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꿈꾸는 세상

돈에는 혀가 없다....조선일보 칼럼에서

왕언니 2015. 4. 27. 17:52

 

 

돈을 받고 심부름을 한 사람과 아무 보상도 없이 심부름을 한 사람 중 누가 더 심부름의 취지에 공감했을까.

설득을 인지적으로 설명하는 학자들이 종종 던지는 이 질문의 답은 후자,

공짜로 심부름한 사람이다. 돈을 받은 사람은 '대가'에 따르는 기계적 행동에 그치지만,

돈을 받지 않은 사람은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스스로를 납득(설득)시키기 때문이다.

 "이 심부름은 아마 좋을 일일 거야. 그래서 내가 하는 게 맞을 거야…"라고.

설득이란 상징(언어)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으로 정의된다.

마음을 얻으면 행동도 따라온다. 반면 돈으로 행동을 구매할 수는 있으나 마음까지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인지의 흐름을 중단시켜 설득을 방해한다. 그래서 돈이나 선물 공세를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기업과 정치 사이에 있는 미지의 섬에서 살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일으키는 풍파를 지켜보며,

세상에는 대체로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돈에 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돈에는 혀가 없는 걸 아는 사람들.

 

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고, 정치는 설득을 목적으로 한다.

기업은 회계 장부가 중요하지만, 정치에는 미래 청사진이 필요하다.

때론 기업도 설득을 해야 할 때가 있고 정치도 돈을 필요로 하지만, 어느 선을 넘어서 둘이 뒤엉키면 기업인은 망하고, 정치인은 부패한다.

돈으로 정치를, 설득으로 기업을 하려는 사람들은 죽음의 계곡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수성가로 기업을 일군 성완종 회장은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경제사범 출신의 전직 국회의원이다.

부침이 얼룩진 그의 삶과 갑작스러운 죽음이 몰고 온 작금의 사태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가 그렇게 두툼하고 화려한 컨택 리스트를 확보할 수 있었던 우리 정치계의 생태계다.

돈에 혀가 있다고 믿었던 그는 사람들에게 말하듯 돈을 뿌렸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정치가 마른 땅처럼 그 돈을 빨아들였다는 점이다.

국민이 뽑아 주고 세금으로 월급 받게 해준 사람들이 괴 돈다발 위에서 춤을 춘 꼴이다.

성완종 회장은 죽기 전 그 리스트에서 '의리 없는' 8명을 추려내 메모로 남겼다.

그중에는 성 회장과의 친분조차 부인하다 들통이 나 총리직을 내놓은 사람도 있다.

그들이 유독 경남기업하고만 '친분'을 쌓고 다른 '친분'을 거절했을 개연성은 어디에도 없다.

성 회장의 표적에서 벗어난 이들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의리'를 지켰건 버렸건 돈과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달콤한 '돈의 대화'를 속삭였을 것이다.

혀도 없는 돈과 대화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부패했다'고 부른다.

신뢰와 설득이 절실한 정치인에게 돈은 상극이나 다름없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새 헌법을 지지하는 글 모음인 '더 페드럴리스트'를 쓰며 익명을 사용했고,

어떤 이는 부자로서 이해관계가 얽힌다는 인식을 피하기 위해 돈을 모두 기부해서 파산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후보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캔디데이트(candidate)'는 '하얗다'는 뜻의 라틴어 '칸디두스'에서 유래했는데,

이 말에는 후보가 어떠한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롭다는 뜻이 담겨 있다.

 

로마인들은 정치인의 말을 판단할 때 "누가 이득을 보는가(Cui bono?)"라는 질문을 던져 진실성을 따져 물었다.

그 결과 서양에서 정치는 돈으로 거래하기 어려운 '말의 땅'이 되었고, 의회는 글자 그대로 '말의 집(parliament)'이 되었다.

돈과 대화하고, 사람들에게는 외려 막말을 일삼으며,

부패방지법에서 이해 충돌 조항을 삭제하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절대 이해 못 할 세상이다.

혹시 "말로만 정치를 한다고? 순진 하시네 교수 양 반"이라고 혀를 찰 사람이 있다면 시카고대 스티븐 레비트 교수의 연구 결과에 주목해보라.

그는 연구를 통해 선거 캠페인에 쏟아 붓는 돈이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밝혀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 소액 기부자는 느는 반면 기업의 기부는 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동원 선거'가 아닌 '미디어 선거'시대이고, 사람들의 입소문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얼마 전 출마를 공식 선언한 힐러리 클린턴도 SNS에서 선거 여정의 첫발을 떼지 않았던가.

성완종 리스트를 두고 여야는 서로 "너희는 떳떳하냐"고 손가락질이다.

메마른 땅 깊이 돈줄이 선인장 뿌리처럼 엉킨 사막 같은 우리 정치판에 지진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새 땅 위에서 미래 비전을 설득하는 청렴한 지도자가 나와 정치의 문법을 바로잡는다면 기업인도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그게 적폐 해소이고 정치 개혁이고 경제발전이다.

대통령은 사람들을 (자신에게)'충성파'와 '비충성파'로만 분류하는 것 같다.

기왕에 부패 척결을 외쳤으니 그 충성파를 다시 '돈에 혀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눠 보시기를 권한다.

부패한 측근들로 이 땅의 부패를 바로잡는 것은 무망(無望)한 일이다.


                                     박성희<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