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문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이해와 실천
로마서 8:19~27...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자연의 심각한 신음소리
지난주 전국적 폭우가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피해도 많이 있었는데 빨리 끝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폭우가 그치면 이어 폭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매년 이런 폭우와 폭염의 여름을 보내야 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하지만 더 큰 걱정은 이것이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의 아주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온 세계 곳곳에 이상기후 현상에 더 자주 더 강하게 일어날 것이고,
이것이 지구를 위협하는 거대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미 지구 곳곳의 이상기후가 뉴스를 통해 보도되고 있는데,
캐나다 산불에 이어 지난주는 14일간 43도에 육박하는 미국 애리조나의 기록적 폭염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상기후 징후는 땅과 하늘과 바다에서도 일어나는데,
땅의 사막화, 대기 온난화, 바다 수온 상승, 남극, 북극, 그린란드의 해빙과 해수면 상승,
몰디브 투발루 같은 나라의 영토 수몰, 물고기의 아파트라고 하는 산호초의 백화현상,
대양 곳곳의 플라스틱 섬, 고기의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미세 플라스틱,
기후 관련 뉴스들 제목만 열거해도 정신이 아찔한 정도입니다.
지난 5월 ‘세계기상기구(WMO)’는 이대로 가면 앞으로 5년 이내에
기후변화의 마지노선이 깨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섬뜩한 경고에 대해 사람들이 취하는 두 가지 태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비록 위기이긴 하지만 기술을 통해 위기는 해결될 것이란 낙관적 견해입니다.
트럼프와 같은 사람은 파리 기후 협약에서 탈퇴하고 기후위기담론 자체를 가짜 뉴스라고 말하면서
지금과 같은 방식의 삶을 살아도 문제가 없다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되면 온 세계가 어떻게 될까 매우 걱정됩니다.
또 하나는 이 기후 위기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시급한 ‘비상사태’인데
이대로 가면 티핑 포인트를 넘기게 되고 그다음은 절망적이라는 비관적 견해도 있습니다.
어떠한 것이 맞을까요?
미래가 비관적 혹은 낙관적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기보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믿고 산다는 것을, 성경 읽고 기도하며 자기 영혼을 살피는 것만으로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믿는 것은 삶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직장의 의미를 아는 것도 포함하고,
나아가 환경문제를 안고 고민하면서 실천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것이 예수 따르는 제자도인데, 심각한 환경문제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위기를 만든 30년
먼저 이런 기후 위기를 초래한 원인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회의)가 발표한 도표가 있습니다.
이 표를 보면 170년간의 기후증감을 그래프로 표시했는데
그 1850년도가 산업혁명의 시기인데 이때로부터 대기 온도가 꾸준히 상승하다가,
지난 30년 동안 급격히 상승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급격히 상승한 그 30년은 1989년 냉전 종결 이후의 30년입니다.
그때 공산권이 붕괴되면서 온 세계는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따라온 세계가 거대한 공장이자 시장이 되었고,
경제 활동이 확대를 통한 자원의 소비가 급속하게 일어났습니다.
그 30년 동안 사용한 화석연료가 지금껏 사용한 화석연료의 약 절반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급격한 기온 상승을 가져온 문명과 삶의 방식을 바꾸기가 매우 힘들기에
계속 온도가 상승할 가능성이 매우 많다고 합니다.
만약 그 30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을 조금씩 줄여만 갔더라도 오늘의 위기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며,
우리가 경제 호황을 누렸던 30년이, 기후 위기의 측면에서 보면 골든타임을 놓친 잃어버린 30년으로 보기도 합니다.
100년도 안된 지금의 삶의 방식이 이토록 지구환경의 파국을 논할 정도의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지속된 두 원인
기후 위기를 가져온 것에는 이런 급격한 사회적 경제적 변화도 있었지만,
이런 변화를 만든 더 깊은 원인도 있습니다.
그것은 피조세계의 의미를 망각한 것입니다.
일부 종교나 철학 중에 물질세계를 헛된 것이나 열등한 것으로 보고,
구원을 물질세계를 벗어나는 것에서 찾았습니다.
성경은 피조세계를 그렇게 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당 기간 교회가 창조세계를 죄 많은 곳으로,
불타 없어질 곳으로, 구원은 영혼의 세계로 가는 것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떠나야 할 죄 많은 세상은 창조세계가 아닌, 창조세계를 악하게 사용하는 타락한 인간 사회구조인데
잘못된 가르침은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감을 망각하게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세속 사회는 피조세계를 아무런 신성한 의미도 없는 단순한 물질로 보고,
인간이 맘대로 사용되는 주인 없는 물건처럼 봤습니다.
그래서 피조세계는 인간에게 쓸모 있느냐의 효용가치나,
인간이 원하는 다른 가치와 교환이 되느냐의 교환 가치의 측면에서만 볼뿐
피조세계 그 자체가 가진 고유의 가치와 의미는 없다고 여겼습니다.
이런 피조세계를 보는 관점은 지금의 반환경적인 문명의 형태를 만들게 했고,
그런 삶의 방식이 경제지상주의, 신자유주의, 소비주의, 편리주의, 인간중심주의와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런 반환경적인 인간 문명의 중요한 특징은
창조세계의 신음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오로지 인간의 욕망 소리만 듣고
그 욕망을 채우는 무한고도성장이란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편리와 즐거움이 최상위 가치가 되어
그것을 위해 환경을 희생시키는 쪽으로
과도한 에너지 소비사회, 탄소배출 사회, 쓰레기 배출 사회를 만들어 온 것입니다.
불완전한 대안
그러다가 지금 지금의 기후 위기를 만났지만,
이 위기는 기술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반환경적 삶의 방식은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차를 전기차로 바꾸거나, 재생에너지를 늘이거나,
견해 차이는 있겠지만 원전을 더 만들거나, 쓰레기 재생기술을 개발하는 등의 기술들이
환경 위기에서 구해주리라 기대하면서 지금과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해결되면야 좋겠지만, 과연 그렇게 될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기술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하나의 문제를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기자동차만 해도 배기가스 문제는 해결한다고 하지만,
전기 생산을 위한 시설, 배터리 제조를 위한 시설과 원료채굴을 위한 에너지는
어디서 만드는지, 또 배터리 폐기와 관련된 오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전기 생산과 충전시설이 가능한 선진국은 전기차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런 여력이 안 되는 많은 개도국은 가솔린차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될 것이기에,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앞으로 전기 자동차가 늘어나도
그로 인한 줄어들 탄소 배출량이 전 지구적으로 보면 불과 1퍼센트 밖에 안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최근 대화형 인공지능도 유익한 점도 있지만 해가 되는 면이 더 클 것이라고 보고
인공지능 개발자가 제프리 힌튼 교수는 이 연구에 대해 후회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기술에 의존하는 기술낙관론은 매우 불완전한 대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온 지구가 신음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곳곳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이 지구 세계는 버려야 할 곳, 떠나야 할 곳으로 가르치는 도피주의적 종교를 갖는다면,
오직 인간의 욕망 소리만 듣는 물질문명의 길을 계속 간다면,
불완전한 기술적 대안에만 의존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까요?
사실 기후와 생태학적 도전에 직면한 지구에게 가장 위험한 요소는 다름이 아닌 바로 인간이란 요소입니다.
인간이 가장 위태로운 요인인데, 이 인간이란 요인에 중요한 변화가 없는 한,
기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본문은 피조세계가 신음하고 있는데, 그 신음하는 피조세계가 기다리는 것이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로마서 8:19)
하늘에서 천사가 나타난다는 말이 아닙니다. 피조세계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가지는 사람, 삶의 방식을 바꾸는 사람, 피조세계를 돌보는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그런 하나님의 아들들로 바뀌는 것이 위기의 지구환경이 가진 유일한 희망입니다. 인간이 바뀌지 않고는 환경 위기는 달라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피조세계의 소리
첫째는 피조세계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도 소리를 내지만 피조세계도 소리를 냅니다.
사자의 소리, 말의 힘찬 소리, 수많은 새의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물소리, 파도 소리, 폭포 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소리, 낙엽 소리와 같은 소리가 있습니다.
이런 소리를 이 무신론적 세상은 단순한 물질현상으로만 봅니다.
오감을 통한 지식 이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소리는 세계를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입니다.
“3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4.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5.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6.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7.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8.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광풍이며 9.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10.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11.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 12.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13.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시편 148편)
숲 속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 나뭇가지와 잎의 소리, 바람 소리, 귀뚜라미 소리, 새소리, 물소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같습니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이 소리를 계속 들으면서,
인간도 피조세계와 같이 지음을 받은 한 존재로서,
거대한 피조세계의 합창단 속에 속한 대원이 되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숲 속을 가면서 피조세계의 합창 소리를 듣고
우리도 “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이렇게 찬양하면서
거대한 자연의 오케스트라의 대원에 참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름답고 신기한 기적과 같은 푸른 지구별에 대해 경탄할 줄 알고,
이 지구별을 삶의 터전으로 주신 하나님에 대해 찬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런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한 이후 땅이 엉겅퀴를 내었는데, 이것은 자연의 첫 신음소리입니다.
마치 백성을 통치할 대통령이 선출되었는데, 그 대통령이 너무 문제가 많은 독재자였다면,
그가 당선되는 순간에 실망의 한숨 소리가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통령이 갈수록 폭정을 한다면 그 신음소리는 더 심해지듯이,
창조세계를 돌보도록 맡은 인간이 점점 죄를 짓고 타락함으로 피조세계의 신음소리는 더 심해졌고
그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비명소리가 되기도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로마서 8:22)
이렇게 인간 때문에 지구가 신음하고 있다면
그 소리를 듣고 피조세계를 신음하게 만드는 삶의 방식 중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려고 해야 합니다.
매일 사라지는 생명의 종들, 토지와 바다의 산성화, 떼죽음을 당하는 어패류,
폭염과 폭우와 가뭄과 태풍 등은 피조세계의 신음소리인데,
이 소리를 듣고서, 지구의 호흡 장애를 일으키는 매연가스를 줄이고,
지구의 순환 장애를 일으키는 플라스틱과 쓰레기를 줄이려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연의 신음소리를 만드는 인간의 태도와 방식을 고치는 사람,
그가 피조물이 고대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하나님의 소리
둘째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후부터 계속해서 인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한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랑과 섬김으로 돌보라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28)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하신 후 그것을 보존하고 지속하시는데, 그것을 권한을 위임하심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땅에게 식물을 내라고 하시고, 물에게는 많은 생물을 내라고 하시고, 사람에게는 땅을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피조물들이 하나님께서 시작한 창조 활동에 참여하도록 초청하시는데,
이런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우리는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돌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돌본다는 것은 피조세계를 살린다는 것인데,
우리는 착취하면 피조세계를 죽이고 있었다면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또 하나님은 인간에게 너는 흙이라고 하십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세기 3:19 )
아담이란 이름부터가 흙을 뜻하는 아다마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땅을 돌보라는 인간의 위대성을 알려주는 하나님의 소리도 듣지만,
너는 흙일 뿐이라며 인간의 유한성을 알려주는 하나님의 소리도 함께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유한성을 깊이 자각하면서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자연의 주인인 것처럼 매우 교만해졌고 이것이 오늘의 문제를 만든 것입니다.
그동안의 삶의 방식이 피조물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착취하는 것이었다면
피조세계를 대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 인간 역시 창조생태계의 일부임을 기억하고
생태계를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도성장, 고도소비를 요구하는 인간의 소리만 들을 것이 아니라,
생태계를 파괴하는 경제는 규모 축소하는 scale down도 하고,
기후를 올리는 사회의 속도는 둔화시키는 slow down도 하면서,
아니면 녹색성장의 길을 찾거나,
이렇게 하나님의 목소리에 대해 응답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고 이것이 사는 길입니다.
대안적 삶 실행하기
셋째,
피조물의 소리,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때 비로소 인간이 살 수 있는데,
그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서 실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는 피조세계를 살리면서 인간이 더 복되게 살아가는 원리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의 원리가 있습니다.
음악에 쉼표가 있어야 음악이 되는 것처럼
노동도 쉼이 있게 하고, 농지도 휴경제도, 자연휴식년제를 통해 쉼이 있게 하면,
토질도 비옥해지고 농약도 적게 쓰고 생산량이 증대합니다.
안식의 원리를 사회에 적용해서 50년마다 비뚤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사회적 갱생과
리셋을 가져오는 희년이 시행되었다면 공산주의가 없었을 것이고,
그로 인한 냉전과 지금의 분단과 같은 아픔도 없고, 사회적 갈등이 완전히 없어지고 공동체성이 회복되었을 것입니다.
만나의 원리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만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과도한 축적을 추구하지 않아야 함을 가르치는 것인데,
이 원리와 달리 무한 축적이 목표가 된 사회는 더 빨리 더 많이 축적하기 위해 환경 파괴가 오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또 오병이어의 원리는 나눔을 통한 건강한 순환과 사회를 말해주는데,
공유가 아닌 소유 중심의 삶의 방식은 또 환경 파괴를 불러오게 됨을 알려줍니다.
또 룻기의 보아스가 보여준 밭에 이삭을 남기는 이삭의 원리나,
초대교회의 나눔과 헌신의 원리 등은 인간사회만이 아닌 지구환경을 살리는 원리입니다.
또한 유엔환경계획(UNEP)이 제시한 10가지 구체적 실천항목도 있는데 이런 것을 실천하는 것도 방안입니다.
소개하자면,
1. 주변에 기후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여 사람들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공유하기입니다.
2. 자신이 사는 지역의 정치인과 산업계를 상대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지원하도록 압력 넣기.
3. 교통수단 바꾸기, 가능하면 걷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장거리 항공 여행을 줄이기,
4. 전력 사용 줄이기, 냉방 온도를 2~3도 높이기, 고도한 조명 사용하지 않기,
5. 식단 조정하기,
세계 농지의 60%가 가축 방목과 사료작물 생산 등을 위해 사용되고,
축산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전체 배출량의 약 16%에 이르니,
육식을 줄이기, 개인 건강과 지구 건강을 지키기.
6. 지역 식품 구매하기,
수입 식품을 먹으려고 하면 운송과 냉장 보관에 뒤따르는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고 식품의 탄소 발자국이 길어지니,
그 지역 식품을 먹기, 가능하면 먹을 채소 정도는 재배하기,
7. 음식 낭비하지 않기,
생산된 식품의 3분의 1은 손실되거나 낭비되고 있고,
UNEP의 ‘음식물 쓰레기 지수 보고서 2021’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10억 톤의 음식물이 낭비되고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배출량의 약 8~10%나 된다고 합니다.
8. 기후 친화적 옷 입기입니다.
의류로 인한 탄소배출이 전체의 8퍼센트에 달하니,
과도한 ‘패스트 패션' 문화는 바꾸는 습관을 가지는 것.
9. 나무 심기입니다.
10. 지구 친화적 투자,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산업에 투자하기, 이런 유넵이 권유한 10가지 실천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는 길
지금 신음하는 피조세계를 환자에 비유하면
폭염의 고열, 폭우의 식은땀, 태풍이란 한기, 대기 대류 순환이 막히는 혈관 동맥경화,
플라스틱 재활용 불능의 극도 순환기 장애를 가진 중환자여서
중환자실에 링거를 꽂고 누워 있는 상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기술을 통해 잘 될 것이라고 믿는 얕은 낙관주의에 머물 것입니까?
도저히 손쓸 방도 없다고 치료를 포기하고 비관주의에 빠질 것입니까?
참된 신앙은 자기 영혼 구원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절반을 차지하는 직장과 일터에 대해 관심을 두는 것이고,
또한 삶의 기반이 되는 지구에 대한 관심을 두고 지구를 살리는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영적 성장입니다.
타이타닉이 가라앉고 있다면 일등석 이등석 따지는 것을 넘어 배를 침몰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노력이
지금 필요한 제자도입니다.
본 것처럼 인간의 욕망 소리가 충만하고 그것만 들리는 도시 문명사회 속에서,
귀를 기울여 다시 피조물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다시 인간을 향한 한편 청지기이며 한편 흙임을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피조세계 회복이란 목표는 너무 큰 목표이기에 나 한 사람이 어떻게 한다고 해서 무엇이 바뀔까 싶고,
너무 장기적 목표이기에 언제 이루어질까 싶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바른 방향을 향해,
매일 혼자가 아닌 함께 집단적으로 작은 실천을 해가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고대 로마에는 잔인한 검투사 경기가 유행이었습니다.
콜로세움 원형 경기장은
주후 72년 유대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초토화했던 베스피안 황제 때를 시작으로
400년 이상 로마 제국의 대중오락장으로서 성황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주후 500년경에는 사실상 용도 폐기되었습니다.
523년경 마지막 검투 경기 기록이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로마 인구의 대부분이 기독교인들로 바뀌면서 검투사 경기가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기독교인들이 콜로세움 경기장 가지 않기 공개적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잔인한 동물 학대, 전쟁 노예 학대, 잔악한 살인 경기는 믿는 신앙고백의 가치와 다르기에
그들의 신앙적 가치를 따라 그런 경기를 멀리하기로 선택해 갔습니다.
그러자 그 문화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환경위기를 만드는 세상의 구조와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도 그렇습니다.
어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연대해서 함께 창조 세계에 대한 신앙고백과 가치를 따라 생각하고 꾸준히 행동한다면,
거대한 물줄기가 바뀔 수 있습니다.
절제 운동, 검소 운동의 캠페인을 벌여도 도덕 선생님의 소리로만 생각한다면 오래가지 못하지만,
창조 세계의 의미와 관련된 신앙고백과 가치에서 나오면
자발적으로 매일 절제하고 검소하고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진심을 담아 친환경적 삶의 문화를 만든다면
피조세계를 살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생태적 위기 속에서 지구에 희망이 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목소리만 들리는 문명 세계 속에서 삽니다.
그럴수록 피조세계의 신음소리를 더 듣고, 하나님 말씀의 소리를 더 귀 기울여 듣기를 바랍니다.
신앙은 개인 영혼과 가정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의 문제,
나아가 환경의 문제도 생각하고 내가 할 실천을 찾아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성장이며 제자도임을 알기를,
우리 모두가 환경의 제자도를 실행하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살아갈 수 있기를,
교회가 환경회복의 앞장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범위를 넓혀 직장 현실 문제, 나아가 지구 환경 문제를 두고 기도합시다.
이 문제를 위해 기도할 때 먼저 우리가 피조세계의 의미를 바로 알게 해달라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작은 실천부터 행하게 도와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하나님의 집을 돌보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워지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7/16일 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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