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언니의 살아가는 이야기

보이스피싱 유감.

왕언니 2007. 6. 2. 11:24


   보이스피싱 

 

   VOICE + PRIVATE +FISHING 의 합성어로

   전화를 통해 개인정보를 취득하여 사기를 치는 범죄를 일컫는다.

 

          

 


 어제 현직 법원장이 보이스피싱으로 6천만원을 사기당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있고 아들은 공익근무를 나갔는데 납치를 했으니 돈을 입금하라했단다
 등잔밑이 어둡다더니 다른 사람도 아닌 현직 법원장이 당했으니...
 가방끈이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통장에 돈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좋은 실례가 되었다.

 허긴 한참동안 신문을 잘 안보고 TV뉴스도 꼼꼼히 듣지 않은 죄로...나도 당할뻔 했으니까....^^^

 

 

 

                                               

 

 

 5월초에 아들이 어버이날 선물로 우리부부의 핸폰을 바꿔주겠다고 했다.
 나는 자동차는 굴러가기만하면 되고 
 전화는 걸고 받을 수만 있으면 오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아직 멀쩡한데 왠 낭비냐고 사양했더니
 카메라까지 달렸지만 돈 안드는 공짜이니 걱정말라하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완전공짜는 아니고 두개에 몇만원은 준것같았다]
 
 허긴 그게 우리 아들의 독특한 효도방법이기는 하다
 [컴퓨터와 전자기기 네비게이션 핸폰 카메라등등에 의문점이나 고장이 났을때,
  어리버리한 아나로그 엄마아빠를 위해

  실시간 대기모드가 되어 큰돈 들이지 않고 가려운데를 긁어주는....]

 

 사실 변화무쌍한 IT시대를 사는 노인들에게는

 안부전화도 인색하게 굴다가   자동이체로 보내져오는  몇십만원의 용돈보다
 용어조차 어려운 전자기기의 고장을 막내아들뻘되는 사무적인 AS맨에게 신고하는것보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세히 알려주고 ,원격조정을 해서라도 가려운데를 잘 긁어주는
 효자손같은 우리 아들이 더 고맙고 자랑스러운게 사실이라...[물론 우리 아들은 용돈도 보내준다]
 같은 처지의 언니에게 은근히 자랑을 하기도 한다.

 

 암튼 새 전화를 개통하여 우리 손에 넘겨주기까지 이삼일정도의 갭이 있었는데
 그무렵 어느날 아침,나혼자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아주 시끄러운 분위기속에서 어떤 여자가 롯데백화점에서 엘지카드로 360만원이 결제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최근에 롯데백화점에 간일도 없고 카드를 분실한일도 없는데 무슨말이냐하며
 도대체 무얼 산 거냐 물으니 노트북과 에어콘을 사고 결제한거란다.


 난 그런일 없다했더니 그럼 카드 사고인것 같으니 9번을 눌러 자세한 경위를 물으란다.
 순간 주유소에서 몰래 카드를 복사하여 범죄에 쓴다는 말이 생각나 얼른 9번을 눌렀다.

 아주 심한 경상도억양의 남자가 전화를 받고

 경찰청으로 신고해줄테니 편하게 받을 수있는 핸드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때 아침운동을 마친 남편이 들어 오며 누군데 핸폰번호를 알려주느냐고 물었다.
 <글쎄 내 카드로 누가 360만원을 썼대, 경찰에 신고해준대서...>
 남편의 목소리를 들은 남자는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하겠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고
 나는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알리고 지갑을 뒤져 카드들이 안녕한가 확인해 보았다.

 

 남편은 씰데없이 카드를 죄다 갖고 다니더니 그예 일을 냈다고 핀잔이고
 그때마침 전화를 걸어온 아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전화사기일수도 있지만 만일을 모르니
 카드사에 전화를 해서 사용내역을 알려달라고 말하라 하였다.

 

 득달같이 서너군데의 카드사에 전화를 해서 사용내역을 물으니 아무 이상이 없다
 그래도 찜찜하여 엘지와 현대카드는 당분간 정지를 요청하고 그 남자의 전화를 기다리니
 감감 무소식이다.
 그제서야 항간에 떠도는 전화사기인가보다 느낌이 오는데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들이 말하는 금액은 대부분 360만원,경상도억양,9번을 눌러라,경찰청에 신고를 해주겠다.
 주민번호나 핸폰번호 ...나중에는 카드번호를 불르란다는데...
 나는 용케 그 순간에 남편이 들어와 끼어드는 바람에 미수로 끝난것 같았다.

 허긴 어느 카드사에서 이쪽에서 신고도 안했는데 얼마 썼다고 알려주며
 대민창구에 경상도사투리를 쓰는 남자직원을 쓸리도 없고...


 아하 나도 당했구나...
 시골노인들에게 전화하여 아들이 교통사고를 냈으니 합의금을 보내라고 사기를 친다더만....
 나도 너무 당황하여 핸폰을 바꾸는 시점이라

 그 와중에 무슨 정보가 샜나?하는 의심까지 하면서 찰떡같이 믿었으니..
 늙기는 늙었나보다.
 

 기는놈 위에 뛰는놈,뛰는놈 위에 나는놈이라더니

 문명의 이기가 늘어가는대로 신종 범죄들도 득달같이 따라붙으니
 그옛날 전화도 없이 살던 때가 요순시절이었나 보다.

 

 

    

 

 

 나의 유년기는 비교적 유복해서 우리집엔 1957년에 이미 [교환원에게 신청하는] 전화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내가 결혼하던 71년에도 전화없이 살고 있었다.
 시댁에도 결혼한후에 TV와 전화를 놓아드렸는데 ,한동안 우리 어머님은 전화세 많이 나온다고
 걸려온 전화만 간신히 받으실뿐[받을 사람이 없으면] 먼저 전화를 걸으시는적이 없으셨다.
 그리고도 남편이 늦으면 은근히 전화를 기다리셨다.

 

 시댁엔 전화를 놓아드렸지만 우리몫의 전화를 갖게된것은 결혼3년차가 되어서였다.
 돈으로 사고파는 백색전화와 청약신청으로 놓는 청색전화가 있던 시기였는데
 청약에도 순위가 있어서 돈이 있다고 아무나 청약대상이 되는것도 아니고...
 남편이 은행 대리라서 그나마 빠른 5순위여서 74년말에야 전화를 놓을 수있었다.


 그러나 1979년 광주로 차장발령을 받고 내려가서는 광주사태가 있던 1980년 5월 말까지
 우리는 전화 없는 조용한 세상에서 편지를 주고받는 즐거움을 맛보며 살고 있었다.

 5월항쟁이 있던  2주간의 고립된 생활이 끝나자 사방에서 전화를 놓으라고 원성이 빗발치듯했다.
 그래서 거금 120만원을  주고 백색전화를 놓았는데 한달도 못되어
 [연고지도 아닌데 내려가서 고생했다고 불러 올리는 선심성인사였는지 ]
 서울로 다시 발령이 나는 바람에 밑지고 팔아야했다.
 

 사실 전화는 족쇄다. 어쩌다 핸드폰을 잊고 안가지고 나갔을때는 오히려 편안한데
 예배시간에 깜빡잊고 핸폰을 끄지 않고 앉아 있다가는 행여 소리가 울릴까 염려되고
 핸폰을 꺼둔채 한나절을 보내거나 배터리가 다되어 먹통이 되면 중요한 전화를 못받은건 아닌가,
 오금이 저리기도 하는데...

 

 요즘엔 핸드폰이 만능 도깨비방망이다. 못하는짓이 없다.
 사진도 찍고 ,컴노릇도 하고 ,께임도 하고, 뉴스를 듣고, 카드대신 은행일도 보고,길도 가르쳐주고
 남편이나  아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위치추적도 하고 MP3 기능으로 밤새도록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그밖에 아들이 사준 내 핸드폰에는

 지하철노선,계산기,스톱워치,손전등,세계시간,전자사전,메일보내기,노래방기능도 있다.

 물론 단순모드를 좋아하는 이나이에 이 모든 기능을 다 써먹진 않겠지만
 동네산책을 하거나 산에 갈때, 잠이 잘 안오는 밤에는  베갯머리에 놓고 음악을 듣고
 아침이면 알람대신 새벽기도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은 새롭게 고맙다.
 
 
 다들 차마 말로 할 수없는 이야기를 ,상황을 문자 보내기로 타개한다는데...
 [짧은 순간에 집단으로 보내는 부고같은건 정말 유용하긴하다]
 침발라 우표붙여2~3일 걸려야받는 종이편지의 설레임은 결코 아니고
 <오빠 나 오늘 한가해,내 스타킹좀 벗겨줄래요?>이따위 외설스런 스팸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뜨니
 이제 겨우 전화번호 저장방법을 익힌 나에게 문자보내기는 아직도 배울까 말까하는 숙제다.
  
 종이에 육필로 쓰는 편지가 쌀에서 뉘 고르기보다 어려워진 지금,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면 할수록 감성은 더욱 메말라가고
 군중속에 있으면서 사람들 마음속에 고독은 더 깊어지는것 같다.

 요즘은 웬지  대학초년병이 되어 집에 향토장학금을 신청하기 위해 명동의 중앙우체국에 가서
 시외전화 신청을 하고 기다리던,40년도 더 넘은 그시절이 그립다.
 아마 그 유명한 유치환의 <행복>이라는 시가 태동하던시기였을것이다.


                           

 

         
        

          [유치환이 이영도에게 편지를 부치던 통영우체국]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중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두사람이 20년동안 플라토닉러브를 계속할 수 있었던것은
지금처럼 아무때나 어디서나 목소리를 들을 수있는 핸드폰이 없어서였을게다.
21살에 과부가 된 이영도시인과  청마에게 핸드폰이 있었다면 ...


그녀의 집을 빤히 바라보며 ...시간도걸리고 우표를 붙여야하는 편지보다 문자보내기를 했을거고
유치원을 경영했던 그의 아내 권여사가 몰래 문자정보를 볼 수도 있었을거고
그때문에 부부싸움도 많았을거고...때문에 일찍 가정파탄이 나고
둘다 교직에 있었으니 체면상 합치지는 못하고...
아름다운 플라토닉러브는 그렇게 끝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머지않아 너나없이 얼굴을 보며 전화하는 시기가 올텐데...
쌩얼로 화장실에서 시부모전화를 받아야하는 공포감은 어쩔거나...

그러나 보이스피싱같은 범죄는 어려울테니 이건 오히려 환영해야할 일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