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구역식구들에게 보낼,[지난번에 빠진]편지를 부치고 나오다
가로수 그늘에 앉아있는 노점아줌마를 보았다.
아니 그 아줌마가 벌려 놓은 눈부신 여름먹거리들을,
허름한 대소쿠리에 색색으로 놓여있는 옛날 먹거리들을 보았다.
먹으면 입술과,혓바닥을 잉크빛으로 물들이는 진보랏빛 오디,
만지면 톡하고? 터질듯 말랑말랑 해뵈는 빨간 앵두,
씹으면 톡톡 씨가 씹힐것 같은 산딸기,
마치 하얀 주근깨를 뒤집어 쓰고있는것 같은 파리똥,
빨강과 주황과 노랑크레파스로 그린것 같은 꼭지달린 체리 ,
그옆에 과일은 아니지만너무나 풋풋해뵈는 연두색 완두콩,
알록달록 강낭콩,
이제 조금은 노란빛이되어가는 매실,
친절하게 삶아서 껍질을 벗겨 잘게 찢어논 머위대,..
.너무나 오색 찬란한 정물화다.
나는 그앞에 쭈그리고 앉아,
옛날 생각에 앵두,파리똥,산딸기,오디들을 한개씩 먹어본다.
오디가 제일 맛있었다.
삼천원을 주고 오디 한보시기를 사들고 가게로 갔다.
오디는 전라도에선 오두개라하고
지금처럼 먹거리가 흔치 않던 시절 ,
번데기와 함께 누에가 있으므로 먹을 수 있었던
고마운, 과일이라고 부르기엔 좀 그런 열매다.
뽕나무는 농약을 못하니 안심하고 먹어도 된대서
씻지도 않고 줏어 먹었더니 지금거리는게 있다.
흘린것을 주워 담았나?
남편도 내가 사들고 온 오디를 한입 먹어보곤,
< 벌써 오디가 다 나왔어? 그래도 옛날 맛이 남아있네 ? 산딸기도 나왔어?>한다.
부부가 다 시골 출신이라 엣날 먹거리에 대한 추억은 비슷한데도
내가 파리똥 얘기를 하자,그 크기에 대한 기억이 달랐다.
내가 아는 파리똥은
크기와 씨는 대추만 하고 ,말랑말랑하기와 붉기는 앵두같고,
몸에 파리똥같은 흰점이 가득하고,
맛은 오미자처럼달고 시고 떫은데
앵두와 같은 철에 나온다 .
이것은 내 설명이고 ,남편은 다른건 다 같은데 그 크기가 팥알만 하다 한다.
내가, 당신 살던 동네[장수]는 산골이라 ,
산속에서 자란 산뽕나무 오디가 작은것처럼
비료 꼴을 못봐서 그렇다. 했더니 그예 나가서 확인하고 와서 는 내 설명을 수긍했다.
86년까지 수유리에 살면서 우리들은 북한산과 도봉산을 참 많이도 다녔다.
특히 우리구역 여자들은 거의 매주 목요일 등산을 했다.
그때만 해도 산에서 취사가 가능했던 때라,
한동네 네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살던,
진영엄마,나,종필엄마,수연엄마,은하엄마는
남편들이 출근하자마자,전화를 돌려 등산준비를 서두른다.
누구는 고기,누구는 쌈장과 상치,누구는 김치,누구는 찌개,씻은 쌀과,마늘,신분증[수저]은 각자...
지령은 단 십분이면 충분하고,삼십분 안에 버스정류장으로 집합완료 한다.
6월은 해가 길어 등산하기 너무 좋은 철이었다.
잎이 피는 모든 나무들이 새옷으로 갈아입은
진초록 잎에서 뿜어내는 향취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율을 느끼게 하고,
아직 40이 안된 여자들이라,몸매도 봐줄만 하고,
원기도 왕성하여,하루종일 산길을 걸어도 지치지도 않고,
산속에서 해먹는 밥은 꿀맛이었다.
대학때 산악부였던 나의 리드로,
아카데미 하우스 뒤로 올라가는 대동문 코스에서 부터,
백련사쪽으로 올라가는 진달래 능선,
6번 종점으로 올라가는 백운대 인수봉코스,
그린파크 옆쪽으로 올라가다 다시 오른쪽으로 빠지는 우이암 코스는 ,거의 샅샅이 훑어서,
1년쯤 지나자 길눈이 어두운 진영 엄마까지,
어디쯤가면 물이 있고,밥먹는 자리는 어디가 좋고,
진달래는 어느 계곡이 예쁘고,개나리는 어느 능선에 많이 피고,
산목련은 어느 절뒤에 핀다는걸 다 알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6월초에 우이암코스를 등산하다
보문사 뒷편 버려진 텃밭 귀퉁이에 숨어있는 오디 나무를 발견했다.
밥을 해먹을 만한 장소를 찾다,
약간 평평한 바위위에 뭔가 검붉은 ,으깨진 열매들이 떨어져 있는것을 보고,위를 올려다 보니....
아 까만 산뽕[오디]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산뽕나무였다.
나를 빼고 아무도 그게 먹는 열매인줄을 몰랐다.
다른 등산객들도 모르는 모양으로 그열매는 그날 우리 여자 다섯이 입이 쌔까맣도록 따먹고,
다음주에 또 가서 따먹도록 남아 있었다.
우이암 등산은 ,아침에 해를 안고 올라가야 하고,한시간 여를 그늘없는 가파른 바위고개를 넘어야 하는지라,
아까시아 피는 오월 두째주의 황홀함 말고는 별 재미 없는 코스인데 ,
그때 우리가 발견한 산뽕나무로 하여,
6월이 시작되면 꼭 가고싶어지는 코스가 되었다.
81년부터 86년 6월까지,우리가 개포동으로 이사할 때까지
해마다 6월첫주가
그 숨겨진 산뽕나무로 하여 기다려 졌었는데....
우리가 강남으로 이사를 오고,큰애의 고교입시가 시작되며,그 즐거움이 사라져 버렸다.
그새 모두들 나이를 먹어,아이들 입시를 챙겨야 하게 되었고,
우리의 반란?을 필두로, 하나 둘씩 수유리[번동]를 떠나,
지금은 약국을 하는 현준엄마를 빼곤 아무도 그곳에 남아있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도 옛말이었다
.산도 계곡도, 집중호우가 지난 다음 올라가 보면,
집채만한 바위가 어디선지 굴러와
몇년동안 잘 나있던 등산로를 흔적없이 막아버리고,
약수터를 매몰시키고,아름드리 아카시아를 넘어뜨리곤 했다.
몇년전 이맘때 남편과 일부러 우이암등산을 가면서 산뽕나무 를 찾아갔었는데,
허무하게도 산뽕나무는 없었다.
눈사태에 꺾였는지,
집중호우에 쓸려 내려갔는지
안 가본지 십년이라 ,바뀌어진 구도의 내막을 알 길 없었다.
나이에 따라 가치관이 변해가고,
입맛이나 취향이 변해가니,
나만 빼고 언제까지 옛날 그대로 변치 않았으면 하는것이 못말리는 인간의 이기심이지만,
자꾸만 사라지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거울속의 늙고 추해가는 나를 보듯 가슴이 무너진다.
그 아름답던 신록과,
비온뒤 계곡을 울리며 힘차게 흘러내리던 맑은 물소리,
하루종일 그늘을 만들어주던 아카시아,
산벚꽃나무,오리목,칡덩쿨,맹감나무,으름나무,머루나무들....이모든것들이
이제는 희미한 추억으로 남아있는것이 못내 서글프다.
그런것들에 가슴 두근거리며 한주일을 기다리던 젊음이 가고,
때낀 거울로 사물을 보듯,
무덤덤한 눈으로 모든것을 보게되는 이 나이가,
산 날보다 살아야할날이 훨씬 적음이 ,
너무나 분명한 자각이 , 가슴을 시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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