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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왕언니 2009. 2. 26. 01:47

 

 

 

 

 

봉사부장을 그만두고 나니 정말 갑자기 시간이 널널해졌다.

무언가 새로 시작해보고 싶은데 온달은 정말 전두엽이 퇴화 되어가는지 도무지 새로운것을 시도해보고싶어하지 않는다. 같이 서예를 하자 해도 싫다 하고 ,그럼 노블카운티에서 하는 서예에 등록하겠다하니 ,시큰둥 하면서 절대 승용차 타지 말고 다니려면 혼자 다니라 한다 . 하루종일 얼굴 마주보고 쎄쎄쎄나 하자는건지....

 

밖으로 나가려하는 내게 심사가 뒤틀려 동네 산책도 먼저 제의 하는법이 없고 내가 간다 하면 마지 못해 따라 나서고,그저 말없이 하는건 춥지 않으면 아침 배트민턴 한시간,성경읽기 ,두시간, 그리고는 tv로 주식동향 보기, 인터넷 바둑두기가 일과의 전부다. 

 

 아침 먹고 치우고 둘이 각기 딴자리에서 두어시간 성경을 읽으면 이젠 눈이 아프다. 다리도 아프니 매일 산에 갈 수도 없고, 그럼 영화나 보러 가자하면 이건 이래서 재미 없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그저 군말없이 따라나서는건 액션 스릴러나 ...성룡 영화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브래드피트 주연에다 화제가 되고 있는 <벤자민버튼의 시계...>가 보고 싶어 감언이설로 꾀어 극장까지 갔는데,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는 안볼테니 혼자 보라고 억지를 부린다. 애들이라면 한대 쥐어박고 싶은걸 간신히 참고 ....

 

3개부문 아카데미 상을 탔고 ,요즘 워낭소리 다음으로 예매2순위래 ,좋은영화니까 그러지...

[워낭소리도 보고 싶은데 ,다큐멘터리는 더 흥미 없어해서  입도 뻥끗 못했다]

어쨌거나 밥사주고 내돈으로 표사서 ,둘이서 서먹하게 앉아서,오리역 cgv에서 벤자민 버튼의 시계를 보았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 팝콘을 열심히 먹고 있었는데 ,끝나고 일어서며 보니 온달만큼 노숙?하다. 온달도 저렇게 혼자 영화를 보러다니면 얼마나 좋을가?

 

 [감명깊은 영화였지만 2시간 반에 가까운 긴 영화를 한번 보고 완벽한 리뷰를 쓰기는 어려워서

그러나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이기에 여기 저기서 이해를 도울만한 글들을 옮겨와 모았습니다]

 

 

 

 

할리우드 기술력과 주인공들의 발군의 연기가 1등 공신인 영화.

브래드 피트와  블란쳇은 20~80대에 이르는 발군의 연기로 이름값을 했다.

피트의 ‘역노화(逆老化) 과정’은

피트의 표정 연기를 모션캡처(배우의 몸에 센서를 부착해 표정이나 움직임을 재생하는 기술)한 다음

컴퓨터그래픽으로 손보고, 나이대에 맞는 대역 배우의 몸에 합성해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피트[블란쳇도]의 실감나는 주름의 경우,

약 1㎜ 두께의 특수종이를 이용해 나이대별로 다른 주름 분장을 만들어놓고 얼굴에 직접 붙이는 세밀한 공정을 따랐다는데 ,

정말 분장이라고 느껴지지 않을만큼 자연스러웠고

20대의 브래드피트는  역광으로 처리하긴 했지만 ,늙은 여자인 내가 봐도 가슴이 뛰는 미소년이었다.

가을의 전설보다 더 젊은 얼굴....

아마 브래드피트의 데뷔이전에 이런 얼굴이 아니었을가?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 포스터(왼쪽),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소설 표지(오른쪽)     © 이뉴스투데이

 
『위대한 개츠비』의 스콧 피츠제럴드 소설로
나이를 거꾸로 먹는 독특한 사내의 일생 그려

 <파이트 클럽>, <세븐>, <조디악> 등에 의해 그 실력을 인정받은 데이빗 핀처 감독의 신작<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원작은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F. 스콧 피츠제럴드가 26세 때 쓴 동명의 단편소설이다.

 죽음을 향해 가는 삶[ ‘젊어지는 남자’]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은 원작인 미국 소설가 F.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의 것이다.

 

피츠제랄드는 1923년 단편을 발표하면서

마크 트웨인의 유명한 말,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처음에 오고 가장 나쁜 것은 맨 마지막에 온다.

만약 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인생은 무한히 행복하리라”에서 착안했다고 밝혔다.

 

당연히 할리우드가 탐낼 소재였고, 1950년대에 처음 영화화가 추진됐다.

그러나 노인으로 태어나 요람으로 돌아가는 판타지의 현실화는 쉽지 않아, 40여년간 기획안은 할리우드를 떠돌았다.

‘세븐’ ‘파이트클럽’으로 유명한 데이빗 핀처 감독에게 초안이 간 것이 92년. 핀처 또한 2003년 아버지의 죽음 이후 본격적인 영화화에 나섰다.

남북전쟁 시대의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로저 버튼 부부의 첫 아이가 노인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로저 버튼은 자신의 아이가 노인으로 태어나자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다.

받아들이기도 믿기도 힘든 사실이지만 자신의 아들이기에 세간의 이목을 무시한채 고집스럽게 ‘벤자민’을 키워나간다.

[영화에서는 버튼은 벤자민을 양로원에 갖다 버리고 양로원의 흑인 엄마가 사랑으로 벤자민을 키운다]

 

노인으로 태어났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젊어진다’는 독특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문학적 천재’라고 칭송받던 스콧 피츠제럴드의 기발한 상상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상냥하고 총명하지만, 가족과 아내 그리고 같은 세대의 누구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하고

시간의 흐름 속을 덧없이 방황했던 한 사나이의 인생과 사랑 그리고 청춘의 덧없음을 그려낸 문장들은

삶의 신비를 담아내어 문학적 감동을 선사하는 데 모자람이 없는 환상소설이다.

오직 피츠제럴드만이 쓸 수 있는 가장 피츠제럴드다운 소설이라 일컫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데이빗 핀처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됐다.



‘ 
▲     © 이뉴스투데이


데이빗핀처는 비판적 시선과 염세주의 색채를 담은 스릴러 영화를 주로 만든 감독이기에 이 괴상한 이야기가 어떻게 표현될지 자못 궁금했다.

어쩌면 판타지 멜로라는 끈적끈적한 장르를 ‘그가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하는 염려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감독은 이런 염려를 단번에 불식시키며 조금은 어둡고 쓸쓸한 원작을 자신만의 따뜻한 색채로 표현해냈다.

 

원작이 나이에 따른 정체성의 문제를 풍자적으로 그려갔다면, 영화는 벤자민과 데이지의 판타지 멜로에 집중한다.

그러나 영화를 그저 ‘젊어지는 남자’와 ‘늙어가는 여자’의 로맨스로만 좁혀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엇갈리는 멜로를 축으로 하되, 삶과 죽음, 시간성과 상실감의 문제를 묻는다.

나이를 거꾸로 먹든, 살아갈수록 인생의 황금기가 찾아오든, 시간은 흐르고 삶은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것이다.

감독 또한 “처음에는 사랑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에릭 로스(‘포레스트 검프’의 시나리오 작가)의 각본을 읽고는 죽음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특히 벤자민이 자신의 딸에게(감독이 관객들에게) 전하는 주옥같은 대사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감독은 소설에서 ‘노인으로 태어나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젊어진다’는 큰 줄거리만을 차용했을뿐 그 외의 것들은 모두 바꿨다.

하긴 166분이란 긴 러닝타임을 40페이지 밖에 안되는 단편 소설로 채우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소설과 영화는 첫 장면부터가 다르다.
소설은 남북전쟁 시대의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하는데 ,

영화는 뉴올리안스에서 세계1차대전이 끝나가는 날을 배경으로 한다.

또한 소설에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늙은 벤자민’이 태어난 것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어느 시계기술자가 아들이 군대에서 죽자 그 죽음을 되돌고 싶어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삽입해

왜 ‘늙은 벤자민’이 태어났는가에 대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전체적인 플롯 또한 다르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여주인공 로즈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갔던 것처럼

벤자민의 부인이자 여주인공인 ‘데이지’가 병원에서 임종을 앞두고

딸 캐롤라인[줄리아 오몬드]에게 아버지 ‘벤자민’의 삶을 들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소설에서는 데이지의 임종도, 딸도 등장하지 않는다.
 

▲     © 이뉴스투데이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벤자민이 평생 데이지를 사랑했다는 설정이 아닐까?
소설에서는 그저 신체적 나이가 맞지 않아 부인에게 흥미를 잃은 것으로 표현돼있는데,

영화에서는 데이지가 그들의 아기를 낳자 ,그녀가 아기를 둘이나 보살필 수 없을것 같아 데이지와 딸을 위해 벤자민이 떠나주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는  평생 그녀 곁을 맴돌며 그녀만을 사랑한다는 순애보적 이야기로 여성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버지가 무책임하게 그를 양로원에 내다 버린 것, 흑인인 새엄마가 사랑으로 돌봐주는 것, 몸에 문신을 괴짜 선장을 만나 새로운 삶을 연습하는것 ,

그 선장에게 인생을 배우고 항해를 떠나는 것, 데이지와 함께 성장하고 인생의 친구가 된 것,

그녀를 발레리나로 설정하고 교통사고를 통해 그녀의 꿈을 좌절시킨 것,

그런 이유로 비슷한 나이가 된 둘이 꿈같은 시간을 보내는것,처음 같이 시간을 보낸 불륜녀가 영국 해협을 건너는 것.등등
소설에는 없던 캐릭터들과 재미있는 요소들이 가미되면서 완전한 영화로 재탄생됐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전작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 감독과,

노인과 아이를 넘나들며 청춘 아이콘이 아닌 '배우'의 모습을 보여준 브래드 피트에게 박수를 보낸다.

긴 러닝타임과 잔잔한 메시지로 인해 일부 관객들은 지루했다는 평도 있지만 아직까진 감동적이었다는 평이 더 우세한것 같다.


 


작품상, 감독상(데이빗 핀처), 남우주연상(브래드 피트), 여우조연상(타라지 P 헨슨) 등 13개 부문에서 아카데미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

미술상, 분장상, 시각효과상에만 만족해야했던 이번 아케데미 시상식은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줬지만 ,

모든 영화가 그러하듯  아카데미상을 많이 받은 영화가 다 훌륭한것은 아니며,다 흥행에 성공하는것도 아니지 않는가?

평론가나 심사위원의 평에 의해 느낌이 달라지기보다는 관객들 스스로가 감동을 느끼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과연 그럴까?

 

뉴올리언즈에는 시계를 아주 잘 만드는 케토 라는 장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할 수 없이 아들을 전쟁터에 내보낼 수 밖에 없게 되고 연이어 아들의 싸늘한 주검 만을 맞이하게 된다.

 

케토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새롭게 지어지는 기차역에 붙일 시계를 거꾸로 가게 만든다

시계를 설치하는 행사가 열리는날 케토씨가 만든 시계를 보고 많은 이들은 당혹스러워 했지만

이윽고 케토씨는 시계를 일부러 거꾸로 가게 만들었다고 얘기하면서

이렇게 시계를 거꾸로 돌리면 전쟁터에서 죽은 아들이 혹시나 살아 돌아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이후 케토씨는 고향을 떠났고 죽었다는 소문만이 돌아다닐 뿐이다.

이후 1차세계 대전이 끝날즈음 버튼가 에서는 아이가 태어난다 하지만 아이는 보통의 아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태어나자 마자의 모습이 80대의 할아버지 같이 늙어서 태어난 것이다.

 


 

 

감독은 이 대목에서 이 아이가 케토씨의 환생 이라는 복선을 부여한다

케토씨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고 싶어 했었다

공교롭게도 케토씨가 사라진지 얼마 안된 시점에 태어난 아이가 노인의 모습을 하고 태어난 것이다.

이 장면에서 한가지 놀라운 점은 감독은 동양의 윤회사상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하튼 이렇게 흉칙한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버튼가의 아기는 양로원 앞에 버려지게 되고

양로원을 운영하고 있는 퀴니는 아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장면에서 부터 감독은 이 영화가 운명에 대한 얘기 라는 복선을 깐다.

 

퀴니는 아이의 이름을 벤자민 이라고 짓게 되고 벤자민은 여느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시간이 흐를 수록 젊어진다.

즉 보통의 인간들과는 다른 생체주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보통의 인간들은 태어날때 신생아로 태어나 갈수록 성장하게 되고 20대에서 40대까지 가장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다가

40대 이후부터 조금씩 퇴화 되기 시작해서 60대가 넘어가면서 부터 급격하게 노쇠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벤자민은 80대 정도의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 갈수록 젊어지기 시작해서 보통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건장한 청년시절을 보내고

보통사람들이 60대가 넘어 가면서 부터 급격하게 노쇠하는 시점에서는 급격하게 어려지고

보통의 인간들과는 달리 신생아 상태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감독이 이러한 설정을 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케토씨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아들이 살아 돌아 올지도 모른다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케토씨가 환생한 벤자민은 생체주기가 거꾸로 되어서 살아가야 할 운명으로 나온다.

하지만 케토씨의 열망과는 틀리게 벤자민은 생체주기 시간만 거꾸로 일뿐이다.

 

다시말해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진 않는다는 것이다.

벤자민은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의 모습으로 죽을 운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진 않았다

왜냐하면 벤자민은 자기와 비슷한 시기에 정상적으로 태어나 자란 데이시와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되고 서로가 다른 모습으로 늙어 가기 때문이다. 

 


 

벤자민과 데이시는 모습만 반대로 변해갔을뿐 시간은 정상적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감독이 케토씨의 열망과는 틀리게 그의 생체주기만 거꾸로 돌린데는 나름이유가 있다.

케토씨가 아무리 시간을 돌리고 싶어도 시간만은 절대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이 대목에서 못박아 둔다.

 

벤자민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첼시호의 선원이 됨으로써 자립하게 된다

마초기질이 다분한 첼시호의 선장은 벌새를 통해 이 영화를 관통하는 또다른 주제인 사랑에 대한 복선을 얘기한다.

벌새는 1초에 80회나 날개짓을 하는데 그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숫자8 과 모양이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숫자 8을 옆으로 눕히면"∞" 무한대가 된다고 주장한다."∞" 무한대 표시는 고등학교 정도의 학력을 가지면 다 알고 있는 기호일 것이다.

 

"∞" 무한대를 한번 잘 관찰해 보자 마치 뫼비우스의 띠를 한번 꼬아 놓은것 처럼 보인다

즉 다시말해 끊임없이 순환하는 구조이며 일방이 아니고 그것도 쌍방향이다

양쪽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쌍방향의 사랑은 무한대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 감독은 자신이 주장하는 무한대의 사랑을 영화속에서 벤자민의 두가지의 에피소드를 통해 역설한다.

벤자민과 첼시호 선원들은 겨울궁전 이라는 한 호텔에서 머물게 되고 벤자민은 이 곳에서 운명적인 또 다른 여인 엘리자베스를 만난다.

 

벤자민과 엘리자 베스는 처음에는 잠이 오지 않는 야심한 시각에 대화 친구로서 친해지게 되지만 이후 급격하게 뜨거운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들은 매일밤 밀회를 즐기게 되지만 어느날 엘리자베스는 기약도 없이 편지 한통만 남긴채 남편과 함께 사라진다.

이 둘의 밀회는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단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고 싶었던 것이다.

 

보통의 우리 인간들도 이러한 오류를 자주 범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선장이 주장했던 "∞" 무한대 기호같이 서로의 마음이 완벽하게 쌍방향으로 순환할때 가능하고 무한대로 확장이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고 얘기하면서도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스틸이미지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서로가 사랑한다고 얘기하면서도 사랑이 변질되면 분노와 증오로 바뀌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사랑이 썩으면 이렇게 고약한 냄새가 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이 사랑이라고 착각을 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은 벤자민과 데이시의 평생의 러브스토리를 보여 주면서

그들의 모습은 정반대로 늙어가도록 설정함으로써 선장이 말했던 "∞" 의 사랑을 보여준다.

벤자민과 데이시는 완벽하게 대칭된 모습으로 어린시절부터 만나서 사랑을 싹틔우고 생의 마감을 함께 한다.

 

이들의 대칭된 모습과 평생의 사랑은 바로 선장이 얘기한 무한대 기호"∞"와 일치 한다는게 느껴지지 않는가!

이러한 설정에 필자는 감독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름끼친다는 표현은 이럴때 쓰는 것이다.


 


 

벤자민과 데이시는 데이시의 교통사고로 다시 운명적인 만남을 이어가게 된다.

여기서 감독은 데이시의 사고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 영화를 관통하는 또다른 주제인 운명에 대해서 얘길 한다.

물론 감독은 영화곳곳에서 운명을 거부할 순 없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복선을 깐다.

하지만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틀려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것 또한 친절하게 암시해 준다.

 

데이시는 연습을하고 샤워를 한후 친구와 집을 나오는 과정에서 친구는 신발끈을 묶고 있다.

그리고 데이시가 사고 나게 될 택시는 전혀 다른 손님을 태우고 길을가다 행인에 의해서 잠시 멈춰서고 등등의 사고가 일어나기 전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이 중에서 조금만 다른 행동을 했거나 사고를 낸 택시가 조금이라도 다른 행동들을 했다면 사고타이밍의 시간은 어긋났을거라고 아쉬운 가능성을 부여하면서도 때때로 우리는 불가항력 적인 운명의 충돌에 휩싸이게 된다고 역설한다.

 

 

다시말해 감독은 이 장면에서 두가지의 메세지를 던진다.

하나는 모든것이 잘 짜여진 운명이라는 각본대로 움직인다는 것이고

또하나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우리들 모두는 운명이라는 잘 짜여진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벤자민과 데이시는 데이시의 교통사고에 의해 다시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하게 되고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대칭된 생체주기를 가지고 늙어가는 이들의 생체주기가 비슷한 지점에서 만나는 시기이다.

둘은 이제 비슷한 연령대의 모습으로 정열적인 사랑을 한다.

 

 

그 결과 데이시는 임신을 하게 되고 예쁜딸을 출산하게 되지만 벤자민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데이시에게 두명의 아이를 키우게 할 순 없으며 점점 어려져 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 줄 순 없었던 것이다.

 

벤자민은 떠나지만 이 둘의 운명적인 사랑은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늙어버린 데이시와 어린이가 되버린 벤자민은 다시 만나게 되고 이둘은 평생을 함께 한다.

물론 오직 둘만이 아는 비밀로 간직된 채....


 


 

이 영화의 주제는 크게 봤을때 3가지다.

 

첫째는 시간이 거꾸로 갈 순 없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시간은 절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모두는 운명이라는 네트워크에 엮혀 있고 미리 정해진 운명이라는 각본에 의해 살아 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라는 한국판 제목은

사실 벤자민의 생체주기가 거꾸로 가는것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우리모두는 이미 태어나면서 부터 죽음까지 미리 설계 된 운명이라는 각본대로 거꾸로 살아간다는 의미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찰해 보면 우리전부와 벤자민의 시간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무한대 "∞" 의 사랑은 쌍방향이고 서로가 완벽하게 쌍방향으로 순환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나오지만 우리 인간들은 오직 두개의 눈을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보고 기록하게 된다.

따라서 지구상의 그 누구도 완벽하게 똑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존재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인간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우리도 늙어가고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감독이 이 영화속에서도 주장하다시피 오직 자신만의 삶을 기왕에 살아가지만

좀더 열정적으로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과 사랑을 여러분들도 하시길 바란다.

어차피 운명의 선택 또한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벤자민 버튼의 명 대사  [엔딩]
 
누군가는 강가에 앉아 있는 것을 위해 태어난다,
누군가는 번개에 맞고..누군가는 음악의 조예가 깊고..
누군가는 예술가이고..누군가는 수영하고..
누군가는 단추를 잘 알고..누군가는 셰익스피어를 알고..
누군가는 어머니다..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가치있는 것을 하는데 있어서 늦었다는 건 없단다.
근데 내 경우엔, 네가 원하는 누군가가 되기엔.. 내가 너무 어리구나  [딸에게 엽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