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언니의 밥상

음 그래 바로 이맛이야!

왕언니 2004. 2. 5. 15:21

      

 

                  

 

 

                                      2월4일 수요일,[입춘...그리고 눈 내린 정월 열나흗날]
 
 

 오늘은 아니 이제 어제가 되었다.

 여전도회 월례회가 있었고,오후에는  
 여전도회에 광고하여 모아진 노숙자 쉼터에 보낼 물건들을 정리하여
 <늘푸른 선교회> 사람들이 차를 가지고 올때까지 차속에서  성경을 읽으며 한시간을 기다렸다.


 세시반쯤 도착한 트럭에 짐을 실어보내고
 전날 손님에게 주문받은사진복사를 하러 청담칼라에 갔지만
 기계 고장이라 일감을 맡겨놓고 가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두번씩 다리품을 판다면 기름값 때문에 남는것이 아무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손님과의 약속이니까 어쩔 수가 없다.

 

 입춘이고 보름을 하루 앞둔 정월 열나흘인데도 바람이 쌀쌀하고  잔뜩 흐린게
 꼭 사흘 굶은 시에미상을 하고 있다.
 남쪽에 눈소식이 있다더니 눈구름이 서서히 이쪽으로 옮아오고 있나보다.
 가게로 돌아와 30분이나 은행일을 보고 왔는데도 손님이 별로 없어
 남편에게 가게를 맡기고  보름 준비 하러 도곡시장으로 갔다.
 고정 멤버야  둘이지만 ,

 언제나처럼 , 딸과 아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겠기에 그냥 넘어 갈 수는 없다.
 
 예년같으면 골목시장이 오고가는 인파와 물건으로 가득차고
 봉지봉지 소분한 잡곡들과 묵은 나물,부럼을 늘어놓고 호객하는 소리로 왁자지껄할 터인데
 경기침체에 날씨까지 꾸무럭해서인지, 십리 안팎에 이만큼 싼 시장이  없음에도
 시장은 그저 그랬다.

 

 이동네에서 물건이 제일 싸고 많은 대농마트로 가려다가
 골목어귀의 곰보할머니가 벌여놓은 노점으로 갔다.


 여름에는 찐옥수수,감자떡,쑥개떡을 팔고,봄가을엔 산나물과 잡곡을 파는 이 할머니는
 아무리 후하게 쳐도 칠십은 진즉에 넘었을것 같은데 다행히 쇠심줄만큼 건강하셔
 일년 내내 비가 오나 눈이오나 과일가게 한켠에 남루한 파라솔 하나 펴놓고 개근이시다.


 <어서 와  머 주까?>
 <늦게 와서 그런가? 나물이 별로 없네요?오늘 장사 잘하셨나봐요>
 <어디..? 작년보다 들 가꼬와 그렇지, 통 손님이 없어.>

 

 조금씩 살때는 가능하면 이 할머니의 물건을 팔아주는데
 오늘은 내가 사려는 물건들이 품절된게 많다.
 할 수없이 말린고구마순과 고사리 시래기 남은것을 떨이하고
 찹쌀 한되와 ,수수,기장,차조,를 샀다.
 아무래도 빠진것들을 추가해야 하겠기에 다시 대농마트로 가서
 불린 취나물,다래순,곱슬이 콩나물,가을무,달래와 곰피를 사고
 입구의 방아간에서 거피한 들깨가루를 샀다.

 

 여덟시가 되어 가게문을 닫고 차에 오르려는데 드디어 하나둘씩 눈송이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타워팰리스를 지나 매봉터널로 들어서니 딴 때보다 차들이 많이 밀려있다.
 수요일인데 왜그러지...?하며 주춤 주춤 미등행렬을 따라 터널을 나오니...엄마야...!1
 그 터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분당으로 들어선 이쪽은 제법 굵은 함박눈이 앞이 안보이게 차창으로 달려들고 있었고
 그새 길 좌우에 서있는 나목이된 가로수와 소나무에 소복하게 얹힌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치 새로 산  대형 크리스마스 카드를 펼쳐보는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나 할머니가 되면 얼굴 따라 마음도 같이 늙어
 눈이 오거나 비가 내린날도 ,바람이 불거나 하늘이 흐린날도,
 그저 날이궂어 삭신이 쑤신다거나 빨래가 안말라 성가시다는 류의 감정만 남아 있는줄 알았다.
 그러나 회갑이 내년으로 다가온, 손주가 둘 반이나 있는, 올데 갈데 없는 할머니도
 차창 밖 가로등밑 함박눈과 꼬마전구로 칭칭 감은 하얀 가로수를 보니
 마치 열서너살 시절 처음 받았던, 금가루 묻은 크리스마스카드를 펼칠때의 설레임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젊은 엄마들 잊지 마시라]
 문득 돌아가신지 오랜 엄마에게 엄청 미안한 생각이 든다.

 

 판교를 지나자 눈발은 좀 가늘어 지다가 우리 동네에 오자 눈은 거의 멎었지만
 길은 많이 질척거리고,미끄러워서 집에 도착하니 열시가 다 되었다.
 가게에서 대충 저녁을 먹어둔게 얼마나 다행인지...
 옷을 벗자 그냥 퍼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사들고 온 보따리를 어쩔것인가...


 나는 밤일?에 이골이 난, 타고난 우렁각시인것을 ...

 남편은 습관처럼 인터넷 바둑에 빠지고, 나는 보따리를 풀어놓고 보름준비에 돌입한다.

 

 

            


 
 
 우선 콩나물을 씻어 생수를 넉넉히 부어 뚜껑을 열어논채로 끓인다.
 [이렇게 끓여야 비린내도 나지 않고 아작아작하다.
  간은 끓은 다음에 굵은 소금으로 맞추고, 그때 다진 마늘과 둥글게 썬 홍고추를 넣는다]
 우리집 식구들은 이렇게,아스파라긴산이 듬뿍 든, 하얗게 끓인 담백한 콩나물을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얼음이 서걱거릴때 떠서 동치미 먹듯 먹는것을 좋아한다.
 특히 주환이가 좋아해서 올때마다 며느리가 퍼가곤 하는데
 요즘엔 진혁이와 준혁이도 외할머니표 콩나물 매니아가 되었다.

 

 콩나물이 끓는 동안, 사온 나물들을 더운물을 갈아가며 서너번씩 헹구고
 냉동실에서 호박오가리도 꺼내 물에 살짝 불려 건져 꼭 짜놓고
 무우를 수세미로 잘 씻어 채를 썰어 둘로 나눈다.
 반은 굵은 소금과 마늘만 넣고 하얗게 熟무나물을 하기위해 약한불에 올려놓고
 반은 고추가루,마늘,생강,액젓,쪽파 넣어 채나물을 한다.


 멸치 다시를 내서 다시마물과 합하여 맑게 끓이다가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맞추고
 깍두기처럼 썬 두부를 넣어 끓이다가 들깨가루를 넣어 두부나물?을 완성한다.
 [이것 또한 우리 엄마에게 전수받은 친정표 음식인데 식어도 담백하고 맛있다.]

 

 꼭 짜둔 취나물과, 다래순만은  국간장,마늘,깨소금,들기름을 친후
 내일 아침에  볶기위해 간이 배도록 잘 주물러 두고
 고구마순,고사리는 두 나물처럼 잘 무친후 후라이팬에 볶다가
 걸쭉하고 부드럽게 하려고 찹쌀가루와 아까 사온 들깨가루를 넣어 다시 볶았는데
 아무래도 예전 맛이 아니다.

 

 원래 전라도에서는[특히 정읍지방] 취나 달래순,피마자잎 같은 마른 잎나물을 제외하고는
 토란대,호박오가리,가지오가리,고사리,고구마순 같은 길다란 줄거리나물들을
 날들깨를 불린쌀 조금과 같이 섞어 물붓고 믹서에 갈아 체에 받혀 그 국물을 넣어 부드럽고 고소하고 담백한 전라도식 특유의 나물을 만들어 먹는데
 [그러고 보니 올해는 토란대가 빠졌다.]
 오늘은 늦은 시각이라 번거롭기도 하고 한밤중에 믹서돌리면 시끄러울까봐
 약식으로 거피한 들깨를  샀더니 영 아니올시다이다.

 

 <이것좀 먹어봐요.>
 그렇거니 샘플을 한수저  떠서  남편에게 시식을 시키니...
 입맛은 귀신같아서 금방 알아챈다.
 <그맛이 아닌데...?그래도 먹을만해,어 열두시가 다됐네 그만하고 잡시다.>

 

 아무리 남편이 생각해주는척 해도,  할 일을 두고 는 잠이 오지 않는 나는
 한가지 남은 시래기를 다듬으려 물에서 건져 만져보니, 이건 정말 넘 안 삶아져 쇠심줄같다.
 할 수없이 다시  삶으려고 물 부어  불위에 올려놓는다.
 집에 김장때 삶아 깨끗이 말린것이 있건만 삶기가 귀찮은 생각이 들어 그냥 샀더니
 이건 일을 하나 더 보태고 있다.

 

 삶아지는동안 멥살,검은 쌀,율무,현미찹쌀,검은콩을 씻어
 아까 씻어둔 찹쌀과 조,수수,기장과,엊그제 사둔 파란콩,돔부,작두콩을  합하여
 바로  밥을 할 수있도록 압력솥에 앉혀두었다.
 내일 아침 팥물까지 섞어 지은 우리 밥은, 오곡밥이 아니라 까무스름한 10곡밥쯤 될것이다.

 참 별일이다.30분이나 지나 시래기를 건져 껍질을 만져보았지만 여전히 딱딱하다.
 할수 없이 나중에 국이나 끓이기로 제쳐놓고
 한시가 다된 시각에 시래기를 압력 솥에 얼른 삶아 건져 식혔다.
 작년 요란하게 김장할때 잘 삶아 말린탓인지 껍질을 깔 필요도 없이 알맞게 부드러워
 양념하여 볶으니 고기맛 저리가라 이다.

 

<음 그래 이맛이야!>


 날마다 식탁에 오색을 갖춰먹으면 건강하다니까...
 머리속으로 색갈맞춰 내일 아침 상을 차려본다.

 고사리,고구마순,[갈색]달래순,시래기나물,[진갈색]두부나물,무우나물 [흰색]
 콩나물[노랑]...휴 겨우 아홉가지 나물 채웠다.
 봄동[초록]과 무우생채[빨강] 김 [검정]

 그리고 열가지쯤은 섞인 잡곡밥...

 

 비록 "내더위..!"하며   더위 팔러올 새끼들이 곁에 없지만

 아침이니 격식대로 귀밝이술을 먹지야 않겠지만

 이제 몇개의 부럼만 곁들이면  그런대로 보름 흉내는 끝이다.

 

 역시 무엇이건 귀찮지만, 번거롭지만 ,제대로,법대로,식대로 해야
 보기도 좋고 제맛을 낸다.
      

 

 

      

    
 
 

 

 

 오늘밤 일을 하며 라디오로  자살 소식을 여러번 들었다.
 특히 부산시장이 구치소 선풍기에 속옷을 찢어 만든 끈으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얘기는 입맛을 쓰게했다.


 오늘도 단 몇달,몇일을 더 살기 위해 고통스럽게 항암치료를 받는사람도 많고,
 장님으로,농아로,하반신 마비로 불편하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얼마나 많은데
 요즘 들어, 머리좋고 가방끈 길어 승승장구 양지쪽에 살던 명망인사들의 ,
 백번 양보해도 의로운 죽음이라 칭송받지못할 ,

 궁지에 몰린 도둑고양이 같은 <자살>이 늘고 있다.

 그 중에는 ,남겨진 식구들이 겪을 모멸감, 괴로움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감히 자기 손으로 살인하는격인 크리스찬도 있을것이다.

 

 성경에 보면 <...큰집에는 금그릇 은그릇도 많지만 > 중요한 것은
 그 그릇들이 깨끗이 씻겨있지 않으면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는 부적합하다는 말씀이 있다.
 아무리 비싸고 삐까번쩍해도 오물이 묻어있는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을수야  없다는 진리의 말씀이다.

 나도 대충 씻어 끓인 팥죽이, 아무리 맛이 있어도 , 와지끈 흙이나 돌을 씹는 바람에  그맛을 망쳤던 경험이 있다.

 

 맛있고 피가 되고 살이되는 밥을 짓기 위해서는 쌀을 잘 씻어 조리질을 해야 하듯 

 해마다 직장에서 건강 진단하듯, 그때마다 청렴도도 검증하는 제도가 생겼으면 좋겠다.
 아니 X-Ray를 찍을때, 갈비뼈 속에 숨은 黑心도 같이 찍히는 기계를 발명했으면 좋겠다.
 해마다 검증하면 적어도 똑똑한 관리들이, 자기속옷으로 목을 매는 죽음만큼은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새총리를 뽑을때 그렇게도 철저하게 검증에 검증을 요구하고,
 침을 튀기고 핏대를 올리던, 청백리의 화신인양 고고한척하던 그 선량들이
 시침 뚝 따고 영수증도 안주고 공갈협박으로 차떼기한 돈들을
 이제는 할 수없이 黨舍 팔아 갚겠다고 꼬리를 내렸다고 한다.

 

 이렇게 비참하게 추하게 구겨지는 선량들을 수없이 보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집안 사람이기도 한,

 이X진씨를 비롯한 몇명의 잘나가던 아나운서들이
 또 금배지를 향해 우루루 출사표를 던졌다고 한다.

 

 아아 이 배신감...
 왜 모두들 그렇게도 한치 앞을 모르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이기를 서슴치 않는지...

 지금은 절대로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 ,
 마지막 보루 손X희 아나운서를 잘 지켜 볼 참이다.
 그 만은 본래의 그맛을 끝까지 잘 지켜내기를 바라면서...

 <오오 부루터스 너마져...>하는 날이 절대로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