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조금씩 다가가기

항아리 채우기와 통나무자르기 그리고 안식일의 의미.

왕언니 2002. 3. 28. 17:27

     2002년 1월 14일

 

 

나는 지금 어제 우리 목사님의 주일 설교를 들은 감동을 독자들에게 전해드리려고 한다.
원래의 설교제목은 <풍성한 삶을 위하여>였지만
나는 내가 받아들인 감동의 크기대로 다른 제목을 붙여 재 해석 해 보았다.

그러니까 목사님의 설교와 내 평소 생각이 믹스된
나를 위한 묵상이라고나 할까?

성경은 마태복음 6장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이다.


스티븐 코비의 책<소중한것을 먼저하라>에 항아리에 돌채우기 이야기가 있다.
우리 인생을 커다란 항아리에 큰돌과,자갈과,모래를 채워야 하는것에 비유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것부터 채우게 될까?
어떤사람은 모래,자갈,큰돌 순으로 채우기 시작했더니 결국 큰돌을 항아리에 넣기도 전에
항아리가 꽉차서 넣을 수가 없었단다.

그러나 생각이 깊은 한사람은 큰돌을 먼저 넣고 그다음 자갈과 모래를 넣었더니
무리없이 항아리를 채울 수 있었다.
큰돌은 제일 소중한일로, 무엇보다 먼저 우선순위에 넣어야 할 일이다.
그다음 자갈은, 조금 덜 중요한 일이다.
큰돌의 주위에 빈자리에 넣어도 된다.
그 다음,모래는 꼭 안해도 되는 일에 속한다.
그저 여유시간에 넣어도 큰돌과 자갈 틈에 끼어 안넣은듯 스며들어간다.

2002년도 벌써 2주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새로 받는 86400원의 용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정말 중요한 일은 외면한채로 별 의미도 없는 ,하나 마나 한 일에 정력을 쏟고 있는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의 크고 작은 목표들이 궁극적인 큰 목표와 연결되어 있을때
하나님은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데....

우리는 대부분 정말 소중한 큰일을 바쁘다는 핑계로 뒤로 미룬다.
항상 나침반보다 시계를 우위에 두고 살려하고 있다.
그러나 통나무켜기를 예로 들어 보자.

여기 우리가 8시간 안에 잘라야 할 큰 통나무가 있다.
한사람은, 한시간동안 톱날을 잘 손질하고 간 후에 일곱시간안에 통나무를 깨끗이 잘랐는데
다른 한사람은 너무나 마음이 바빠 톱을 손질할 새도 없이 처음부터 톱질을 시작했지만
날이 무딘 톱으로 무리하게 자르는 바람에 8시간 안에 통나무를 자르지 못했다.
누가 더 현명한 사람일까?

일본의 신학자 오스키 고야마 는 <시속 3마일의 하나님>이란 책을 썼다.
시속 3마일이라면 사람이 발로 걷는 속도이다.
하나님이 300마일로 가시지는 못하겠읍니까?
그러나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걸을 때 아이들의 보폭에 맞추는것처럼
하나님도 연약한 인간의 수준에 맞추시는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더 빠른 ,더 더빠른 기계를 만들고 ,그리고는 마침내
자신들이 만든 기계의 속도에 자기 몸을 맞추려는 어리석은짓을 하고 있다.

봄이 남쪽에서 올라올때 돌쟁이 걸음마의 속도로 올라온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천천히 걸을수록 많은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더 많이 행복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며 스치듯 보는 사물,
고속철을 타고 가며 순식간에 지나가는 사물들이 과연 그렇게 아름답던가?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책 중에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가 쓴 <느리게 산다는것의 의미>라는 책이 있었다.
우리도 이제는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느림의 미학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느리다는것은 게으르다는 의미가 아니고
천천히 좌우를 살피며 생각하며 행동하자는 얘기 이기도 하다.

우스개 말로 우리나라의 조급증은 라면이 들어오면서 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그럴듯한 얘기이다.
1962년 부터인가 라면이 들어왔고,그 몇년뒤에 빠른 고속버스가 생기고,또 더 빠른 전철이 생겼으니까...
라면은 1,일번지 라면 2,이백냥라면,3,삼양라면,4,사발면,5,오뚜기라면,6,육개장라면,
7,칠보면,8,팔도라면,9,구운면 10,열라면 ...식으로 1에서 10까지 셀 수 있단다.[머리들도 좋다]

처음엔 국수따로 국물따로 만드는 시간이 아까워 5분안에 한꺼번에 끓일 수 있는 라면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그시간도 아까워 용기안에 뜨거운 물만 부으면 2분안에 먹는 컵라면,사발면이 나왔다.
도대체 그렇게 시간을 아껴서 우리는 무얼 얻고 있는가?

어떤 실직한 아버지가 재기하면서 10년 목표로 100억을 버는 목표를 정했단다.
정말 그는 잠자고 밥먹는 시간을 아껴 쉬지 않고 일해서 마침내 목표를 이루었다고 발표할때,
목표는 이루었지만, 그가 가정을 위해 돈을 벌겠다고 했지만 이미 가정은 깨지고 말았다.
아내와는 이혼을 하고 자식들은 마약에 손을대 철창신세를 져야 했던것이다.

돈을 버는 목적은 이익을 남겨야 하지만 ,오직 이익[돈]만을 추구하면 망하게 된다.
함께 추구해야 할 영적인 가치를 전수해주지 못하면 세월이 지나면 허무만 남게 된다.
오늘날 고속성장을 한 대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망하고
그 잘나가던 회장은 전 세계를 떠도는 도피자가 되어 있는것을 보고 있지 않은가?
기업윤리를 지키며 ,정직하게, 많은 사람을 건강하게 살리는 기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풍성한것을 온전하게 이루기 위해서는 항상 중심에 바로 서서
중요한 큰돌을 먼저 항아리에 넣을 일이요,
앞만 보고 달릴것이 아니라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창조적인 괄호[ ]를 위해
내 영혼의 톱날을 가는데 써야 한다.
그시간도 아까워한다면 톱날은 이내 무디어지고 방향을 잃어 엉뚱한곳으로 나아갈것이다.

현명한 벌목꾼처럼 비오는날 동굴속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톱날을 갈기도 해야한다.
바쁘다고 일주일 내내 방방 뛰며 에너지를 소진한다면 얻는게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안식일을 삶의 방향을 검토하기 위해서라도 잘 쉬어야 한다.
안식일을 주신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인체속의 시계가 일주일단위로 설계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안식일을 그냥 노는날[레저용]로만 생각해서는 안될것이다.
레저로 즐기는 <일요일> 에는 영적 충전없이 육체의 피곤함과 허무만 남기 쉽다.
우리는 안식일을 主日로 지킴과 아울러 가장 필요한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재 충전하는날로 삼아야 한다.

주일[안식일]날 교회 갈 시간도 없이 대치동의 학원가고 시험공부해서 좋은 대학 갔다고 하자.
그렇게 대학가고 좋은?직장 취직되고 고시패스한 사람들의 미래가 어떨것 같은가?
과정들이 생략된 신동이들의 장래가 과연 그렇게 행복하기만 할까?
하루에 2500칼로리가 필요하다고 한끼에 그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고 남은시간 공부만 하면
훌륭한 검사되고 판사되고 의사 될까?

날마다 매스컴에 오르는 사람들은 다 머리 좋고 공부 잘하던 장래가 촉망되던
누구나 부러워하던 옛날의, KS 마크였던 아이들이었을것이다.

봄에는 꽃피고,
여름에는 열매맺고
가을에는 풍년들어[수확하고]
겨울에는 생각하고 쉬면서 내년 농사를 준비하는 옛사람들의 생활이 그립다.

젖먹을때 젖먹고 기어다닐때 기어다니고 걸음마할 때 걸음마하는 순리로운 성장이 필요하다.
인간의 욕심 채우자고 비닐하우스마다 밤에도 불을켜서 속성재배한 오이랑 호박을 먹으며
우리가 무슨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중심에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원칙을 반듯이 세우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생활로
쉼표[,]와 괄호[]와 안식을 통해, 느낌표[!]의 하나님을 날마다 발견하는 삶을 살아갔으면...

 

 

 부록      라면신경

 

 

전능하사 안성탕면을 만드신 농심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 아들 신라면을 믿사오니 이는 분말 스프를 잉태하사
건더기 스프를 낳으시고


불위 끓는 물에 고난을 받으사 상위에 오르시어
죽은지 3분만에 쫄깃한 면으로 다시 살아나사
배고픈자의 배를 부르게 하시오며
젓가락으로 맛과 영양을 심판 하러 오시리라


거룩한 새우탕 컵라면과 서로 교통 하는 것과
국물을 베푸시사 몸이 다시 사는것과
먹은 김치와 더불어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 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