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정현구목사님 목회칼럼

The True Story 8

왕언니 2020. 12. 22. 11:59

“너로 말미암아 ”...창17:1~12

 

1*  아브람이 구십구세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 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너희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일 만에 할 례를 받을 것이라 .

 

 

마태복음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이 한 해는 코로나로 시작했다가 코로나로 끝난 느낌, 한 해가  통채로 사라진 느낌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참 어렵고 힘든 이야기들도 많았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도 용기를 갖고 살아갔던, 또 힘든 이를 살려내는 사랑과 감동의 이야기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나쁜 이야기, 좋은 이야기들이 늘 뒤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또 나의 이야기를  하나씩 보태고 있습니다.

 

마치 무수한 나의 글과 사진들을 SNS 계정에 하나씩 쌓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더 양은 많아지지만, 더 복잡해지고 엉켜진 실타래와 같아서

이전보다 더 세상과 인간을 알 수가 없고, 이전보다 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좀더 단순화해야 하고 또 큰 이야기의 바른 줄기를 붙들어야 합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헬기를 타고 상공에서 설악산을 내려다본 특별한 경험이 있었는데

걸어서 울창한 깊은 숲 속에 들어가면 길을 잃기 쉽지만, 위에서 보니 길이 환히 잘 보였습니다.

그것처럼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쓰는 이야기들이 뒤섞여 정글을 만들 때

 

위에서 내려다 본 하나의 큰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본다면 ,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세상의 복잡한 이야기들,

인간이 써가는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을 바로 보게 해주는

하나님의 큰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골격은 이렇습니다.

먼저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 바탕이 주어졌고.

우리를 살 수 있게 하는 자연, 성별, 가정이란 구조, 다양한 관계들이 이미 주어졌습니다.( 창조)

 

그런데 그 주어진 자연, 가정, 관계, 본성 속에 비뚤어진 죄와 악이 들어오고

그것들이 계속 상처와 고통을 만들어 냅니다. (타락)

 

지금 인간은 지탱하는 창조의 힘과, 무너지게 하는 타락의 힘 사이에 있는데,

이것을 환자의 상태에 비유해보면...

우리 몸 안에는 원천 치유력이라는 창조의 구조가 들어 있어서

병들게 하는 세균이 몸 속에 들어오면, 처음 어느 정도는 몸 속의 치유력으로 이길 수 있지만

균형이 무너지고 정도가 심해지면 병이 깊어져 자기 힘으로 치유하기가 어려워

의료란 외부의 개입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지금 인간은 창조된 본성이란 자기 치유력으로 자기 안의 죄를 이길 수 있는 상태를 넘어섰습니다.

아담이 사탄의 거짓에 속고 동조한 이래, 죄의 독이 온 몸에 퍼져서, 생각과 삶을 마비시켜 죄의 종이 된 상태요,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가망이 없고 자기 힘으로 자기를 건져낼 수 없습니다. 이런 인간을 하나님은 구원하시려 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구원하십니까?

 

사람 속에 들어간 코로나를 어떻게 제거합니까? 사람 속에 들어간 사단의 독인 죄를 어떻게 제거합니까?

치료를 하려면 혈압, 맥박 등 여러 요인을 충분히 고려해서 약을 투여하고 수술을 해야지,

그냥 몸 속의 균을 제거한다고 아무 약이나 쓰거나 함부로 수술하면 아예 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도 마찬가지로, 무조건 구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과 세상을 만드신 그 기본 질서를 유지하면서, 인간의 자유와 인격을 보존하면서, 정의 법칙을 지키면서,

사랑이란 하나님의 본성을 지키면서, 사단의 심한 공격과 죄의 확산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그 깊은 내용이 성경에 있지만,

가장 단순한 내용은 <사단에 물린 넘어간 사람들을 사단의 머리를 부수는 사람을 통해서 >구원하시는 길입니다.

죄를 지은 아담의 후손들을, 의로운 아담의 후손을 통해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세기 3:15)

 

그러면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그 여자의 후손은 누구입니까?

여자의 후손은 보통명사와 고유명사가 다 있습니다.

먼저 아담과 달리 사탄의 거짓에 쓰러지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붙든 사람들,

아담처럼 자신이 하나님 자리에 오르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두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에 왕, 제사장, 선지자를 두셨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아담처럼 사단의 거짓에 넘어지지 않도록 돕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과 이들의 도움을 얻는 사람들은 각 시대에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여자의 후손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온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계와 죄성 안에 있어서,

왕, 제사장, 선지자의 삼중 직분을 동시에 자기 안에서 완전하게 이루시는, 그 누군가가 오셔야 했습니다.

온전히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할 그 분은 고유명사로서의 ‘그 여자의 후손’입니다.

그 분은 구원의 복의 온전한 통로가 되십니다.

 

 

(복의 통로)

창세기 12장은 바벨의 땅에 살고 있던 아브람을 하나님이 찾아간 내용입니다.

 

사단의 머리에서 나온 우상들이 지배하는 바벨의 땅에 사는 그를 불러내어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붙들게 함으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마치 침몰하는 배의 수많은 선원을 구출하기 위해, 먼저 고무 보트를 타고 간 선발대처럼,

아브람과 그 후손들이 만민을 구원하는 선민으로, 복의 통로로 선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브람을 선택하신 것은

아브람과 그 후손만이 아닌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선택하신 것이고, 그 중에 우리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은 늘 두 가지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모토가 to know him and to make him known.

그를 알고 그를 알게 하라는 두 가지 인데, 신앙의 핵심을 가장 요약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시 67:1-3).

 

첫째는 먼저 은혜를 베푸사 하나님의 얼굴 빛이 비춰달라는 것입니다.

그의 얼굴 빛을 비춘다는 것은, 마치 하나님을 얼굴로 대하여 만나고 알 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바로 인격적으로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함으로 말씀의 진리로 사단의 거짓을 이기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얼굴 빛을 받은 우리들이 그 빛을 반사하는 거울이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구원의 빛을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이 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즉 먼저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받게 하시고,

그리하여 그 빛을 반사하는 거울, 그 복을 흘러 보내는 통로가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일어납니까?

 

“그 날이 오면,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앗시리아, 이 세 나라가 이 세상 모든 나라에 복을 주게 될 것이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 나라에 복을 주며 이르시기를 "나의 백성 이집트야, 나의 손으로 지은 앗시리아야,

  나의 소유 이스라엘아, 복을 받아라" 하실 것이다.”(이사야 19:24-25. 새번역)

 

하나님의 얼굴 빛을 다른 민족과 나라가 받아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다시 빛을 반사합니다. 그리고 복을 다른 민족에게 흘러 보내는 통로가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 각 시대마다 다양한 형태로 하나님을 다시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듦으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할례

이렇게 아브람은 빛을 확산시키고 복의 통로가 되는 사명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그냥 마음먹기만 하면 가능한 것일까요?

 

우리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 빛을 반사하는 얼굴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복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창 17:10, 17)

 

그 역할을 하려면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하고, 받지 않으면 아브람의 후손에서 끊어진다고까지 말씀합니다.

할례의 의미가 무엇이길래 그렇게 강조하시는 것일까요?육체에 할례만 받으면 복의 통로가 절로 되는 것입니까?

할례가 지닌 중요한 의미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아브람에게 자손을 약속하셨을 때가 75세 때였지만

그동안 자녀를 주시지 않으셨다가 아브람이 99세 때 다시 찾아오셔서 자손을 약속하십니다.

그동안 아브람은 86세때  하녀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이제는 아브람 자신도 본 부인 사래도 결코 잉태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출생이 전혀 불가능해 보일 때 오셔서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한 두 명의 아버지가 아닌 열국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며

그런 의미를 가진 ‘아브라함’이란 이름을 주십니다.

 

아들을 주시는데 왜 하필 99세입니까?

그가 99세에 낳은 아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낳은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란 말입니다. 너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란 말입니다.

 

사탄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진리를 먹고 살아야 할 새로운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런 의미가 할례에 담겨 있습니다.

 

할례는 출생에 관련된 의식입니다. 이전의 육신의 몸을 벗어버리고

출생을 성별하는, 새 사람의 출생을 의미합니다.

 

바벨의 땅에서 출생하여

더 이상 사단의 머리에서 나온 바벨의 문화와 생각이란 옷을 입고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생각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육체란 하드웨어 속에서 사탄이 심어준 악성 바이러스를 제거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넣어 두셨던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작동되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

 

육체에 할례를 줌으로

할례의 의미를 항상 기억하도록 몸에 표시를 심어준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할례는 마음의 할례를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습니다.

 

마음의 할례는 바로 하나님을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 30:6-8).

 

마음의 세례

그렇게 매일 죽고 사는 마음의 할례와 마음의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에덴동산에서 사단이 아담을 찾아오고, 광야에서 사단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처럼,

우리의 삶의 자리에도 시험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 사단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을 속삭이고,

광야의 예수님에게 유혹을 한 것처럼, 매일 그런 유혹이 있습니다.

 

사단은 언제나 사단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을 우리 속에 넣으려고 하는데,

그때 아담처럼 사단의 머리에서 나온 말을 들으면 그는 죽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들으면 삽니다.

 

첫째 아담처럼 사단의 머리의 말을 들으면 죄와 죽음의 통로가 되지만,

둘째 아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사단의 머리를 부서뜨리고 생명의 통로가 됩니다.

매일 마음의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매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

마음을 공격하고 가정과 관계를 깨뜨리는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해야 합니다.

 

나로 말미암는 일은?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사회, 관계란 기본적 틀 안에서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창조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은혜를 우리 안에 두십니다.

다들 자기 힘으로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 유지되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세상 속에는 에덴동산에서처럼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는 길로 유혹하는 사단의 소리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안에서 살면서도

정작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부인하고 거역하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런 속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이 임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이 임한 것처럼,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이 내게 왔고,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이 흘러가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원형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결국 우리는 둘 중의 하나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타락이 가속화되거나 나로 말미암아 회복이 일어나거나,

나로 말미암아 더 어두워지거가 더 밝아지거나 입니다.

 

그런데 나로 말미암아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나로 말미암아 내가 만나는 이에게 무엇이 흘러가고 있습니까?

나를 말미암아 상대가 힘듭니까? 행복합니까?

 

대부분 사무실 책상 아래를 보면

컴퓨터와 프린터 등의 케이블이 널려 있는데 ,

모든 기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모두 전원에 연결되어있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연결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려고 노력하는 기본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얼굴 빛이 내게 비취는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 얼굴을 보는 다른 사람의 얼굴에도 그 빛이 비췹니다.

그럴 때 우리는 복의 통로가 됩니다.

 

이 한 해 나는 누구를 통해 무엇을 공급 받았고 누구에게 무엇을 흘려 보냈을까?

나로 말미암아 내가 만나는 사람은 어떤 느낌을 내게서 받았을까?

이 질문에 늘 긍정적 대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러나 승리하신 그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 곁에 계시고

성령님이 매일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지금 이곳에서 일상 속에서 이런 고백을 할수 있습니다.

 

성탄을 앞둔 이 때, 비록 예수님의 그런 특별한 승리는 아니라도,예수님의 은혜로

매일 사단의 머리를 밟는 작은 승리의 트로피들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특별한 복은 아니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고백하고 감사하며,

받은 일상의 복들을 매일 전하고 또 경험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깊이 영접하고 의지함으로

나도 사단의 거짓을 이기고 머리를 부수는 영적 승리를 거두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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