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정현구목사님 목회칼럼

"주 예수를 믿습니다" : (사도신경 6)

왕언니 2024. 3. 4. 13:00

빌립보서 2:6~11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 여호와는 구원하신다 ”인데, 예수님을 통해 창조주 여호와께서 구원하심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직업이 부서진 집을 고치고 세우는 목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서진 세상 이란 하나님의 집을 고치는 거룩한 목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창조하신 여호와가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원주가  되십니까?

 

예수님이 독생자가 됨으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시는, 유일하게 나시고 ,존재하는 독생하는 아들이 되심으로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리고 독생자가 이 세상에서 왕, 제사장, 선지자 란 그리스도의 삼중 직분을 온전히 감당함으로 이 세상에 여호와의 구원을 가져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외아들,독생자 예수,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우리는 또한, 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부를 때 일반적인 존칭의 의미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베드로가 고백했을 때, 그 ‘ 주 ’ 는 당신의 존칭어입 니다. 이때 헬라어는 ‘ 쉬 ’입니다. 그런데 헬라어로 ‘ 퀴리오스 ’ 부르는 경우는, 헬라문화 속에서 왕이나 황제를 칭할 때 사용 된 단어였는데, 이 단어가 구약성경을, 헬라말, (그리스어)로 번역할 때 ‘ 여호와 ’ 란 이름 대신 사용되었습니다. 여호와라고 하지 않고 ' 퀴리오스 '(주) 로 번역했습니다. 주는 ,히브리어는 아도나이 , 라틴어는 도미누스 , 영어는 Lord 입니다. ‘ 퀴리오스 ’ 란 단어를 예수님에게 사용하여 “ 퀴리오스 예수 스 , ” “ 주 예수 ” 이렇게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주님, 이렇게 부르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다른 호칭, 즉 독생자,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드라마

예수님에 대한 세 호칭은 따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이 세 호칭 뒤에 한 편의 구원 드라마가 있습니다.

<독생자> <그리스도>< 주님> 이 세 호칭은 구원 드라마를 통해서 이해하면 비로소 알아집니다.

이 구원 드라마 속에 탄생, 성장, 삶, 만남, 사건들, 사역, 고난, 부활, 승천 등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들을 정리해 보면 세 가지 방향의 운동으로 설명됩니다. <내려감> < 올라감> <다시 내려감>. 

 

그리고 세 호칭은 세 움직임의 드라마와 연결되어 있는데, 독생자, 그리스도, 주님이라고 부를 때 그 호칭과 연결된 구원의 드라마를 알아야, 어떻게 예수님이 여호와의 구원이 되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고난의 종으로 오신 주 예수

 

인자(人子)

먼저 예수님은 아버지의 품 속에 계신 독생자 이신데 , 사람의 아들이 되시어 세상(역사 속, 시공간) 속으로 오 셨습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하나님의 아들에서 사람의 아들로, 의인에서 죄인의 모습을 지니게 되십니다.

 

그리고 땅에서 그리스도란 세 직책,<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을 완전하게 행하십니다.

그래서 영적 무지의 문제, 죄의 문제, 악과 죽음의 문제를 결정적으로 해결하심으로 여호와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리스도란 직분으로 일하시면서,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바로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 너무 일찍 그리스도라고 알리면 아직 때가 되기도 전에 여러 오해와 문제가 생길 것을 아셨기에, 하나님의 때, 십자가를 지는 시점 직전까지, 그리스도이심을 숨깁니다.

 

대신 자신에 대해서 물으면 ‘ 人子 ’라고 칭하셨습니다. 인자의 의미가 ‘ 사람의 아들 ’이다 보니 오해를 사지 않고 자신에 대해서 알리는 호칭이 됩니다.

 

그런데 인자란 호칭을 사용하며 그리스도의 직임을 행하는데, 두 맥락 이 있습니다.

하나는 <고난을 당 하는 종과 같은 사람이라는 맥락>, 그리고 < 종의 모습.>으로 일할 때의 맥락입니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 ‘ 인자가 대제사장들에게 넘겨지매 ’ ‘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 ‘ 인자가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 ‘ 인자의 피 ’ “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 죽임을 당하고 ” (마가 8:30-31)

 

또 그와 반대로 승리하고 이기고 영광을 받는 상황, 그런 때입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을 두고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법을 어긴다고 공격하자 예수님은 “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 눅 6:5)라고 하십니다. 인자는 안식일 법을 제정하시고 의미를 결정하는 분이란 뜻입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 죄 사함을 선언합니다. “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라 ”( 마가복음 2:5) . 서기관들 이 이를 두고 하나님 한 분 만이 죄 사함을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신성모독이다,라고 하자 예수님은 답합니다. “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 마가 2:10 ).

 

재판을 받을 때. 대제사장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합니다. “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 하시니” (마가 14:61-62)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는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온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인자란 호칭을 사용하는데 한편은 종의 모습이고 , 한편은 승리한 주님의 모습이고, 한편은 고난의 모습이고 한편은 승리와 영광의 모습입니다. 두 모습이 함께 있습니다.

 

 

이사야 53 장 과 다니엘 7 장

구약에 그리스도와 메시아에 관한 예언들이 있는데 그 예언들에 메시아에 대한 두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는 고난 받는 종, 또 하나는 승리하는 주의 모습입니다.

 

고난 받는 종의 모습, ( 人子)의 모습이 이사야 53 장 에 있습니다. “ 그 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이사야 53:3-4)

 

또 승리하는 주의 모습, 그런 인자의 모습이 다니엘서 7 장 에 있습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 다니엘서 7:13-14 )

 

‘ 인자 같은 이 ’가 짐승으로 상징되는 적을 이기고 그 승리를 가지고 하늘 구름을 타고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에게서 영원한 권세와 나라를 받습니다.

 

구약의 그리스도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한편 < 이사야 53 장의 고난의 종의 모습>이고 한편 <다니엘 7 장의 승리의 주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두 모습은 서로 모순적입니다.

 

메시아는 한 분이신데 ,어떻게 한 분이 종이면서도 동시에 主인가?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십자가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이 받게 될 십자가에 대해서 미리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바로 죽음)에 대한 이 말씀을 보십시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 요한 3:14)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 을 보이 심이러라 ”( 요한복음 12:31-33)

 

예수님이 십자가에 높이 달리는 죽음을 죽게 될 것을 예언하십니다. 그런데 이 죽음은 이사야 53 장의 고난 을 당하는 종의 모습입니다. 이 죽음은 세상 임금이 예수님을 재판하여 사형언도를 내리고 십자가에 달아 죽인 죽음이요 인자가 종으로 고난을 당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달리 심>을 예수님은 <들리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달리심이 죄인의 모습이 라면, 들리심은 왕의 모습입니다. 왕이 계단을 올라 높은 보좌에 올라가는 모습입니다. 달리심은 세상 임금에 의해 재판을 받아 죽임 당함의 모습이라면, 들리심은 재판 석에 올라가서 세상 임금을 심판하고 그를 쫓아내는 승리하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는 죄인으로 매달린 자리이면서 동시에 主님으로 보좌에 오르는 자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십자가에 달릴 자신을 人子라 고 불렀는데, 그 인자이신 자신은 종의 모습의 메시아와 주인의 모습 의 메시아, 고난의 모습의 인자와 승리의 모습의 인자를 자기 안에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종>과 <영광의 주인>이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인자란 말은 문자적으로는 사람의 아들이지만, 사실은 종이 되신 주님의 의미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영광의 왕이 되신 주 예수

 

부활, 주가 되심

 

자신을 인자라고 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이 지납니다. 그 3일은 안식일 전날 저녁부터 안식일 첫날 새벽까지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던 분이 안식을 빼앗긴 죽음 속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 3일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예수님은 그저 고난을 받은 인자일 뿐 인 것 같습니다. 십자가는 죽임의 자리일 뿐 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안식 후 첫날 새벽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킨 것입니다. 그러면 이 부활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런 의미 가 전부입니까? 물론 부활이란 기적이 있다는 의미도 있지만, 부활은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이 누구 인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부활 후 사도들이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능력)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 사도행전 2:32-36)

 

베드로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리셨는데 , 이를 통해 예수님을 종으로만 알았는데 주님이시고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시편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그 내용은 다윗이 자신의 후손으로 올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하면서 그 메시아에 대해서 이렇게 합니다. “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길 ”.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인간 메시아에게 주께서, 즉 하나님께서 내 주라고 부르며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퀴리오스가 나의 퀴리오스에게 말씀하되, 이렇습니다, 어떻게 퀴리오스 주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온 사람의 아들에게 퀴리오스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것을 몰랐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서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 인자, <고난당하신 종 인자>가 <퀴리오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악과 세상에 의해 재판을 받아, 달리시고 죽으셨던 고난을 당한 종이 시면서, 그 죽음을 통해서 악과 세상을 심판하는 주로서 높이 들리 셨고 보좌에 앉으신 주님 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원래 주님이 아닌데 이제 주님이 된 것이 아닙니다, 원래 죄 사함을 선언할 권위를 가진 주님이요 , 안식일의 주인 이신데 고난의 종으로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신 주님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왕자가 있는데, 가만히 있어도 왕권을 이어받는 왕이 됩니다. 이미 왕입니다. 하지만 적진에 가서 적을 물리치고 승리하여 본국으로 돌아와서, 아버지 왕의 자리를 이어받는 왕이 되는 것은 좀 다릅니다. 전쟁에 나간 적이 없이 그냥 왕위를 계승한 왕과 달리, 전쟁에서 이긴 왕은 영광을 얻은 왕 이 됩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지만 고난을 통해 구원의 승리를 가져 오심으로 영광의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 영광의 면류관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십자가 죽음의 상처입니다. 그래서 < 예수님은 사자 같은 주님> 이신데 , 그 주님의 다른 모습은 < 죽임 당한 어린양>입니다. 예수님은 종으로 낮아지심으로 다시 위대한<영광의> 주님이 되신 분입니다.

 

 

승천, <주로 통치하심>

이렇게 부활을 통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이 ,그저 억울한 한 사람이 아니라 구원의 승리를 가져오신 영광의 주님으로 입증이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다음, 땅의 사역을 마치고 승천하십니다. 하늘에 올라갔다고 할 때 그 하늘은 우주 공간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할 때의 하늘은, < 하나님 아버지의 통치의 자리>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 신 예수님은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 아버지 우편에 앉아계 십니다 ”.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았다는 말은, < 고난의 종이 되 었던 예수님이 이제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아(권능의) 다스리는 주>가 되셨다는 말입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십니까? 이 땅에서 고난의 종으로 이루신 구원의 결정적 승리를 온전하게 완성하기 위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主로서 일하십니다.

 

십자가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구원을 받도록 전파하시는 일을 하시고 , 이미 구원 얻은 이들이 더 성화되도록 하시고, 또 원수를 발등상으로 삼으실 때까지, 원수의 목을 발로 밟듯이 정복할 때까지 예수님은 주로서 하나님 보좌에 앉아서 통치하십니다.

 

‘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사 ’ 주로서 다스리시는데 그 통치행위 중의 중요한 것이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셨고, 지금도 성령을 보내십니다.

 

성령을 보내어 말씀을 깨닫게 하고 은혜를 받게 합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요한복음 16:13)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 십니다. 지금도 성령을 주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십니다.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 로마서 8:34)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적 갑옷을 입은 영적 군사로서 정사와 권세와 악한 영과 싸울 수 있도록 하십니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에베소서 6:10-11)

 

이렇게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성령을 주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시고 계시면서, 그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제자로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마태 28:18-20 ) 그리고 지금도 주로서 일하시며 구원을 완성해 가고 계십니다.

 

 

 

심판자로 오실 주 예수

 

이렇게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주로 통치하시다가 , 마지막 날에 심판주로 오십니다.

 

“ 그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때에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막 13:26)

 

예수님은 처음에는 이 땅에 종으로 오셨다가 마지막에는 이 땅에 주로서 오십니다. 처음에는 심판을 당하는 자로 오셨지만, 마지막에는 심판하는 자로 오십니다. 그리하여 심판과 재림의 주가 되시어 여호와의 구원이 완성되게 하십니다.

 

 

주 예수를 믿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主가 되셨습니다.

구원을 이루신 주, 구원을 이루고 계신 주, 구원을 완성하실 주 가 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을 주(퀴리오스)라고 부르며 예배했습니다. 유일신 신앙 배경의 이들이 예수님을 경배의 대상인 주로 부르며 예배합니다. 예배 시 불렀던 것으로 알려진 찬송가 가사가 빌립보서에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 하나님 아버지께 영 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9-11)

 

초대교회는 주님이란 호칭은 하나님에게만 붙이는 것임을 알았던 철두철미한 유대교 배경이었지만 부활의 주님을 보고 퀴리오스 예수 이렇게 했던 것입니다. 교회를 독일어로 Kirche , 영어로 church라고 합니다. ‘ 퀴리오스 ’ 퀴리오스의 이름을 부르는 집, 주님의 집이란 의미입니다. 고린도 전서에서도 교회를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의 모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독생자예수, 그리스도예수, 주 퀴리오스라고 부릅니다.

세 이름 뒤에 구원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를 때 특히 우리가 세 가지를 기억하게 됩니다.

 

주여, 이렇게 할 때 ,종이 되신 주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고난의 종이 되신 사랑의 주님,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주님을 보는 것입니다 (주예수) 우리는 무서운 주인 앞에 종처럼 가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의 종이 되어 구원을 이루신 사랑의 주님에게 자녀로서 가는 것입니다.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 신 것이 주의 은혜입니다. 어떤 주이십니까? 고난의 종이 되신 주님이십니다. 고난당하신 주님으로 인해 죄인이 구원을 받아 살게 된 것입니다. 주 예수, 십자가의 주 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 여>라고 부를 때, 우리는 하늘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승천하신 주님은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신 구원에 기초하여 하늘 보좌에서 구원을 완성해 가십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성령을 보내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시고, 기도 할 마음을 주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교회 공동체에 속하게 하시고 예배와 찬양과 교제를 통해서 자라게 하십니다. 지금도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그리고 모든 상황 속에서 나를 지켜보십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갈 때 예수님이 그를 만나 십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보좌 옆에 서 계신 것을 봅니다.

지금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서 주로 계시는데, 앉아서 아니 어떤 때는 서서 우리의 다메섹에서 우리를 만나시고, 우리의 어려운 자리에서 서서 우리를 보시고 도우시고 힘을 주십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나의 등 뒤에서 도우시는 주는, 곤할 때 힘이 되시는 주 예수는 ...지금 보좌에 앉으사 나를 살피시는 주 예수입니다. 지금도 나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주, 나에게 성령을 주시고 은혜 주시고 때로 울게 하시는 주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에게 순종할 때 그런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 시는 주, 교회를 그분의 몸으로 삼아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이루어가 시는 주이십니다.

 

주 예수라고 부를 때,

우리는 처음에는 종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이제 주님으로 오실 심판의 주님,

심판받는 모습으로 오셨지만, 심판하실 자로 오실 분을 부르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이 주 예수 앞에 서게 됩니다.

너무 불공평하고 불의 한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또 우리 가 그 주 예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양과 염소를 가르듯,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사랑의 주님이 공의의 주님으로 오십니다.

 

주님, 제가 당신의 심판대 앞에서 흠이 없이 서게 해 주소서. 온전히 구원받게 하소서.

예수님을 부르며 그분께 매일 나 아갑시다,

<독생자 예수>, < 그리스도 예수>,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아갑시다.

예수님은 나에게 구원을 보여주실 겁니다.

때로 회개하고 아버지라고 부르며 울게 하시고 힘을 얻게 하십니다.

 

무조건 언제든지 예수님께 이름을 부르며 가십시오.

여호와의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 이름 안에 있는 구원과 돌보심의 은혜를 받으실 것입니다.

 

 

                              <2024년 2월25일  설교말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