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정현구목사님 목회칼럼

교회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요한계시록(2)

왕언니 2021. 11. 21. 17:14

계시록( 1:9~20)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 두아디라, 사데 ,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가 본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 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반드시 속히 될 일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계시를 기록한 책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것을 요한이 듣고 본 것을 기록한 것이며,

그 내용은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로....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이란 먼저 반드시 될 일,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관한 일,  ‘속히 될 일’입니다.

‘속히’란 ‘후일에’란 뜻인데, 반드시 될 일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져 갈 일입니다.

 

그런데 반드시 속히 이루어질 일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고,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분이 ,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이 땅에 오심으로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죄를 처리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와 죽음을 이김으로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 결정적으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다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서 함께 통치하시는데

다니엘서는 예언을 따라서 이분을  “구름을 타신 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모습은 초림의 예수님과 다른, 승천하신 예수님과 앞으로 재림하실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서 통치하시는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신 이후 하늘에만 계시지 않고,

초림의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십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 오시는데, 특히 세상 속의 교회에 현재 진행형으로 오시고

그리고 마지막 재림시에 결정적으로 오십니다.

이미 오셨고, 계속 오시고, 마침내 오십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반드시 이루어질 일”을

‘속히’ 즉 역사 속에서 이루어가시고 마침내 완성하십니다.

초림의 예수님이 오셨듯이, 부활의 주님이 오시고, 재림의 주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계시

 

그렇게 역사 속에서 ‘속히’ 이루어지는 일을 보여주시는데 그것이 계시입니다.

계시는 드러내는 것으로,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일을 드러내고,

보이는 현재의 감춰진 것을 드러내고, 역사 속의 왕들의 권력의 잘못을 드러내고,

참 역사는 어떤 것인지, 참된 왕이 누구인지, 세상 왕들의 이야기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

어떤 이야기가 마침내 완성되는지를 드러냅니다.

 

이렇게 계시를 통해 실상을 보는 이들은 눈이 열립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떤 이야기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계시를 듣고 그것을 지키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계시가 우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가 나타나는데, 이것을 네 가지 환상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그 네 가지 환상을 통해, 역사와 종말과 참 왕과 나라, 반드시 속히 이루어질 일을 알게 합니다.

 

4가지 환상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환상은 , 크게 네 가지 환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각의 환상은 다 요한이 성령의 감동을 받음으로 보게 된 환상들입니다.

 

첫째 환상은 일곱 촛대 환상, 둘째 환상은 일곱 인, 나팔, 대접의 환상입니다.

셋째 환상은 큰 성 바벨론 환상, 넷째 환상은 새 예루살렘 성의 환상입니다.

 

1 장 첫 부분과 22장 마지막 부분이 책의 첫 표지와 마지막 표지이고,

그 안의 내용이 이 네 가지 환상입니다.

그 각각의 환상을 좀 더 살피면 이렇습니다.

 

 

 

첫째 환상인 “일곱 촛대 환상”은 지상 교회, 즉 역사 속의 모든 교회,

즉 초림부터 재림시까지의 모든 교회에 관한 환상입니다.

지상의 전투하는 교회에 대한 환상입니다.

 

둘째 환상인 일곱 인, 나팔 대접 환상은 4장~16장까지인데,

역사 속의 심판, 즉 초림부터 재림 사이의 심판으로,

이 심판이 인, 나팔, 대접의 순서로 점진적으로 일어납니다.

 

셋째 환상은 큰 성 바벨론 환상으로 (17장 ~ 20장)에 있습니다.

이것은 종말에 있을 최후 심판입니다.

 

넷째 환상은 새 예루살렘 환상으로 (21장~22장)에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 종말에 완성된 교회입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

 

이 네 가지 환상의 내용은 바로 1장 1절에 말한 “마침내 속히 될 일”에 관한 환상입니다.

이것은 구름 타신 이가 하실 일로,

즉 십자가 승리 후 승천하여 지금 하늘 보좌에서 통치하시는 왕이신 그리스도가 하실 일입니다.

 

이 땅에 오셨고 오시고 오심으로 이루실 하나님 나라 완성에 관한 일입니다.

짐승의 질서, 악한 존재의 통치의 타락한 옛 창조를 끝나고,

어린양의 새 질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로 인하여 회복된 새 창조를 이루는 일입니다.

 

 

 

밧모 섬에 있는 요한

 

먼저 1장 9절부터 첫째 환상인 촛대 환상이 나오는데 그것은 지상 교회에 관한 환상입니다.

초대 교회가 탄생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대 지역 너머까지 확장되었고

소아시아 지역에도 세워졌는데

초대 교회는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유대교와 다른 모습을 보여 유대교와 단절되었고

그 때문에  당시 다수였던 유대교인들로부터도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 당시 로마 제국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했는데

다른 제국 내의 종교들과 달리 초대 교회는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하였으므로

고난과 핍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요한도 로마 황제가 아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증언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한 죄로 정치범들의 유배지 밧모섬에 유배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밧모섬에서  지내며, 다른 형태로 고난을 받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으므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요한계시록 1:9)

 

 

주의 날

 

유배지 밧모 섬에서 요한이 주의 날에 예배를 드립니다.

그가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가 지금 로마 황제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로마 황제가  그의 주요, 왕입니다.

 

그러나 그가  십자가에 죽임 당하신 예수님이 주이심을 고백하는 예배를 드리는 중에

갑자기 성령의 깊은 역사하심이 임합니다.

그의 등 뒤에서 갑자기 나팔 소리와 같은 큰 음성을 들리고,

예배를 통해 함께 하시는 주님이 보이고, 그리고 말씀합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계시록 1:10~11)

 

앞으로 보게 될 환상을 기록해서 소아시아 7 교회에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 교회도 요한처럼 주의 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며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인데

그들에게 요한이 본 것을 같이 볼 수 있도록 전하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실상을 보게 됩니다.

 

 

 

 

 

금 촛대를 보다

 

그때 요한이 본 것, 그가 등 뒤를 돌아보면서 본 것은 일곱 금 촛대입니다.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를 뜻하는데, 일곱이란 숫자가 완전함, 전부를 상징하는 것처럼,

일곱 교회는 당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들일뿐 아니라,

역사 속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 초림부터 재림 시까지 존재할, 모든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금 촛대의 형태로 묘사됩니다.

일곱 등의 촛대는 성소 안에 있는 등잔대와 같습니다.

촛대가 등불을 담아서 어둠의 세상 속에서 빛을 밝히는 것처럼

교회는 어둠의 세상에 빛을 밝히는 존재요, 로마의 평화 속에 참된 평화를 알리는 등불이요,

짐승의 통치 세상 속에서 어린양의 통치를 알리는 빛입니다.

 

교회를 등불을 담는 금 촛대로 상징했는데,

그 교회가 어떻게 등불이 되는가? 1장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이”(요한계시록 1:6)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았다는 말은, 곧 교회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 나라”로 삼았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로 삼았다,

즉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으로 삼기 위해 세상에서 불러냈다는 것입니다.

마치 애굽에서 백성들을 불러낸 것과 같이,

초대 교회 성도들을 로마의 황제와 신을 주로 섬기는 세상에서

예수님을 주로 예배하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으로 불러냄으로... 그래서 빛이 됩니다.

 

또 “제사장으로 삼았다”라고 했는데,

제사장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섬기는 자, 세상을 하나님에게 인도하는 자로.

즉 하나님의 통치와 나라를 열방에 증거 하는 백성으로 보냄을 받은 백성입니다.

그래서 빛을 밝힙니다.

 

그래서 나라란 세상 속에서 부름을 받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 공동체요,

제사장이란 그 세상 속으로 다시 보냄을 받아 예수님의 주되심을 증거 하는 선교공동체입니다.

 

이렇게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예배함으로 어둠에 빛을 발하고,

이 세상으로 보냄을 받아 예수님이 주되심을 증거함으로 빛을 밝히고,

예배와 선교공동체가 되므로 교회는 금 촛대가 됩니다.

 

교회는 소수이고 약자이고 힘이 없고, , 교회는 빛이 아닌 것 같고,

로마는 화려한 빛이고, 로마의 평화는 진짜 빛나는 평화 같고,

핍박을 받는 비폭력 교회의 평화는 꺼지기 쉬운 촛불과 같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환상을 보니, 실상은 반대입니다.

교회가  어둠의 세상을 밝히는 불을 밝히는 금 촛대입니다.

요한의 환상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실상이 아니라, 정말 참 실상, 참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게 합니다.

 

 

금 촛대 사이에 계시는 분

 

교회는 세상 속에 빛을 밝힐 촛대로 존재하는데, 그 일곱 금 촛대 가운데 한 분이 계십니다.

즉 교회들 사이에 빛이 되시는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인자 같은 분, 즉 사람 모습인데 동시에 사람의 모습이 아니며

인간의 모습인데 또한 신의 모습입니다.

일곱 교회, 즉 역사 속의 모든 교회 안에,

바로 “인자 같은 이”, 즉 사람의 모습이지만 하나님의 모습인 분이 계십니다.

 

자세히 보니..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요한계시록 1:15~16)

 

만약 당시 1세기 사람들이 지금의 현대인들을 봤다면...

비행기를 타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핸드폰으로 화상통화를 하는 모습을 본다면...

철로 만든 새를 타고, 화살같이 빠른 전차를 몰고, 빛을 통해 사람들을 만난다고 했겠지요.

 

이 모습은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려줍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있는데,

이것은 제사장 복장으로, 그분이 참 제사장임을 알려줍니다.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는 것은  왕의 복장으로

머리털이 흰 양털 같고 눈 같은데, 휘날리는 백발은 하늘의 지혜자를 말합니다.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눈은 불꽃같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전지함을 말하며,

입에서 칼이 나오고,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은데 진리의 말씀을 말하십니다.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잡고 있습니다.

일곱 별은 교회인데 교회를 붙들고 계십니다.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습니다.

주석의 발은 악을 밟아 이기는 모습, 즉 세상의 악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묘사된 모습은 사실 구약 다니엘 7:9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다니엘 7:9). 또 다니엘 10장에 묘사된 모습과 같습니다.

 

이 모습은 제자들이 봤던 나사렛 사람,

육신의 제한을 가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힌 분과 전혀 다른 분,

부활 승천하여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왕이십니다.

이분이 바로 1장 7절에 말하는 “구름 타신 분”입니다.

 

 

 

확신과 두려움

 

교회 안에 계신 이분의 모습을 봤던 요한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요한계시록 1:17).

요한은 그분의 모습을 보고 죽은 자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보면 피조물은 죽습니다.

불꽃같은 하나님 앞에 서면 존재가 흔들리는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 죽은 자처럼 되었고,

바울은 다메섹에서 빛을 보고 엎드러졌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보면, 그 거룩한 임재 앞에서 서면 내가 얼마나 죽을 죄인인지를 알게 됩니다.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 알고 통곡하고 되고,

그동안 얼마나 거짓되고 악하고 허물이 많은지를 알게 됩니다.

 

이런 , 교회 가운데 거하시는 주님을 보면, 경건한 두려움을 갖게 되고

교회에 대해서 함부로 생각할 수 없고, 교회를 하나의 조직체로 볼 수 없고

목사나 장로들이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이런 경건한 두려움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이 주님을 경건한 두려움으로 만나게 되면 현실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보이는 교회 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늘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당시 교회나, 북한과 같은 곳에서 교회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들이

보이는 것 너머, 교회 안에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볼 때 핍박을 이기는 확신을 갖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성도들을 핍박하려고 갔을 때

도중에 빛이 비취면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사도행전 9:4).

박해받는 무리가 혼자 있지 않고 그들 가운데 주님이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이런 고난과 핍박 중에서라도 그 가운데 주님이 함께 하심을 알게 되면  큰 확신이 됩니다.

 

 

 

말씀하심

 

이렇게 교회 안에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말씀으로 계시하십니다.

요한에게 오른손을 얹고 ,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며 그분이 보여주는 것을 기록하게 합니다.

“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요한계시록 1:19)

 

이것은 장차 될 일이 재림 직전의 일이 아니라, 초림과 재림 사이에 일어날 일입니다.

그것이 1장 1절에서 말한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입니다.

“반드시 될 일”과 “속히 될 일” 즉 후일에 될 일입니다. 이것을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바로 앞서 말한 네 가지 환상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주된 내용입니다.

일곱 촛대 환상,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환상,

바벨론에 관한 환상,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환상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십니다.

교회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우리의 부르심과 사명에 대해서 알려주시고.

또 짐승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본질과 어린양의 질서를 통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십니다.

이것을 당시 7 교회에 보여주셨고. 지금 우리에게도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보이는 현실을 보고 삽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일까요? 그것이 실상일까요?

말씀의 눈으로, 환상을 통해서 보는 것이 실상입니다. 아니면 사실은 속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의 계시가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서 누구인지, 세상은 무엇인지, 참 소망이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의 소망에 대해서 봐야 합니다. 그 환상을 볼 때 우리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잘하는 것을 격려하시고 또 잘못하는 것을 고치게 함으로,

세상 속에서 영적 전투를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일곱 교회에도 실상을 보여주는 계시의 환상이 필요했다면 지금 더 필요합니다.

 

그때 우상은 보이고 드러났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고 더 은밀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더 복잡하고 속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말씀으로 열리는 계시를 보려고 해야 합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마침내 속히 일어날 일을 듣고 보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021년 11월 10일 설교(정현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