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23일
지난 토요일,
사돈댁에 函을 보내는 일로 아들의 결혼 준비는 대충 끝이 났다.
이제 결혼 전날 사돈댁에 고기와 과일 곡식등을 몇상자 보내기만 하면
그리고 개천절날 오후 세시, 결혼식만 치루면
내 일생일대의 두가지숙제[딸과 아들 치우기]를 마치는 셈이다.
사람사는 일생이 한줄로 요약되는 일기라면
<태어나서 결혼하고 자식낳아 시집장가보내고 그리고 늙어서 죽었다 >쯤으로 쓸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두 아이를 결혼 시킨 내 일기장은
삼분지 이가 채워졌다고 말 할 수 있으려나...?
6년전 이맘때 開婚이라는 美名하에 딸가진 죄인이 되어 마음 졸이며 치르던 혼사를
이번엔 두번째여서이기도 하고,아들 가진 텃세?인지 한결 느긋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이나라에선 아들엄마가 칼자루를 쥔 입장이라
내가 6년전에 마음졸이며 맹서했던대로, 나는
사돈을 딸가진 죄인이 아니라 그냥 자식을 나눠가진 보통엄마로 대해주리라 다짐했었다.
하긴 그럴 수 밖에 없다.
나는 우리 딸네 시댁처럼 우아하고 지적이며 폼나게 부자이기까지 한것도 아니니
우리가 그댁보다 조금 더 형편이 못한것처럼
우리보다 조금 못한집에서 며느리를 데려 오게 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공평하신가 말이다.
아들의 살림집을 얻는것부터 전적으로 사돈네의 의견을 중시하고
내가 딸을 곁에 두고 싶어했듯이 그쪽도 그러리라싶어 친정가까운 쪽으로 얻어주고보니
사실은 1억 가까운 전세 액수에 비해 집이 너무 낡았고,
22평이라 해도 복도식이라 뒷베란다도 없이 비좁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별로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용인으로 이사도 하기전에 아들 먼저 떼어놓은것은
용인에서 여의도까지의 출퇴근이 어려우리라 걱정되어서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얻어줄 집이니 일찌감치 얻어주면, 두사람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차근차근 신혼살림을 준비할 수 있으려니 해서였다
그러나 내 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는 역시나 바른생활맨들이라
<새술은 새부대에...>를 철저히 지키려고
결혼식이 끝나고 정식으로 둘이서 시작할때 새살림을 쓰겠다는 각오여서
궁한대로 끌고 간 헌장롱이며,탁자며,살림살이들을 좀처럼 개비하지않고 시간을 끌고 있었다.
엊그제 잠깐 들어가본 어느 칼럼에선 무작정 동거를 시작한 커플도 당당하던데
그에 비하면 우리 아들 ,며느리는 ...
집까지 얻어주었겠다,아쉰대로 기본 살림살이도 채워져 있겠다,
결혼 날짜 까지 잡아놓고,야외촬영 앨범까지 나온 사이니 [그야말로 멍석이 깔린 사이니]
은근슬쩍 동거생활을 해도 누가 까놓고 시비걸 사람도 별로 없을법한데
모범생 우리 애들은
밤이되면 칼같이 각자의 잠자리를 지키러 헤어지는듯하다.
이게 내가 우리 아들을 자랑하고 싶은 것 두가지이다.
<상대방이 저를 버렸으면 버렸지 절대로 먼저 상대를 버릴 놈은 아니라는것,
하늘이 두쪽이 나도 크리스찬답게 결혼날까지 제 여자를 고이 지켜줄 놈이라는것....>
그러나 그동안 편하게 편하게 해주려다보니
무엇이건 아들을 통해 저쪽의 의견을 묻고, 저쪽이 좋은쪽으로 결론을 내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아들은 어느새 내 아들이 아니라 <사돈네 사위> 냄새가 진하다.
사사껀껀 저쪽 편이다.
심지어 예단도 많이 요구하지 마라.
예단값은 얼마를 보내올건데 얼마를 보낼거냐?까지 간섭한다.
요즘은 슬그머니 배신감마저 고개를 든다.
6년전 똥누러 갈때 마음은 어디로 가고
똥누고 나온 마음은 <이래서 아들놈은 장가가면 사돈네 자식이라 하는가...?>한다.
이래 저래 , 좀 많이 해주고 받는것은 되도록 생략할것...
이것이 이번 혼사의 <컨셉>이 된셈이다.
우리 딸이 함을 받을때는 함잽이들의 시끌벅적 함파는 소리가 애교스러웠는데
아들은 혼자서 오라는 사돈네의 주문대로
어제, 몇주간에 걸쳐 딸과 내가 꾸린 함가방을 혼자서 들고 갔다.
그속에는 몇번이고 고쳐쓴 혼서지를
손수 만든 한지봉투에 싸고 다시 한번 수놓은 검은 공단 혼서보에 넣었으며
두사람에게 줄 축혼가를 하나 더 써서 사주보 속에 넣었고
패물함한켠에는 내가 31년전에 남편에게 받은 결혼 반지[두돈짜리 금 반지]도 넣어주었으며
미리 주문한 장미와 백합으로 꾸민 꽃바구니를 가져가라 시켰다.
아들이 사돈네로 함을 지고 가는 시각 우리 부부는 가게에서
김밥한줄로 저녁식사를 때우고 있었다.
<엄마 들어가서 큰절해요?>아들의 전화에 쓴웃음이 나온다.
<그럼 큰절해야지,꽃바구니는 샀냐? 리본엔 뭐라구 썼어?>
<감사합니다라고 썼어요.>
감사는 ...난 그냥 축하드립니다 .라고 쓰고 싶었는데....
가슴 한켠에 작은 구멍하나 뚫린기분으로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오니 10시반...
남편은 마루에서 혼자 집들이 선물을 [캔맥주]들이키고
나는 내일 교회끝나고 산소에 가져갈 꽃을 챙기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안사돈이다.
예단값을 너무 많이 보내주신것과,정성껏 써주신 혼서지에 감격해서 눈물이 나왔단다.
서운했던 감정이 조금 풀린다.
얼마나 유치한 인간인가 ,나란 존재는 ....
겉으로야 아닌척 하지만 한겹베일을 들추고 보면
우리들 얄팍한 내심은 모두 거기서 거기다.
<나는 너에게 무엇인가?,과연 너는 내가 너를 생각하는만큼 비중을 두는가?>가 아닐까?
내가 정성을 다했으니 상대방도 좀 알아주기를 바라는 어린애같은 속셈....
조금 있으니 아들도 전화를 한다.
제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더 엄마가 신경을 써준것에 감격한듯하다.
그 쪽 친척들이 모인자리에서 엄마가 써보낸 한글 혼서지가 히트?를 치니
저도 덩달아 흐뭇했던 눈치이다.
아직 한번도 혼사를 치뤄보지 않았을때는 이것 저것 책도 보고
남의 눈에 설지 않게 하려고 ,무식한 엄마티를 안내려고,
뱁새일망정 황새처럼 우아하게 걸으려고 애도 많이 썼는데...
막상 내 아들 결혼이 닥치고보니,그런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졌다.
누울 자리 봐서 발을 뻗는다지 않는가...
법도 법을 아는 사람에게 효험이 있는거지
그런법이 있는줄도 모르는 어린애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것처럼
<고거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한다든지
<그런것 안챙겨도 평생 오순 도순 잘만 살면 장땡 아닌겨?>한다면
무슨 할말이 있을것인가....
암튼 혼자 지고가는 함때문에 ,
함보내는 우리집조차
떡시루 챙기는 번거러움도 없고,
함꾼들 먹여보내는 번잡도 덜어서
어쩌면 김밥한줄로 저녁을 때우는 쓸쓸함도
감지덕지 해야 했던것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