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언니의 밥상

맞아죽을 각오로 쓰는 김치타령.

왕언니 2005. 11. 16. 21:51

 맞아죽을 각오로 쓰는  김치 타령

 

 

                                                                                                                                              


   

   
올해 김장에 관한 설문조사를 보니 응답자의 70%가 직접 김치를 담그겠다고 대답했단다.
불과 몇달전까지아무 거리낌없이 일년 내내 김치를 사먹고,
김치냉장고의 보급이 거의 7~80%에 육박하건만 김장마저 사먹는게 싸다고 하던 주부들이
갑자기 돌변하여 김치를 담겠다고 나서는건 두말할것도 없이 중국산김치에 납성분,
중국,한국김치를 막론하고 기생충알이 검출되었다는 보도때문이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봄부터 고추 심어 따서 말리고
그자리에 무 배추를 심어 내손으로 수확하여 김치를 담지 않는 바에야
100% 안전한 ,온전히 믿을만한 김치가  있을가 싶지않다.또 무 배추가 믿을만해도

그 배추를 절이는 소금 또한 중국산 암염을 船上 바꿔치기를 한다는데
나처럼 친구가 하는 임자도 염전에서 천일염을 공수해 오지 않는한 믿을수가 있느냐말이다.
[믿을만한 소금 원하시면,내 친구 염전  전화번호 알려 드릴수 있습니다]

 

내가 금년봄부터 5평의 주말농장을 가꿔본 바로는  농약없이 잘생긴 붉은 고추를 딴다는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것을 알았고,그 고추가 100% 태양초로 말려질수는 없다는것도 안다.
설사 100% 태양초가 있다고 한들 그 고추를 먼지 하나없이 깨끗하게 닦아 돌절구나  나무절구에 빻지 않는 한

쇠가루 하나 없이 고추가루를 만든다는것이 불가능하다는것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니 

지금껏 살아온대로 믿고 사먹는수밖에 없지 않나 한다.

 

봄여름에는 100% 무농약으로 상치와 깻잎 오이 토마토등을 심어
비록 볼품이 없기는 해도 미처 다 먹지 못하고 나눠주느라 바빴는데
처서가 지나고 태어나서 처음 김장배추 씨앗을 파종하여 두달이 지난 지금
우리 밭에는 한가하게 7~80포기의 배추가 자라고 있다. 그것도 물론 100% 무농약이다.

 

그러나 배추농사를 지어보니 김장배추는 벌레들이 힘을 쓰지못하는 시기에 파종하고
그 배추가 점점 추워져 들에 잡초도 힘을 못쓰는 시기에 알이 차가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농약을 쓰는 농가는 거의 없으리라 확신한다.

 

씨를 뿌리고 조금 솎아낸것 말고는 거의 손대지 않아도 잘 자라는데
[얼마전에 묶어주기는 했다] 미쳤다고 품버려 농약을 주겠는가?

다만 파종하기전에 밭에 주는 거름이 완전히 발효된 유기농퇴비가 아니면
덜숙성된 소 돼지 닭등의 분뇨가 섞여 기생충알이 검출될수 있다는데
이것 또한 우리가 지금껏 모르고 먹어왔을수도 있다.
그리고 깔끔한 가정들이 여지껏 그래왔듯이 봄가을로 구충제를 먹는다면
그렇게 온 나라가 호들갑을 떨일도 아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더 편해지자>고 줄기차게 노력해온 그대로....뿌린대로 거두고 있는게 아닐가?
10여년전까지만 해도 김치를 사먹는 일이 어디 그리 흔한 일이었는가?
가전제품의 보급이 늘어가고 엄마들이 점점 더 편해지면서
오히려 도시락이 없어지고 학교 급식,직장급식이 확산되며 파는 김치가 보편화되고
주부들이 <제일 잘 만든 가전제품 1호>로 꼽는 김치냉장고의 보급이 보편화되면서
오히려 사먹는 김치가 확대된건 아닌가 한다.
[실제로 김치 회사에서는 김치냉장고때문에 판매량이 줄어들가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판매량이 늘어났다고 한다.]

 

 

한집에 애들이 서넛도 넘고,냉장고도 없도,전기밥솥도 없고,세탁기도 없을때
시아버지 시어머니 모시고 청소기 없이 엎드려 걸레로 마루닦고
방방마다 연탄가느라 연탄가스와 동치미 국물을 번갈아 마시며 살때도 ,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나 애들마다 도시락 두개씩 싸주었고
여름이면 열무김치,가을이면 배추김치,집집마다 한접씩 김장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결혼할때 이미 500리터 냉장고에 김치냉장고까지 사고
월세방에 살아도 자동차는 굴리는데 ,
오로지 살림만 하는 여자들이 그 남아도는 시간에 무얼 하느라
다들 집에서 밥 안하고 김치 안담그냐 말이다.[참 밥도 안해먹는 사람이 김치 담글일은 없지]
우리나라가 부자나라가 되어서일게다.[원래 부자들은 자고로 손에 물 안묻히고 살았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편하게 살아온 죄값?을 지금 받는거다.
장사꾼들[양심에 털난 일부...]의 속성이 돈이 벌리면 점점 더 소득을 높이려고 혈안이 된다.
국산의 절반값도 안되는 중국고추가루가 색갈도 더 곱다는데
소매상마다 일일히 검사받고 파는것도 아닌데  가게뒷방에서 반반씩 섞어 팔아도 누가 알겠냐고요.

지금 가락시장 양념가게에 가면  중국산 50% 국산 50%라고 써붙인 팻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리숙한 우리가 그게 60/40인지,70/30인지 정확하게 판별할수 있냐고요.
믿고 사든지,추석지나고 산지에 가서 맏물 햇고추를 사다 새행주로 닦아서
머리에 이고 지고 방아간에 가서 지켜앉아 빻아오든지 둘중 하나다.

 

햇반이 시중에 나왔을때, 나는 오로지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들은 다들 감히  햇반을 사먹는걸 부끄러워할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회사 햇반이 맛있는지 잘 아는 시어머니가 현명한 시어머니인것 같은 광고가 히트를 치고나자

밥보다 열배나 어렵고 번거로운 김치를 사먹는게, 양심에 거리끼기는 커녕,

그야말로 어느회사 김치가 맛있는지,

그 김치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잘알려주는 시어머니가

고지식하게 집에서 김치 담가 며느리 아파트 경비실에 맡기고 가는 시어머니보다
백배나 현명하고 세련되고 쿨한 시어머니로 대접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도 사돈 남말할 계제는 아니다.
우리 딸,우리 며느리도 아직 김치를 담가먹는것 같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직 김치 사먹으라고 권장하지는 않는다.

둘다 일하는 엄마가 아니기에...맛이 있거나 없거나, 김치 담았는데 갖다먹을래? 물어보고,< 주세요> 하면 준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어쩌면 이렇게 믿는구석이  있으니 젊은 여자들이 집에서 김치를  담지 않고
김치담는 연습을 안하니 김치는 제일 어려운 요리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앙케이트를 보니
직장여성이 많은 2~30대는 주위에서 얻어다 먹는다가 많은 반면,
오히려 김치 담글줄 아는 4~50대 주부들이 김치를 사먹겠다는 사람들이 많았고
60대 이상은 당연히 담가먹겠다가 많았다고 한다.
[둘이 사는 사람이 많은데 먹기는 얼마나 먹겠는가 아마 다 자식들에게 퍼주려고그렇겠지..].

 

솔직히 한국의 4~50대여자들이 제일 시간도 돈도 많다.
평일에 밥값 1만원이 넘는 식당엘 가보면 남자는 쌀에 뉘만큼이고,
골프연습장이나 찜질방에 가도 80% 이상이 4~50대 여자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오정 남자들은 남자끼리 5000원 이상하는 밥집에 잘 안간다.
가서도 눈치보며 더치페이를 하는데 여자들은 무슨턱,무슨턱 하며 서로 내려고 다툰다.

남자들이 게눈 감추듯 짜장면 먹고, 추운데 나와서 자판기 커피를 뽑을때,
여자들은 고급차 몰고 가서 미사리니,양수리니 분위기 좋은 생음악 카페에 가서 만원짜리 원두커피 마신단다.

 

짜장면이나 설렁탕먹는 사오정남자들이 께름칙하다고 김치 안먹겠는가...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자조하며 우적우적 잘 먹는다고 한다.
지금 집에서 김치 안담그고 사먹던 여자들이 오히려 벌떼같이 나서서

납김치,기생충김치 운운하며 난리를 꾸미는건 아닐가?

 

비싼 식당은 당연히 직접 김치를 담근다.
여자들은 입맛은 까다로워 더 맛있는 김치를 먹기위해 교외의 비싸고 호젓한 식당을 찾아간다.
이름난집은 친절하게도 사모님들을 위해 아예 그곳에서 만든 김치를 비싸게 팔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김치를 먹는건 어쩌다 있는 일이지,
그 비싼 김치를 365일 먹고 김치찌게까지 해먹을수야 없지 않은가 

 

나도  일부 불결하고 비 양심적인 김치회사들을 이참에 정리하는건 물론 백번 찬성이다.

그러나 결국 사먹는 김치는  내가 만드는게 아니기에 그러려니 믿고 사먹는 수밖에 없다.

직접재배하고 뽑고 절여서  만들어먹지도 못할바에야 믿고 사먹는게 정신건강상 이롭다는 얘기다.

 

그리고 직접 담가먹겠다고 하시는 분들 ...이왕 어렵게 담근 김치 맛있게 담그세요.
힘들게 담았지만 맛없다고 내년에 다시 안담겠다고 손들지 마시구요.

 

그래서 팬 써비스로 제가 알고 있는 전라도식 김장지식을 알려드립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왕언니식이니,초보주부나 김치를 한번도 안담가보신분들께 권합니다.

 

 

 우선 배추를 고를때,너무 길지 않고 푸른 색과 흰색이 선명한것,
손으로 눌러보아 단단하게 알이 찬것을 고르되 흰부분이 두껍지 않고 얄팍한것이 물이 적습니다.
가능하면 한포기를 갈라 속잎을 맛보는게 좋은데
고갱이가 노랗고 병들지 않은것,씹어보아 고소하고 단맛이 나는것이 좋지요.

배추는 처음부터 칼로 두쪽을 내지말고 중간까지 칼집을 넣은후 손으로 찢는것이 부스러기가 덜생깁니다.

너무 크지 않으면 반으로 가른것에 칼집만  내세요..

김장은 절이는게 절반이죠.잘 절이기가 그만큼 어렵고 힘이든다는 얘깁니다..
배추를 절일때 맛있는 천일염을 구해야하고 12%정도의 미지근한 소금물[바닷물정도의 염도]을 먼저 풀어서

쪼갠 배추를 푹 적신후 절이는 그릇에 넣고 머리부분에 소금을 뿌리세요.

 

 켜켜로 배추를 절인후 마지막에 남은 소금물을 붓고 무거운것으로 눌러놓아요.
서너시간후에 위 아래를 바꿔주고.8시간이 넘으면 단맛이 빠지니너무 오래 절이지 마세요.
[적당한 그릇이 없을때는 커다란 김장 비닐에 넣고  양끝을 묶어 세시간쯤후에 이리저리 굴려 고르게 절여지도록한다.]

 

배추는 폭 절여지는것보다 푸른잎은 부드럽게 숨이 죽고, 흰대는 약간만 절여진게 나중에 싱싱하고 맛있죠.
절여진 배추를 서너번 깨끗하게[마지막엔 흐르는물에]씻어 광주리에 엎어서 물을 빼세요.
한시간 이상 두어서 물이 질질 흐르지 않게...

 

자신이 없으면 절임배추를 사세요.하나로에서 파는것은 너무 비쌉니다.
괴산의 여러싸이트에서 파는 절임배추가 맛있더라구요.
20kg에 25000~30000원 이고 12월5일 까지 ,5일전에 주문해야합니다.
[엄나무엑기스를 살포해서배추가 잘 무르지 않는답니다.]

 

 배추가 절여지는 동안 김치속을 준비합니다. 

 

1.절인배추 20kg[약 9포기]이면 2~3인 김장이 되는데
2.무우는 큰것으로 2개를 채썰고,한개는 토막내어 둔다 ,
3.갓1단,쪽파큰것 한단을 잘 씻어 4cm정도로 썰고,
4.멸치액젓1리터에 고추가루1kg을 풀고 , 찹쌀가루 1근을 풀어쑨죽을 식혀 섞는다.

 

5.고추죽에 노란설탕1컵을 넣고 ,마늘1근,생강150g을 갈아 넣고,
  양파도 두어개 갈아넣으면 좋다.[청각을  약간넣어도 좋다]
6.새우젓1근,생새우1근을 같이 갈아 섞으면 시원하고 감칠맛이 있다.
  [굴과 미나리는  금방 먹을것에만 넣는다]
7.무채에 5의 고추죽을 넣어 버무린후 나중에 쪽파와 갓을 섞고 통깨도 뿌려섞는다.

 8.물이 빠진배추 잎을 들추고 켜켜에 속을 넣는데 잎마다 다 넣으면 지저분하니
  고갱이부분에 많이 넣고 나머지는 양념을 고루 묻히는것에 신경을 쓴다.
9.김치통 맨 밑에 고추양념을 발라 굵은소금 약간을 뿌려 버무린
  토막 무우를 깔고 배추를  얹고 중간에 한켜 더 토막무우를 깔기를 반복한후
  맨위는 양념묻은 겉잎을 덮고 고추가루와 소금을 약간 뿌려비닐로 덮는다.

    **너무 꽉채우지 않는다. 발효할 공간을 두기위해  그릇의 80%만 채운다.

 

10.하루 지난후에 김치국물을 맛보아 싱거우면 웃소금을 조금 더뿌린다.
11.뒷베란다에서 2~3일 익힌후 김치냉장고에 넣는게 바로 넣는것보다 맛있다.

 

 

 

    ** 무우는 무청이 달린채 쓰면 더 맛있고 많을수록 김치가 시원합니다.
       다만 생무우이니 소금 조절을 잘해야합니다.
       그래서 하루 지난후에 꼭 간을 다시 보는게 안전합니다.  

  ** 전라도 에서는 멸치액젓과 황석어젓을 섞어쓰기도 합니다.
       [살은 다져서 김치속에 섞고,머리와 뼈는 달여서 국물에 섞습니다]  

 ** 굴은 안넣어도 생새우는 꼭 넣어야 달고 시원하고 맛있습니다.    

**  대파는 코가 나오고 빨리 시어지게 하니 조금만 넣든지 않넣는게 좋고
       도토리잎을 망사에 넣어 바닥에 깔든지
       달걀껍질을 넣어도 덜 시어지게 한다고 합니다만 김치냉장고가 있으니 구태여...?.

   ** 김치통이 크면 두어쪽식 비닐에 넣어 통에 담는것도 맛이 변하지 않게 하는 비결. 

 

 

 

 

 

                       팁 하나 더 총각무  동치미 담기.

 

   1. 큼지막한 총각무를 무청 서너개씩 달리게 다듬어  억센수세미로 깨끗이 씻어        [무우를 긁지 마세요.]    

     용기에 담고 굵은 소금을 뿌려 깔고 [무우분량이  용기의 1/2 정도 되게]

 

   2. 붉은 갓을  한웅큼 큼직하게 잘라 그 위에 깔고       역시 소금을 뿌려 하룻밤  찬곳에 둔다.

  3. 다음날 마늘과 생강을 2/1로 저며서 다시백에 넣어 깔고 쪽파도 갓만큼 넣는다.    

   생수에 소금과 뉴슈가나 당원[설탕 넣으면 안됩니다]을 타서        달착지근한 바닷물기분이 나면

  4. 절여진 총각무에 소금물을 붓고  다시 하루 지난후에 맛을 보아 짜지 않게 조절한다. 

      붉은 고추,삭힌 고추,청각도 넣으면 더 색스럽고 맛있다.

 

       **갓의 양에 따라 색갈이 진해집니다. 이틀즘 지나면 잘 우러나서    이쁜 색갈이 됩니다. 붉은색이 싫으면 청갓을 쓰면 되구요.

 

 
             김장의 추억.[살인의 추억 아니고...]

 

 

 

어릴적 우리집의 김장은 대략 입동무렵에 했던것 같다.
뒤란 감나무의 감잎들이 죄다 떨어지고 까치밥으로 낙점받아 매달린 몇개의 감들이
시퍼런 초겨울 하늘에 빨갛게 얼어버린 볼로 오들오들 떨고 있을때

 

엄마는 잘마른 장작을 사들여 마루밑에 차곡 차곡 쟁이고,

광구석에는  콩이며 녹두며 팥자루들이 들어앉고 광벽에는 시래기,토란대,호박오가리들이 춤추는 무희의 치마처럼 걸리고,

 

털장갑을 껴야 손이 시리지않는 볕좋은 어느날  불현듯 뒤란의 배추를 뽑고,

그것도 모자라 5분거리의 남문시장으로 가서  리어커 가득 배추를 사서 싣고 오셨다.

 

감나무곁에 불때는 목욕탕 안에, 겉잎을 떼고 뿌리를 잘라낸 배추는
큰것은 두쪽으로 가르고도  다시칼집을 내어 소금을 뿌려 네모난 타일욕조에 가득절였는데,

흰장화를 신고 한밤중에 욕조에 들어가 배추를 뒤집느라 허리가 끊어지게 아팠었다.

 

흰눈이 펄펄 내리는 이튿날 뒤란에 넓은 채반마다 배추가 죽은듯 엎드리고
금방 끓인 찹쌀풀과 젓국에선 김이 펄펄 나고,무우채를 써느라 동네 아짐들의 칼도마 소리가 요란할때,

엄마는 팥시루떡을 하고,돼지고기를 삶아 일군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셨는데
우리는 몰래 몰래 노란 고갱이만 뜯어내어 고추죽에 담갔다가 통깨 범벅을 해서먹었다.

 

남자들이 파놓은 구덩이에 묻힌 커다란 항아리는  볏짚으로 치마를 두른채
버무린 김치들이 다 들어차면 뚜겅이 닫히고 다시 볏집모자를 뒤집어 썼다.

한달이 지나 동지가 되면 맨먼저 담았던 동치미가 노란 얼굴을 내밀고 팥죽 그릇과 어깨를 나란히 선을 보이고

비로소 집안에는 김장김치냄새가 돌기 시작했는데

 

아아
깊어가는 섣달 밤에 자정을 알리는 사이렌소리를 들으며
화롯불에 구운 고구마위에,쌓인 눈을 헤치고 꺼내온 밑둥만 자른,
쨍하고 시원한 김장김치를 척척 걸쳐 먹는 맛을...
전화만 하면 새벽 두시에도 득달같이 달려오는 빨간맨이 가져오는 핏자에 어찌 비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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