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정현구목사님 목회칼럼

누가 능히 서리요....요한계시록 (5)

왕언니 2021. 12. 11. 23:45

계6:1~17    내가 보매 어린양이 일곱인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이에 내가 보니 흰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넷째 인을 떼실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대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두루마리 개봉

 

요한이 제일 먼저 본 것은 금 촛대와 그 사이에 다니시는 인자 같은 분이었습니다.

인자 같은 분은 승천하여 지금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입니다.

 

둘째 요한이 본 것은 보좌에 앉으신 이셨는데 그 분의 손에 두루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속의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고 펼쳐갈 존재가 없었기에

요한이 울자 이에 어린 양이 그 두루마리를 받아서 그 인봉을 뗍니다.

 

6장은 어린 양이 그 일곱 봉인을 하나씩 떼는 장면으로

어린 양이신 예수께서 하늘보좌에서 두루마리를 받아 펼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로마 황제가 역사의 두루마리 책을 펼치는 주인처럼 보입니다.

그가 미래를 만드는 자라고 스스로 신의 자리에 앉고

그들이 숭배하는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이 그 역사의 두루마리를 펼친다고 숭배합니다.

지금 정치가들이, 이 세상의 경제와 기술이, 그렇게 주장하고 숭배를 받습니다.

 

로마의 보좌가 세상의 중심인 것 같지만, 하늘 보좌가 중심이며,

로마의 황제가 왕인 것 같지만,

그에게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 오히려 왕의 왕임을 알고 믿음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누군가가,

그리고 워싱턴, 베이징, 모스크바, 런던, 이런 곳이 세계의 보좌인 것 같습니다.

 

당시 교회나 오늘날 교회나 마찬가지로,

우리는 왕의 왕이 누구이며 ,정말 역사의 드라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 때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두루마리의 내용

 

그런데 하나님의 두루마리를 펼칠 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세상 권력자들의 생각은

그들은 신의 뜻을 펼친다고, 마땅히 일어날 일을 세상 속에 펼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막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 선전을 통해서 잘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국민을 속이고, 진짜는 감춥니다.

 

엄청난 비용으로 나라 선전선동을 하면서 실상을 감추고 경제침략을 합니다.

악한 힘과, 세상이 말하는 사실과, 두루마리 속에 기록된 참 진실은 달라서,

권력자 경제 권력자들이 하는 것들이, 마땅히 일어나야 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을 진짜 힘인 줄 알고 따릅니다.

어린 양을 죽이는 세력이 진짜 힘인 줄 알고

그들도 어린 양의 길이 아닌, 어린 양을 죽인 짐승을 따릅니다.

즉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기를 거부합니다.

 

세상이 스스로 자기가 섬길 여러 신을 만들어내고

신이 아닌 것을 신으로 섬길때 결국 그 결과가 따라오고 고통을 겪습니다.

로마서 말씀처럼

마음이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그대로 내버려둘 때  온갖 악들이 일어납니다.

 

두루마리 책을 열어가면서 보여주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떠난 결과가 어떤 것인지, 그것은 죄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심판입니다.

둘째는 구원입니다.

그런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이 있어서 구원의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판과 구원의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있고 또 저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재림 직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초림부터 재림 직전까지 일어납니다.

만약 재림 직전에 일어날 일이라면 초대교회에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이것은 초림부터 재림까지 일어날 일이기에 모든 교회에게 해당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처럼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을 막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짐승으로 상징되는 악입니다.

그러나 마땅히 되어야 할 일을 이루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악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통치하는 왕의 왕이며, 두루마리를 펼쳐 가고 있는 주인공입니다.

 

죽임 당한 어린 양이 두루마리 인을 떼시는데,그 내용을 문자적으로 보면 재림 직전에 일어날 우주적 심판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용어나 이미지들이 대부분 구약의 예언서들에서 온 내용들로

즉 예언의 성취인데, 그것이 다 산문이 아니라 운문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우리는 문자적이 아닌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산은 단풍의 붉은 빛으로 불이 탄다고 하면,

시적 의미로 읽어야지 진짜 불이 탄다고 하면 안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실상을 알게 될 때 교회는 지금 핍박과 유혹을 받고 있을 때 믿음의 길을 걷게 됩니다.

 

 

 

네 마리 말의 환상

 

어린 양이 두루마리 일곱 봉인 가운데 하나를 뗄때 네 마리의 말이 차례차례 등장합니다.

황소는 농사용이고 당나귀는 수송 수단이라면 말은 전투에 사용됩니다.

 

네 마리 말의 등장은 역사 속에 전쟁이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는 사실 전쟁의 역사라고 봐도 됩니다. 그만큼 전쟁이 많았습니다.

부족간의 전쟁, 나라간의 전쟁, 세계대전,

요즘은 테러전쟁, 그리고 경제전쟁, 문화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전쟁의 형태는 아니지만 각 집단 간의 이해충돌, 갈등,

개인간의 살인들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타락한 이후 세상은 정말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전쟁, 폭력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하늘 보좌가 아닌 세상의 보좌를 따른 결과이며 죄의 결과임을 알려줍니다.

이런 전쟁은 계속 전쟁을 낳고 눈덩이처럼 계속 늘어나는데

이것은 인간의 죄의 결과입니까? 하나님의 벌입니까? 그 답은 둘 다입니다.

 

첫째 말이 나오는데 흰 말입니다.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계 6:2)

 

흰 말이 있고 탄 자가 활을 가지고 계속 이기려고 합니다.

모든 이들이 서로 이기고 이기려고 하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19장 11절에도 흰 말을 탄 자가 나오는데

그곳의 흰 말은 구원의 군대를 지휘하시는 예수님이지만

여기서는 활을 가지고 싸우려는 힘입니다.

 

둘째는 붉은 말이 나옵니다.

그 붉은 말이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계 6:4)고 했습니다.

여기서 화평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로마의 평화는 전쟁과 피 흘림을 통해 얻은  평화이며,

지금도 이런 제국주의적 평화를 평화라고 속이고 있음을,

진정한 평화가 아닌 위장된 평화임을 알게 해줍니다.

 

셋째 인을 떼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가 저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보리 석 되요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계시록 6:6).

 

장성한 성인 남자가 하루 종일 일하고 받는 품삯이 데나리온인데,

그것으로 밀 한 되 혹은 보리 석 되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은

평민들이 먹는 농산물가격이 너무 나 폭등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고 합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부유한 사람들이 소비하는 기호품인데,

그것은 넘치고 풍년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1세기 로마제국이 토지 대지주 제도를 통해서 가난한 이들의 농토를 빼앗게 됨으로

가난한 이들이 더욱 열악한 상황에 내몰리고 부자들은 더 풍요롭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역사 속에서 계속 되고 3세계는 가난해지고 1세계는 부유해지고

요즘 빈부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자산소득이 임금소득의 훨씬 뛰어 넘습니다.

이런 경제적 불의함이 로마 시대도,지금도 계속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청황색 말이 나옵니다.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계 6:8)

 

청황색은 시체를 연상시키는 색이고 그 말을 탄 사람의 이름이 사망인데

‘사망’은 ‘전염병’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 뒤에 음부가 따른다는 것은 지옥을 연상시키는 아수라장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이 일어난다는 뜻일 뿐 아니라, 또 사망을 생명 경시로 볼 수 있습니다.

노예제도, 정치범 살해, 암살, 삼세계 사람들을 방치하는 것들입니다.

 

최근 중국 우한에서 다른 생명체를 경시하고 식용으로 사용함으로

동물에 있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오게 되기도 했습니다.

식물의 생명의 경시로 인한 환경오염은 수많은 이들을 서서히 죽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칼, 기근, 생물, 작은 미생물을 통한 질병 등으로 사분의 일이 죽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구약 성경의 하나님의 4대 심판의 도구입니다.

 

에스겔 14:21에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아니하겠느냐”(에스겔 14:21).

 

 

이로 인해 땅의 사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고 고통을 받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이들이 죽고 고통을 당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역으로 보면 4분의 1까지만 범위를 제한시킴으로

하나님의 긍휼이 남아 있음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심판을 베푸시나 하나님의 긍휼이 있다는 뜻입니다.

 

즉 이 세상에는 정복과 평화의 깨어짐과

불의한 경제 구조로 인한 기근과 질병과 생명경시가 계속 일어납니다.

이런 세상이 겪는 고난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지만,

그 근원을 더 깊이 파헤치면 결국 죄가 낳은 결과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어린 양이 아닌 짐승을 따르는 필연적 결과입니다.

 

세상의 역사를 네 마리 말로 설명하면서, 싸움, 평화의 상실, 흉년, 질병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질서를 벗어나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파괴하면서

그로 인한 결과를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것이 실상인데 이 실상을 대부분은 모릅니다.

로마의 평화라고 하면 이것이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실상은 숨겨지고 오히려 악들이 위장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쟁을 영예스러운 투쟁처럼 위장시켜 약한 나라를 침공하면서

자기 민족의 부흥이란 이름으로 선으로 둔갑시킵니다.

제국주의가 그랬고 중국은 동북아공정을 통해 동북아 역사를 조작하는 거짓말을

중국 민족주의 이름으로 선으로 둔갑시키면 중국인들은 그것을 다 옳게 받아들입니다.

 

삼세계 사람들의 가난과 열악한 임금도 사실은 그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한 착취이지만

그들을 위한 경제활동이라고 말합니다.

질병의 근본 원인이 사실 우리가 먹는 음식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데,

음식과 관련된 진짜 정보는 여러 로비로 숨기고,

그런 근본 원인은 그대로 둔 채로 드러난 증상을 의술로 다 치료 가능한 것처럼 말하면서

병원 비즈니스만 점점 커지게 합니다.

이러한 숨겨진 악들이 창조의 모습을 뒤틀고 그 결과 고통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핍박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다섯째 인을 뗄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계시록 6:9-10)

 

또 다른 세상의 악은 종교적 핍박입니다.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고 박해합니다.

중국과 북한은 종교박해국입니다. 그들에게 종교는 국가란 신 아래 있는 기관에 불과합니다.

예배 마친 후 광고시간에 공산당 광고를 합니다.

선으로 살아가는 소수가 오히려 고통을 당하고, 진실을 따르기 때문에 희생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억울하게 순교 당한 순교자들의 외침이 들립니다.

그것은 아벨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이후, 계속 아벨의 피가 땅에 흘려지고

그 피들이 호소합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6:10)

 

그런데 이런 일은 그런 사람의 수가 차기까지 계속된다고 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악이 얼마나 악인지가 더욱 드러납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역시 이렇게 죽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흰 옷을 주십니다.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계 6:11).

흰 옷은 죽었지만 승리한 자들이란 말입니다.

 

결국 피를 흘린 이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그들은 흰옷을 입은 진정한 승자임을 인정하는 서임식을 한 것입니다.

 

 

자연 재난

 

이제 여섯째 인이 떼어집니다. 그러자 큰 지진이 일어납니다.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계 6:12-14)

 

예수님의 감람산 강화에도 나옵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마태 24:29).

그런데 이 내용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이사야 13:10)

 

이 말은 문자 그대로 해가 검어지고 별이 떨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자연재난이 일어나 천지 만물이 본래의 모습을 상실하고 파국적인 모습으로 변형되어

뭇 생명들의 정상적인 삶이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지금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홍수, 산불, 더위, 자연 재해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핍박은 특정 대상에 초점을 맞추지만 자연 재난은 그렇지 않고 모두에게 임하여

땅의 왕들도 고관들과 장군들과 부자들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은 고통을 당해도 자기들은 안전하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계 6:16-17)이라고 합니다.

 

 

누가 서리요?

 

두루마리의 봉인 여섯 개가 떼어집니다.

 

즉 책의 6창의 내용이 역사 속에 펼쳐진 것입니다.

즉 타락한 세상의 역사 속에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은 죄의 세상의 결과가 일어날 것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섯 봉인을 뗀 이후에 이런 질문으로 요한계시록 6장은 끝이 납니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었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 6:17)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거나  버티어 낼 사람들이 없습니다.

 

당시는 로마 통치가 영원할 것이고 평화로운 것이며

진노가 아닌 로마 황제의 통치 아래 좋은 세상이 오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사실 진노 아래에 있는 세상이었습니다.

 

지금은 인간이 통치하고 악하고 위선적인 권력자들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 운전대를 잡고 자기 맘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기술로 경제로 좋은 세상이 오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전쟁, 가짜 평화, 불의함과 가난, 질병과 전염병, 종교박해 및 생명 경시,

자연재해라는 것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그냥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나님의 진노로 보지 못하고

인간이 이대로 하면 해결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돌이키는 것만이 사는 길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누가 능히 서리요? 어떻게 이런 재난에서 벗어나리요?

이런 질문에 대해 바른 답을 주지 못합니다.

여전히 재난과 문제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그대로 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 본질이 창조주를 떠난 삶임을 알지 못합니다.

문제를 만드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로 그 구조에서 답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문제를 만드는 세상의 틀에서 답을 기대합니다.

 

 

우리는 다시 눈을 열어서 두루마리에 기록된 참 진실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누가 설 수 있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 답을 자아와 인간과 짐승과 세상의 통치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

어린 양의 다스림에서 찾아야 합니다.

 

 

                                                 2021년 12월1일 수요예배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