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의 꿈

겨울 회화[繪畵]_______[1]

왕언니 2003. 10. 14. 21:37

그 겨울 ,
충분히 거추장스러울 수있는 하루라는 시한[時限]을 ,
나는 눈을 뜨면 창문을 열듯 숙달된 솜씨로 ,
다른 잡념이 끼어들 사이 없이 재빨리 열곤 하였다.

나는 거의 매일 학교에서 석양을 맞았고 ,
집으로 가는 길에 늘어지는 나의 그림자는
간혹 아침에는 없었던 항공 봉투를 들고 있기도 했다.

아직도 열매를 매단 채의 개얌나무가지와
깡마른 체구로 버티고 있는 대추나무 어깻쭉지쯤에 걸려있는 달은,
그때마다 서리가 내려 굳어지기 시작하는 수레바퀴자국을 잔인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어두어져서야 비로소 소리를 내는 동네의 여울을 지나면서,
편지를 저 물에 띄워 보내야 한다고... 매일 생각했다.
그러나 측백울타리 안의 내방에 들어와 보면
땀으로 흠뻑 젖은 봉투는 ,항상 내 손아귀에 그냥 남아 있었다.
나는 너무 뻔한 유희를 가책없이 즐겨왔다는 죄책감에 떨면서
이불깃을 잡아당겼고,소리죽여 울기도 했다.
그때마다 스믈아홉해 동안이나 끌고다닌 나의 모든기관들은
펄럭거리는 촛불주위로 모여들어 제각기 긴한숨을 토해내곤 하였다.

그래도 그순서를 지나고 나서야 나는 거지반 깨어있는 상태로나마 눈을 붙일 수 있었고 ,
또 다른 날을 맞을 수 있었다.
온갖 우연과 기대와 요행을 완강히 도리질 해 버렸을지라도 ,
그 내일은 제시각에 어김없이 열려왔고,
나는 해가 질 때까지 그런대로 용케 견뎌내곤 하였다.

내게 있어서 모든것은 과거완료 시제로 머물러 있었고,
눈[眼]을 떠서 하루를 맞았을 때,
눈[雪]과 우체부가 갖다줄 편지 정도가 의지미래였다.

나는 그 낡은 시골 국민학교의 목조 건물속에 나를 유폐시킬 수 밖에 없는,
참말 너무 쓰린 상채기를 온 몸에 지니고 있었고,
시도[試圖]로 멍들어버린 나이를 유일한 훈장으로 달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 완전한 사랑을시도[ 試圖]하였으나
결국 껍질 째 씹는 풋밤의 떫은 뒷맛만 입안 가득히 베어물어야 했던 것이었다.

아무도 내가 생각하고 있던 아름다운 빛깔의 사랑을 안겨주지 않았고
나는 당황히 나이 먹어 갈 뿐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매달리기로 했고 ,
과거와 미래에 상관없이 머물 수 있는 곳으로 이 마을을 택하였다.

검은 스커트와 검은 블라우스,그리고 발이 편한 굽낮은 검은 구두 한켤레,
그것은 어쩌다보니 나의 외피였고 나를 가두는 보호막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내가 너무 빨리 잃어버려 괴로워야 했던,
제 나이 만큼의 순진[純眞]을 나의 아이들에게 기대했다.

그러나 순진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완벽히 갖추어진 이 마을에도
조숙한 아이들은 끼어 있었고 ,그 아이들은 아주 엉뚱하게,
그 체질과 입김으로 사건을 물고 와 나를 전환시켜가고 있었다.



사족___1960년대의 <맨발의 청춘>의 유치함을 기억하시죠?

그래도 그땐 그게 유치한줄 몰랐답니다. 저의 이글이 바로 유치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쓴 시점이 대학 4학년 ...1967년임을 기억하시고 참아주세요.

 

나의 유치한 시절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위한 팬 써비스입니다. 읽으신분들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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