서 제거해 버린다면
도대체 거기에는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요?”
실제 이 천년 역사 속에서 예수님과 관련된 것을 다 제거한다면.....
예수님 이전의 더 긴 역사, 창조에서 시작된 역사에서도 예수님을 제거한다면.....
그 역사 속에서 또한 무엇이 남을까요?
이렇게 보면 이세상에서 예수님과 전적으로 무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적어도 예수님은 나에게 누구신가란 질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예수님을 알아야 하고, 믿는 사람들은 더욱더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이 예수님을 알려면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을 알려고 할 때,
가족과 출생을 아는 것이 필요하고 또 그의 이름과 하는 일을 묻습니다.
이처럼 복음서도 예수님의 출생과 족보를 말해주고, 또 예수님의 이름과 하시는 일을 알려줍니다.
예수아
먼저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예수아”, 그리스어로 “예수스”입니다.
예수 = 예수아 =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을 가진 구약의 인물이 있는데,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입니다.
많은 이름 중에 왜 하나님은 예수아(여호수아)란 이름을 붙이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알아야 그 이름의 의미를 바르게 알게 됩니다.
알다시피 예수님 탄생시에는 헤롯이 왕이었고 , 또 아우스구도가 천하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헤롯은 성전을 증축했는데, 화려한 성전 증축을 통해
백성들모두가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계신다고 믿게 하려고 했고,
아구스도는 바야흐로 자기를 통해 세상에 참 평화의 때가 도래했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들의 말이 맞다면 지금이 황금기이고 사람들은 다른 때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야 하는데
당시 유대인들은 지금 상황이 과거 애급 노예 상황이나
바벨론에서의 유수(幽囚..유배되어 갇힌 상태)와 다르지 않다고 봤습니다.
헤롯은 하나님이 보낸 왕이 아니며, 로마의 평화도 성경이 예언한 평화가 아니었기에
다시 출애굽과 바벨론 귀환 같은 사건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했는데
그것은 그 약속이 구약성경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어진 약속들이 많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이사야 60:1-3)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 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1-33)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겔 36:23)
다니엘 선지자가 예언합니다.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 음을 받으리라”(다니엘 9:24)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합니다.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스가랴 8:22)
이런 약속들은 새로운 출애굽이 일어나기를 갈구하는 소망의 불꽃을 계속 타오르게 하는 장작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예언들에 대한 해석과 그 예언들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한 생각들이 서로 달랐기에
서로 자기가 옳다고 믿고 행동했습니다.
지금 대선을 앞두고 나라 현실에 대한 해석과 문제 해결 방식이 서로 다르고 서로 옳다고 다투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게 각각 나름으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네 부류가 있었는데,
그 첫째는 사두개인들입니다.
그들의 주무대는 성전이었습니다.
제사장 사독의 후예란 뜻으로 사두개인이라고 불렸던 이들은
성전에서 제사만 잘 드리면 약속이 이루어진다고 봤습니다.
그들은 친 로마적이었으며, 로마의 비호 아래서 권력과 재물을 손이 쥐기도 했습니다.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면서 그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둘째는 바리새인들입니다.
주무대는 회당이었으며 성전 제사가 아닌, 회당 예배를 중시합니다.
회당에서 읽는 율법을 알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치하에 있게 된 이유는 그들이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함으로
하나님이 벌을 내리신 것이기에 ,
성전 제사나 대로마 투쟁보다 모든 유대인들이 율법을 잘 지키도록 하는 것이 우선적이라고 생각하고
율법을 대중화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안식일 법, 음식법과 같은 유대 율법 준수를 강조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는 에세네파입니다. 주무대는 광야입니다.
그들이 광야로 들어간 것은 당시 부정한 제사장 때문에 ,
성전이 부정하고,
로마인 때문에 유대 땅도 부정해졌다고 믿고 광야에 들어가 은둔하며 정결한 생활을 하면
메시아가 오셔서
타락한 유대인들과 로마를 멸하시고 참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거했던 곳에서 발견된 것이 '사해 사본 성경’입니다.
넷째는 열심당입니다. 주무대는 거리입니다.
과거 마카비 형제들처럼 로마와 싸우면,
하나님이 로마의 멍에를 벗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로마와 로마에 협조한 이들을 살해합니다.
이들이 십자가에 달렸는데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매달린 두 사람도 열심당원입니다.
이들이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진압당할 때 마사다 요새에서 저항했습니다.
네 부류의 사람들이 각각 성전, 회당, 광야, 거리를 주 무대로 삼았고
제사, 율법, 정결함, 혁명을 그들의 방법으로 삼았습니다.
사두개인을 제외하고 다 로마로부터 벗어나는 새 출애굽이 필요하며
그것을 가져올 모세 같은 메시아를 고대했습니다.
물론 그 메시아가 출애굽이 어떻게 이룰지에 대한 생각은 서로 달랐지만,
그들 속에 출애굽의 열망은 끓고 있었고 그것이 언제든지 폭발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이 되면 소요가 일어날까 봐 매우 긴장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두 인물이 탄생합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십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납니다.
그런데 요한은 탄생도 특별했고, 이름도 부모가 아니라 천사를 통해 하나님이 지어주십니다.
요한은 ‘여호와’란 단어, ‘은혜를 베푼다’는 “하난”이 합쳐진 단어로서,
“여호와의 은혜가 임한다’는 뜻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요하난” “여호하난”이 바로 요한이란 이름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예수님 앞서 태어날 그에게 요한이란 이름을 짓게 하셨을까요?
그의 아버지 사가랴는 지방에 있는 신실한 제사장이었고
일 년에 한 번 와서 제사를 집전하는데,
그때 그가 제사를 드리면서 간구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란 개인 소원성취가 아닌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
즉 새 출애굽을 가져오는 메시아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구하는 그에게 태어날 아이를 약속하시고
그 아기의 이름을 요한으로 짓게 하셨습니다.
이는 그 아이가 메시아가 오는 은혜를 준비하는 길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그 아이는 하나님의 은혜인 메시아가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역할을 합니다.
드디어 요한보다 6개월 뒤에 예수님이 탄생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상태, 즉 아직 약혼 상태에서 아기를 갖게 되어
요셉은 조용히 헤어지고자 생각했지만, 천사가 나타나
그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임을 알게 하며, 이름을 예수로 짓게 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태 1:21)
예수란 이름은 히브리어 ‘예수아”이고
헬라어로 “예수스”인데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을 가진 구약의 인물이 “여호수아"입니다.
구약의 많은 이름 중에 왜 이 이름을 붙이게 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온 왕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약속하신 그분이란 의미입니다.
성경이 구원을 말할 때는 언제나 출애굽 사건을 언급합니다.
출애굽 사건이 우리의 구원을 보여주는 핵심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그 출애굽 구원은 모세를 통해 애굽을 벗어남으로 시작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으로 완성되는데,
출애굽 때 백성을 최종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한 사람이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이 아기가 여호수아처럼 자기 백성을 영적 가나안에 이끄는 구원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은 유대 백성을 로마에서 건지는 정치적 구원이나,
물질 세상에서 영혼만을 건져내는 영혼의 구원만이 아닌,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져내는 구원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져낸다는 것은, 우리가 지은 윤리적 범죄를 용서해준다는 의미보다 그 의미가 넓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의 원어는 ‘하마르티아’인데,
그 의미는 “과녁에서 벗어났다, 원래의 자리를 떠났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모습을 벗어난 상태가 죄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무엇입니까?
열방의 빛이 되어야 하는 본래 자리, 복의 통로라는 본래의 사명을 망각한 상태에 있는 것인데
이 죄에서 건져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다시 본래의 자리에 둠으로, 다시 열방의 빛이 되고 사명을 행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에 그 죄는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이 죄에서 구원한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돌아가서 본래 있어야 할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즉 죄에서 구원한다는 것은
그릇된 자리인 애굽에서 벗어나는 freedom from의 구원과
하나님의 백성 됨의 본래의 자리라는 영적 가나안에 이르는 ,
freedom to의 구원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란 애굽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의란 가나안에 이르게 하십니다.
예수님 속에는 출애굽의 모세와 가나안 입성의 여호수아가 함께 있는 셈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온전한 출애굽의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시기에 이름을 예수아(여호수아)라고 붙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 탄생 직후 헤롯의 살해 위협을 피해서 어머니 품에 안겨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온 인류의 참된 출애굽을 완성하시는 분이심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예수 =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이란 말은 ‘임마누’(우리와 더불어)와 ‘엘’(하나님)이 합쳐진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이름이 어떻게 주어지게 되었습니까?
임마누엘이란 단어는 구약 이사야서 7장 14에 나옵니다.
이 구절의 맥락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유대의 아하스 왕은 하나님보다 앗수르를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람과 이스라엘이 연합해서 유다를 공격 하려 하면서 나라가 큰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런 예언이 주어집니다.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4).
이 구절의 처녀는 젊은 여자를 뜻합니다.
그녀를 통해 한 아이가 탄생할 것이며 그 아이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그 아이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 아이가 누구일까요?
이사야의 아내가 낳은 아이로, 혹은 아하스 왕의 아들인 히스기야 왕으로 보기도 합니다.
히스기야란 아들은 아버지 아하스 왕이 만든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탄생이 하나님이 유다와 함께 하신 징조가 되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젊은 여자가 아닌 동정녀에게서 아기가 태어나고
그 아기가 ‘여호와의 구원’이란 뜻의 예수란 이름으로 불려지는 내용을 기록하면서,
이것은 구약의 말씀이 성취된 것임을 깨닫고 그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태 1:23).
실제 헤롯 왕이 통치하던 당시는 과거 아하스 통치 때보다 더 심각한 위기의 때이며,
어느 때보다 참된 출애굽이 필요하고 하나님이 오셔서 함께 할 때입니다.
그런데 동정녀가 아기를 낳게 되는데,
그 아기의 출생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증거란 것,
즉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사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십니다.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한 1:14)
여기서 “거하시매”란 단어는 성막을 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과 성전을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공간인데
그런데 성막이나 성전에 하나님이 계셨지만,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막입니다.
하나님이 성육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예수님이 곧 참 성전이십니다.
예수님은 목공과 석공으로서 집을 짓는 일을 하셨는데,
공생애 전에는 사람 사는 집을 지었다면
공생애 동안엔 몸으로 짓는 참 성전, 즉 자신이 곧 임마누엘이란 성전이 된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란 임마누엘은
여호와란 이름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원어로 “여호와 엘로힘”입니다.
여기서 엘 혹은 엘로힘은 신, God란 보통명사입니다.
그러면 여호와는 무슨 의미입니까?
이 이름은 하나님이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실 때 알려주신 이름인데
스스로 있는 자, 혹은 영어로 I AM입니다. 사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이름입니다.
즉 하나님은 초월자임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이 애굽에 있는 자기 백성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모세를 보내시고,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애굽에서 이끌어내시고 성막을 만들게 하시어 함께 하십니다.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즉 조상들과 함께 하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에 무관심한 신이 아니고, 우리와 떨어져 계신 신도 아니고,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안에 거처를 정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인 임마누엘이란 이름으로 예수님이 불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사 우리와 함께 하신 분이, 임마누엘로 불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I AM, 야웨란 이름을 사용하시면서
자신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또한 이름은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 그리스도 = “기름 부음 받은 왕, 제사장, 선지자”
예수란 이름 중에 , 그리스도는 그 하시는 일과 직책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란 헬라어이고 히브리어로 ‘메시아’인데,
그 의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머리에 올리브기름을 붓는 것은 하나님이 그 직을 맡겼으니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기름을 머리에 붓는 대상이 왕, 선지자, 제사장입니다.
이들은 출애굽 한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도착한 이후,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도우라고 하나님이 세운 직책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은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고,
제사장은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을 베풀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나라가 건강하게 되게 하려면 행정, 입법, 사법부가 바로 세워져야 하듯이,
이 세 직책이 바로 세워지면 출애굽으로 시작된 구원이 가나안 땅에서 이루어지고,
그들을 불러내신 목적인 열방의 빛이 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름 부음을 받았던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그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한 인격 속에 왕, 제사장, 선지자가 되실 뿐 아니라,
그 세 직분을 온전하게 감당하십니다.
사랑과 희생으로 다스리시는 참 왕이 되시고,
우리의 죄를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려 용서하시는 참 제사장이 되시고,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온전하게 전하시는 참 선지자가 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직임을, 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임을 완전하게 감당하심으로
우리를 죄의 애굽에서 건져내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가져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 세 가지를 살펴봤습니다.
이 외에도 인자,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사람 , 주 등도 있지만
예수아(여호수아), 임마누엘, 그리스도를 포함한 예수님의 이름은 다 놀라운 비밀입니다.
대부분 이름들은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이름, 뜻만 좋은 이름인 그냥 호칭일 뿐이지만,
예수님의 이름은 호칭만이 아니라 그 이름의 뜻이 실제가 되고 현실이 됩니다.
“여호와가 구원이시다”는 예수님의 이름의 뜻대로
예수님 안에서 여호와의 구원이 있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이름의 뜻대로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임재와 만남이 있으며,
그리스도란 이름의 뜻대로 통치, 죄 용서, 진리의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그래서 놀라운 비밀입니다,
세상 그 어떤 이름도 예수님의 이름과 같은 이름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름에 값하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과 그 속의 놀라운 신비를 알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이름을 통해서 열리는 놀라운 은혜의 세계,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세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기도응답의 세계를 누리게 됩니다. 이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2022년 2월 13일 주일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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