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언니의 살아가는 이야기

봄날은 간다.

왕언니 2003. 6. 19. 22:18

 

          

 

 

         

 

 

 

 

어제 참으로 오랫만에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우연치 않게<봄날은 간다 >를 보게 되었다.

보게 되었다는 표현은 ...
그러니까 정직하게 말해서 내 돈내고 보지 않았다는 말이다.

가게를 시작하기전 92년부터 3년동안은 서예를 배우고 전시하기위해
예술의전당 서예관을 들락거렸지만
95년이후 옆에 붙어있는 오페라하우스에는
뮤지컬 <시집가는날>을 보기 위해 딱한번 간거외에는 눈돌리고 살아온 ,
그야말로 <저급?문화인>으로 살아온 10여년이었다.

알고보니 돈주고 산다면 최하 35000원은 주어야 하는 거금의 표를
내칼럼독자이신 엘리사벳님이 주셔서
아직 해가 벌건 오후세시에
[정직히말하면 날이흐렸다.]
역시 고참독자이신 왕왕언니와 같이 <뜬금없는>문화생활을 한것이다.



평일 낮공연이라는 이유때문인지는 몰라도
역시 관객의 90%이상이 여자였고
그 여자의 70%이상이 4~50대인것 같았다.
[밥에 뉘처럼 서너명씩 얼려온 30대가 보이긴했지만 ]
허긴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먹고 ,
그맛이 진짜로 그맛인지 아닌지, 고기맛도 잘 안다고...
악극이란것을 구경도 못해본 나이의 사람들이 교통도 불편하고 비용도 만만챦은
그공연을 선듯 구경하러오기란 쉽지않은 일이니까...

그러나 고고하게 굴어 적자를 면치못하던 예술의 전당이
체면을 팽개치고 악극이라는 과거지향적이며 대중적인 공연을 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오페라하우스라면...적어도 ...
정장을 하고 자가용을 몰고 오거나 택시를 타고 오는
우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던 고정관념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적극적인 sbs의 선전 탓인지
노인학교나 양로원에서 단체로 효도관광을 온듯한 할머니 그룹들이
주차장에서 우루르 내려 인솔자를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가득메우기도 하고
여기저기 이제막 동창회를 끝내고 직행한듯한
내또래의 조금 덜삭은? 오래묵은 꽃들이 무더기로 앉아있다.


너무나 빵빵하게 틀어대는 에어컨덕에 우아하지 못하게 반팔을 입은 내 팔뚝은 시려왔지만
분명코 악극세대는 아닐듯한 젊은 지휘자의 지휘로
귀청이 떠나갈듯한 씨그널뮤직<봄날은 간다>의 악단연주가 시작되며 막이 올랐다.


빰빰빰...빰빰빰...
어둠속에서 귀청을 울리는 트럼펫과 섹스폰소리를 들으며
나도 조금씩 가슴이 설레어 왔고
자꾸만 45여년전으로 돌아가
정읍극장에서 가슴 두근거리며 보았던
그시절의 초라한 악극단의 무대가 생각났다.


그때 나는 끼많은 신흥부자 아버지를 둔 덕에
불과 열살 안팎의 나이로 뻔질나게 오분거리의 정읍극장을 수시로 드나들며
그때 전국을 휩쓸던 여성국극단의 창극을 남몰래 따라 흥얼거리기도 하고
지금 중고생들이 연예인 브로마이드를 갖고다니듯
조악한 명함크기의 ,임춘앵이니,김진진이니하는 남장여배우의 사진을 품고다녔었는데...

여주인공 김성녀가 그때 유명했던 여성국극인 박옥진씨의 딸이라니 더욱 옛생각이 난다.
엄마와 이모 형제와 남편이 다 연극계 인사이니
그녀의 구성진 노래며 연기에 천부적인 끼가 철철 넘치는것은 너무나 당연한것 같다.

같이 나오는 박인환,윤문식,김진태씨가
그런대로 안방극장에서도 봐줄만한 캐릭터인데 비해
사각턱과 게이같은 냄새까지 피우는 작위적인 목소리로
지금껏 내게 좋은 점수를 못받았던,
TV에선 영 아니올시다의 마스크를 가진, 최주봉씨가

독특한 연극분장의 마술인지,신비한 조명탓인지,원래 광대科인지
그동안 하도 많이해서 능수능란해서인지,
어제는
적절하게 끼워넣는 노래나 대사가 영 딴사람처럼 걸출하여
나도 모르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역시 그는 연극에 어울리는 타고난 광대다.

그때 판자에 그림을 그려 만든 흔들거리는
무대 배경이나 쎄트들은 얼마나 유치한 수준이었는데..
초가지붕까지 얹고 방안까지 보여주는가하면
꼬마전구로 진짜같이 별이 빛나고,배경화면에 달을 띄우고,
종이눈이 아닌 스프레이눈을 진짜처럼 내리게하고
흘러간 시간은 오디오와 함께 옛날,<대한늬우스>화면을 직접 틀어주는등...
오페라극장 높은 천정과 넓다란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전천후세트들은
참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만큼 괄목할 수준이었다.

배우들도 옛날엔 마이크없이 육성으로 해야했기에
노래와 춤 타고난 끼와 풍부한 성량이 없으면 아예 배우가 되지못했었는데
세월이 좋아져서
배우들은 옛날보다 질좋은 의상에 질좋은 화장으로 다 미남미녀가 되었고
아예 볼이나 이마에 붙이는 마이크덕에 고래고래 소리지르지 않아도 되었다.

그야말로 幕間 을 이용하는 바라이어티 쇼를 장식하는
[그때의 연사는 바라이데쇼라고 발음했다.]
무희들도 진짜 직업무희들처럼 현란한 의상을 입고
관객들 코앞에 엉덩이를 들이미는 캉캉춤을 멋들어지게 추어대는데도 야해보이지않는다.

신파의 결말은 언제나 <눈물없이 볼 수없는 비극이다?>라는 默約답게 언해피엔딩이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여주인공 김성녀가, 첫날밤만 보내어 허니문베이비를 만들어놓고
배우가되겠다고 떠난 이발사출신 남편을 기다리며
치매걸린 시아버지,폐병걸린 시누이를 수발하며
며느리 잘못들어와 아들이 도망갔다고 굳게믿고 구박하는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며사는데

설상가상 이란성 쌍동이를 낳자 시어머니는
남녀쌍동이는 집안을 망친다고 애기를 낳자마자 핏덩이[딸]를 어디론가버리러나간다.
천애고아라 갈곳없는 김성녀는 오늘도 성황당에 남편 오기를 빌며
온갖구박을 참아내며 가난한 살림을 도맡는다.

서울에 올라온 최주봉은 악극단에서 청소와 잡일을 하며
틈틈히 주인공의 대본을 외워 어느날 핀치히터로 이수일역을 멋지게 해내어
배우로 성공을 하지만
6.25가 터져 극단은 해체되고 파편에 맞아 절름발이가 된다.

시부모와 시누이가 다죽고,하나뿐인 아들마저 군대에 나갔다가 [월남전쟁에참여하여]
전사통지한장으로 돌아와
주막을 하며 힘겹게 살던 김성녀를 다시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트리는데
유골을 안치하러갔던 절에서 옛날 시어머니가 버렸던 딸이
비구니가 되어있는것을 발견하고 목놓아 운다.

마지막엔 떠돌이이발사가 된 절름발이 남편이
악극단시절의 동료와 부부가 되어 선지국밥을 먹으러 온다.
그가 가지고 있는 흰가위와 첫날밤을 보내고 줄행랑을 친 고향이 풍덕이란 고백에
그가 남편임을 알고 그에게 머리를 잘라달라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머리를 잘라주는 남편,
눈물을 삼키며 세월이 갈라놓은 운명을 인정하는 아내...
끝내 자신이 그 옛날 아내였다는 고백을 못하고 두사람을 떠나보내는데
때맞춰 눈이내리고 [막판에는 주먹만한 덩어리눈도 섞여서ㅎㅎㅎ]

주인공은 절규한다.

<아아 이렇게 내 봄날은 갔다>라고...


전편을 흐르는
귀에익은 옛날유행가탓인지 관객들은 염치없이 따라부르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하고 큰소리로 뭐라고 맞장구를 치기도 하는품이
영락없는 옛날 삼류극장의, 업그레이드된 악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다르다면 옛날에는 한번 극장엘 다녀오면 그감동과 흥분이 오래 계속되었는데,
요즘엔 온갖 자극적인 볼거리와 복잡한 생활탓인지
극장문을 나서자마자 감흥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연극이 끝나고
오페라하우스의 우아한 화장실 거울로 본 내얼굴 어디에도
아름다운 봄날의 흔적은 없었다.

정말 우리를 설레게 했던 옛날의 봄날은
그렇게 빨리 흔적도 없이 우리곁을 떠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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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이드라아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피면 같이 웃고 꽃이지면 같이울던
알뜰한 그맹서에 봄날은 간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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