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요즘 매일 오후네시쯤 산책을 합니다.
코로나시절부터 해온 만보 걷기의 일환인데 한참 더울 때는 해가 지고 나서 집을 나서다가
날씨가 많이 선선해지면서는 시간을 조금 앞당기기 시작해서
며칠 전부터는 네다섯 시쯤 집을 나서게 되었는데
소매 끝으로 스며드는 가을바람과 함께
느티나무나 은행나무잎이 어느새 노란 옷으로 바꿔 입은 것을 보며
아.. 어느새. 가을이구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20년전 민속촌 옆으로 이사 온 후, 얼마 안 되어
민속촌의 사계 를 사진으로 찍은 것을 보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벚꽃이 만개한 봄사진이 제일 좋다고 말씀하셨지만
제 눈에는. 잎도 없이 꽃만 핀 , 꽃대궐 같은 사진보다,
울긋불긋 단풍진 사진이 훨씬 아름다웠습니다.
마치 거친풍파를 겪지 않고, 잎도 없이 꽃으로만 피었다가 지는 사람에게는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못 느끼지만,.
여린 새순과 , 화려한 꽃시절도 다 지난 후, 푸르고 힘찬 녹음의 계절도 지나
드디어 겨울을 앞두고 , 처연히 물들어 완숙을 뽐내는듯한
울긋불긋 단풍과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그렇게 아름답더라고요
이렇게
민속촌으로 향해 들어가는 길은 가로수가 모두 은행나무라서
가을이 되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 거리가 됩니다
민속촌 입구뿐 아니라 우리 동네 가로수는 거의 은행나무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여기뿐 아니라 서울도 오래된 동네의 가로수는 거의 은행나무가 많답니다
그동안 많은 도시가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심어왔던 이유는
병충해가 거의 없고, 잎이 무성하여 짙은 그늘을 제공하고, 수형이 크고 깨끗하며 ,
오래 살고 성장도 빠르고 고목이 되어도 아름답고 품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래된 나이를 자랑하는 나무는 은행나무가 특히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은행나무는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로
수령은 1100년이고, 높이는 41m, 둘레가 11m나 된다고 하며,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성균관 대학교의 은행나무도 450~500년? 의 수령을 자랑하여
서울특별시 기념물, 승정원일기, 신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될 정도이고
또 충북 청주의 압각수는 수령이 900년에 높이가 30m, 둘레가 8m나 된다지요
아마 나무 중에 은행나무가 제일 오래 살아 여러 기록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어서도
품위 있는 바둑판이 된다든지 침대로 만들어져 향기로운 꿈을 꾸게 해 준다든지...^^
눈을 즐겁게 해주는 외향 말고도
은행열매에는 레시틴 아스파라긴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피로해소, 강정효과가 뛰어나 , 남성정력을 향상하고
또 항 산화성분이 함유되어 각종질병 노화를 예방하고 , 체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시키는가 하면,
혈액순환을 개선시켜 , 혈관에 노폐물 쌓이는 것을 억제하고 ,
기관지염개선, 치매예방, 야뇨증 개선, 뇌혈관건강에 도움을 주어
기억력증진, 골다공증 예방에도 도움이 된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보다 잘 못살던 , 2,30년 전 에는
살림에 보태려고 은행을 잔뜩 주워서 배낭에 넣고 버스를 탔다가
고약한 구린내 때문에 기사아저씨에게 하차명령을 당하는 아줌마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지자체에서 청소부들을 시켜 , 열매가 떨어지기 전에 미리 강제로 열매를 떨어뜨려
사람들이 밟거나 주워가기 전에 처리를 하기도 하고
다들 그때보다는 잘 살아선지 ,
은행이 좋은 줄은 알지만 그 고약한 냄새 때문에 껍질 벗긴 것을 사 먹기는 해도
가로수 주위에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워 가는 사람을 보기는 어려운데....
며칠 전에 보니 우리 동네 기흥레스피아로 가는 개천길 양쪽의 은행나무 가로수 밑에서
떨어진 열매를 주워 , 바로 아래 개울에서 아예 껍질을 벗겨 씻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개울 옆을 지나가면 수풀 어딘가에 남아있는 구린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노랗게 물이든 은행잎을 보면서
이렇게 보기는 좋아도 너무 가까이하면 냄새를 풍기는...
손질하기 전의 떨어져 밟히는 은행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
힘든 과정을 지나 잘 손질하여 구워 먹고, 약밥에 넣어먹어 보면 , 그 맛이 기가 막혀....
잘 달래고 사귀면 이모저모 쓸모가 많고 건강에 도움을 주는...
보약 같은 친구도 있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 쉽게 사귀기는 힘들지만, 사귀고 나면 진면목을 깨달아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나를 더 이롭게 하는 사람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잠깐 사귀었다 헤어지는 사람보다
사귀기 힘들어도 한번 사귀면, 깊은 우정을 나누고
오래오래 늙어서도 잊히지 않는 은행나무 같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오래 헤어져 있었지만,
오랜 후에 만나게 되어도
그때 그 자리에서 성숙한 모습으로 만나
서로 은발을 휘날리며 웃어주는
속 깊은 은행나무 같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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