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봄 우리 동네 산에서 찍은 맹감나무 새잎입니다.]
멕시코 시티의 대형 시장 그늘진 한 구석에 '포타라모'라는 인디언 노인이 있었습니다.
노인 앞에는 앙파 스무 줄이 걸려 있었습니다. 시카고에서 온 미국인 한 명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양파 한 줄에 얼맙니까?"
"10센트라오." 포타라모는 말했습니다.
"두 줄에는 얼맙니까?"
"20센트라오."
"세 줄에는요?"
"30센트라오."
그러자 미국인이 말했습니다.
"별로 깎아 주시는 게 없군요. 25센트 어떻습니까?"
"안되오." 인디언이 말했습니다.
"스무 줄을 다 사면 얼맙니까?" 미국인이 물었습니다.
"스무 줄 전부는 팔 수 없소." 인디언이 말했습니다.
"왜 못 파신다는 겁니까? 양파 팔러 나오신 것 아닙니까?"
그러자 인디언이 답했습니다.
"아니오. 나는 지금 인생을 살러 여기 나와 있는 거요.
나는 시장을 사랑한다오. 북적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서라피(멕시코 남자가 어깨에 걸치는 모포)를 사랑한다오.
햇빛을 사랑하고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한다오.
페드로와 루이스가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그들이 자기 아이들이며 농작물 얘기를 하는 것을 사랑한다오.
친구들 보는 것을 사랑한다오. 그것이 내 삶이오.
바로 그걸 위해 하루 종일 여기 앉아 양파 스무 줄을 파는 거요.
그런데 한 사람한테 몽땅 팔면 내 하루는 그걸로 끝이오.
사랑하는 내 삶을 잃어버리는 것이오. 그러니 그렇게 할 수 없다오."
캔 가이어, 묵상하는 삶 (서울: 두란노, 2000),
어제 아침 TV 에서 강원도 어느시골에서 혼자 흙집을 짓고,
유기농보다 한수 위인 생명을 살리는 농사를 지으며 살고있는 이인숙씨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한때 파독 간호원이기도 했던 그녀는 나만큼 늙어보였는데
결혼도 안하고 20년동안 혼자서 산속에서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두달 전기료가 1700원 , 나무를 아끼느라 아궁이에 불을 때는건 어쩌다 큰 행사이고
평소엔 방한구석에있는 연탄난로에 돌을 얹어 뎁혀 그 돌을 신문지에 싸서
가슴에 안고 자고, 책을 읽는가 하면 , 손님이 오시면 그 돌을 방석처럼 깔고 앉으라고 내놓습니다.
의식주 모두에 체면이나 허세를 위한 일체의 치장이 없는,
빨간 니트를 입고 숏커트를 한 화장끼없는 그녀의 얼굴이 소녀처럼 해 맑아 보였습니다.
TV도 컴퓨터도 없이 살면서 전화가 오면 마지못해 받고
대답은 전화로 하는게 아니라 한참있다가 편지나 엽서를 쓴다고 합니다.
우체부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개울을 건너 한참이나 나가야하는 큰길 가까운쪽에
헌 페인트통 하나를 놓아두고 우편함으로 이용하는 그녀,
그녀는 자기가 그렇게 사는것은 무슨 목적을 위해 거창하게 사는삶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냥 주어진대로 천천히 사는것 뿐이라 말합니다.
자기가 필요한 것을 직접 가꿔 먹고,
나무를 줏어오고 자르는것도 자기의 필요를 위해 하는것이 아니라
<이게 이렇게 꺾여 있으니 얼마나 불편하니? 내가 치워줄게...>하면서
부러져 대롱대는 가지를 톱으로 잘라주고, 발밑에 어지럽게 딩구는 죽은 가지들을 치워주고
쓰레기를 남기지 않으려고 냉장고 사용대신 움막에 광을 만들어 농작물을 저장하고
키낮은 다락방 창문으로 눈내리는 산을 보며 혼자서 잠들고 혼자서 눈뜨며 시인이 되는 그녀는...
늘 혼자이면서도 늘 어제와 다른 자연을 보면 무섭지도 지루하지도 않다고 말합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받고 맘에 드는 책은 열번 스무번도 곱씹어 읽는답니다.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지도 모르면서 돈 버는 재미로 ,돈벌기에 급급하는 사람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뱅뱅 돌다 지쳐 쓰러지는 사람들
향방도 모르는채 달려가는 화살처럼 무의미한 돌진에 기력을 소진시키는 사람들...
날마다 비교하고,절망하고,정함이 없는 재물에 마음을 두고 전력투구하다가
지치고 실망하여 피폐해 가는 사람들 속에서
양파장수 할아버지와 이인숙씨의 느리게 살기는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이번엔 지난 가을 라디오에서 들은 생강장사 이야깁니다.
어떤 5일장에 한가마니의 생강을 팔러온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남보다 일찍 와서 부지런을 떤 덕분으로 양지쪽에 비교적 좋은 자리를 차지할수가 있었습니다.
자리는 좋았지만 그러나 생강이란게 집집마다 조금씩 양념으로 쓰는 거라
한꺼번에 많이씩 사가는것도 아니고...남자는 지루하고 춥고 그랬습니다.
그때 마침 악세사리 장사 처녀 둘이 늦게온터라 자리를 잡지못하고 빙빙 돌다
생강장사의 자리를 보고는 탐을 냈습니다.
그러나 이미 자리를 잡은 생강장사에게 무턱대고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할수도 없어
궁리끝에 한가마니 생강을 다 사겠다고 했습니다.
< 아이구 그럼 좀 싸게라도 드려야지>
생강장사는 얼씨구나 청하지도 않았는데 생강을 도매금에 넘기고 ,
집에 누가 기다리지도 않는데 , 일찌감치 손을 털고 포장마차에서 낮술을 들이키다 갔습니다.
그 덕분에 악세사리 장사를 처음 시작한 처녀들은 장사를 아주 잘했답니다.
[햇솜님방에서]
나이가 들면서
행복은 결과에 의해 얻어지는 만족이 아니라
일을 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돌아보면 비로소 느껴지는 기쁨>이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저는 아이들이 어렸을적 ,도와주는 손길도 없이 하숙생을 둘이나 치면서도
밤이고 낮이고 틈나는대로 뜨개질을 하여 두 아이에게 입혔습니다.
어떤때는 뜨다가 풀고 다시 뜨고하여 한달이나 걸려 옷하나를 만들기도 했는데...
나말고 그시대의 다른 여자들도 다 그렇게 살며 행복해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시장에 가보면 중국사람들 덕분에 손뜨개 옷들이 너무 쌉니다.
나는 하나 살돈으로 형편없이 싼 옷을 두서너개 사면서 가슴이 아픕니다.
싸게 사는 즐거움보다
어깨쭉지가 빠지도록 뜨개질을 하고도 몇푼 벌지못하는 중국 여자들이 불쌍하고
헐값에 살수있는 옷들이 많아 아무도 뜨개질을 안하려는 요즘 세태가 서글픕니다.
나자신부터 눈이 아프다,어깨가 아프다,하면서
손으로 뜨는 즐거움을 외면하게 되는게 싫어집니다.
서툴고 느리지만 한코 한코 떠가면 소매가 되고 몸통이 되는것이 기뻐서
요기까지만,요기까지만 하면서 밤을 꼴딱 새고도 이튿날 할짓 다하던 그 때가 좋았습니다.
딸이 대학 시험을 치르던 전날 아이의 흰조끼를 뜨고 있었는데
그날밤 안에 끝을 내면 시험에 붙고 끝을 못내면 떨어진다하고 나혼자 최면을 걸었었습니다.
그리고는 조금 무리이다 싶은데도 결국 그밤에 끝을 내고
남에게 말도 못하고 조마조마 결과를 기다렸는데 ...
정말 거짓말처럼 시험에 붙어서 나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아기를 임신하면 정말 시간이 더디갑니다.
세상에서 그보다 더 지루한 기다림은 없을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눈에 보이지 않는 그 기다리는 시간동안 천천히 할일을 다 하십니다.
요즘엔 초음파라는 신의 영역을 넘보는듯한 기계가 있어,
전에는 꿈도 꾸지못할, 배속에서 천천히 자라나는 아기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찾아보면 우리 주위에 의외로 많은 < 천천히> 속에 감춰진 신비와 위력을 실감합니다.
전쟁이 터지고 홍수가 나도 배속의 아기가 더빨리 자란다는 소문을 들은적은 없습니다.
태어나서는 말이 좀 늦되거나 빠른 아이는 있지만....
그렇다고 태어나서도 누워있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 앉는일도 없습니다.
스탭 바이 스탭...
더디지만 정말 아기는 하나님이 정하신 < 예측가능한 순서>의 질서대로 천천히 자라납니다.
작년 이맘때 우리 며느리가 남산만한 배를 안고 설을 쇠러왔었는데
뱃속의 그 아기 유찬이가 어느새 3월16일이 돌이 됩니다.
내 손자지만 주일날 교회에서 보거나 2주일에 한번 와서 자고가기에
날마다 볼수는 없어 오히려 세월이 빠른것 같습니다.
새빨갛던 그 쑥쑥이가 어느새 이빨이 여덟개나 나고 벌써 한발자국씩 걸음을 뗀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관장하는 생명이 있는것들은 다 천천히 자라지만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엄하게도 그 주도권을 사람들이 쥐기만 하면 천천히의 질서를 형편없이 무너뜨려
우리에게서 감사도 계절감각도 앗아가 버립니다.
겨울이 오기도 전에, 아직 밀감이 지천으로 깔려있는 가을끝자락에 벌써 딸기, 참외가 나오고
옛날 입춘때도 나오기 힘든 냉이와 돗나물이 겨울 초입에 나오는가 하면
지난주에는 비닐하우스에서 키웠는지 성큼 자란 쑥도 마트에 나와 있었습니다.
상인들의 그 빠름과 성급함이 우리들에게 빨리 싫증을 주고 신비감도 기다림도 앗아갔습니다.
이젠 입덧을 하며 딸기가 나오는 봄을 손꼽아 기다리는 임부도 없고,
입맛잃은 노모에게 쑥국을 끓여드리기 위해 봄을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의 조급증은 , 가히.... 돈만있으면, 돈이 된다 싶으면.....,
살아있는 곰의 쓸개즙까지 뽑아내는 판이니 여차하면 산호랑이 수염도 능히 뽑을 세상입니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기다리기도 전에 미리 미리 대령하는 과일과 산나물들은
우리에게 더 이상 신비로운 영약도 아니고, 더이상 감사의 대상도 아닙니다.
생일날이나 얻어먹던 이팝과 고깃국이 꿀맛이었지.
아무날이나 지천으로 널린 시식코너에서 공짜로 먹는 고기가 무슨 꿀맛이고 감사의 대상씩이나 되겠습니까.
[작년봄 우리 아파트에서 모과꽃을 찍었습니다.]
오늘이 벌써 입춘입니다.
한동안 올겨울은 너무 춥지않아 탈이라고들 호들갑을 떨다가
열흘넘게 꽁꽁 얼어버린 수은주를 보며 또 너무 춥다고 난리들을 떨었지요.
그러나 어김없이 시간이 지나니까 봄이 오고있습니다.
<안단테>란 악상기호는 사람들의 걷기정도의 빠르기라지요?
봄이 오는것도, 돌쟁이 우리 유찬이의 걸음마 속도로 남쪽에서부터 올라온다고 합니다.
우린 항상 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들 말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너무 바빠서 봄과 눈을 맞출 시간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날마다 차를 타고 지나가 버리는데 새싹들이 조금씩 올라오며 손짓을 하는것을 어떻게 알아보겠습니까?
이봄엔, 안단테...안단테...
우선 저부터 더 많이 걸으며 시간을 내서
언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새 생명들과 눈을 맞추고 웃어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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