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강남역 지하에 깔린 배수로는 시간당 80~85mm까지 폭우를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배수로의 저류용량이 1.5만t밖에 안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강남 일대 배수관과 연결된 반포천의 수위가 높으면
배수가 원활하지 않은 문제도 생긴다고 한다
발행일 : 2022.08.10 / 종합 A1 면
전문가들은 강남역 침수가 재발하는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우선 강남역 일대는 폭우에 상당히 취약한 지형이라고 했다. 인근에 있는 역삼역과 비교하면 17.8m,
서초역과 비교하면 12.3m가 낮아 빗물이 고일 수밖에 없는 '항아리 지형'이라는 것이다.
저류 용량이 떨어지는 것도 취약점으로 꼽혔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강남역 지하에 깔린 배수로는 시간당 80~85㎜까지 폭우를 처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배수 시설의 저류 용량이 1.5만t밖에 안 된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양천구 배수 시설의 저류 용량 32만t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강남 일대 배수관과 연결된 반포천의 수위가 높으면 배수가 원활하지 않은 문제도 생긴다고 한다.
서울시는 '강남역 대심도 배수 터널'을 포기한 후 지난 10년간 총 3조6792억원을 강남역 일대의 배수 시설 개선에 투입했다. 서울시가 지난 2015년 발표한 1조4000억원짜리 '강남역 일대 및 침수 취약 지역 종합 배수 개선 대책'도 그 중 일부였다.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를 바로잡는 '배수 구역 경계 조정'과, 서울남부터미널 일대 빗물을 반포천 중류로 분산하는 지하 배수시설 '반포천 유역분리터널' 공사 등이 핵심 내용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설을 개선하긴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고 했다. 이 공사는 예산과 설계 문제 등으로 계속 지연됐다.
'반포천 유역분리터널'은 반포천 상류의 하수 처리 용량을 분산하기 위한 터널로, 예술의전당 일대 빗물을 반포천 중류로 향하도록 해 분산하는 역할을 한다. 빗물을 여러 방향으로 분산해 침수 피해를 줄이는 장치다. 그러나 이 터널은 대책 발표 이후 3년이 지난 2018년에야 착공했고 현재 큰 터널만 완공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터널 자체는 완공했으나 주변 하수관이 아직 공사 중이어서 빗물이 빠져나올 길을 다 만들지는 못했다"고 했다. 신월빗물저류배수시설의 빗물터널 지름이 10m인 데 비해, 반포천 유역분리터널은 지름 7.1m 정도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반포천 말고 바로 한강으로 빼거나 송파구의 탄천으로 이어지는 배수로를 만드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에 대비해 시간당 처리 가능한 강수량 목표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시간당 95㎜는 과거 평년 수준을 감안해 설정됐을 것"이라며 "이번처럼 이전의 국지성 호우를 넘어서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면 설계 단계부터 목표를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의 수방·치수 분야 예산은 최근 감소 추세다. 2012년 4317억원에서 2019년 6168억원까지 늘었다가 2020년부터 감소해 올해는 5000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서울시는 "이번 수해에 대해서는 재난관리기금과 예비비 등을 적극 투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수도권 집중폭우로 서울 곳곳 교통대란
지난 8일 중부지방에 집중된 폭우로 9일 서울을 비롯한 도심 곳곳에서 온종일 심각한 교통난이 빚어졌다.
서울의 경우 오전에는 전날 내린 비 피해로 주요 도로가 통제되는 등 '출근 대란'이 빚어졌다.
이날도 비가 종일 내리면서 직장인들의 퇴근길도 험난했다.
전날과 달리 9일에는 서울 북부 쪽에 비가 더 많이 내리면서 오후 7~8시 전후 노원구 상계동과 중계동에 산사태 경보가,
도봉구와 종로구 일대에 산사태 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9일 오전 7시 30분 서울 강남구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앞 서초대로 풍경은
이번 폭우가 심각한 재난이란 걸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전날 밤 폭우로 도로가 침수되자 시민들이 그 자리에 놔두고 간 승용차와 버스, 택시 수십 대가 도로 한복판에 뒤엉켜 있었다. 이 차량들과 출근하는 차가 얽히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강남구에서 서대문구로 출근하는 직장인 박모(38)씨는 "차가 막힐까 봐 오전 6시쯤 나왔는데 곳곳에 버려진 차량이 보여 영화에 나오는 '유령 도시' 같았다"고 했다.
지하철 9호선도 이날 출근 시간 노들역부터 사평역까지 7개 역의 출입구를 막고 운행을 중단하면서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오후 2시에야 전 구간 운행이 재개됐다.
또 침수 피해가 큰 강남구와 관악구를 지나는 시내버스가 우회하면서 이를 미리 알지 못한 시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9일 퇴근 시간엔 시민들이 대중교통으로 몰려 불편이 컸다.
오후 6시 종로구 광화문 인근 동화면세점 앞 버스정류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일산으로 향하는 M7111번 버스의 경우, 오후 7시쯤 기다리는 사람만 60명이 넘었다.
운정 신도시에 거주하는 김일동(78)씨는 "원래 퇴근할 때 지하철을 타는데 어제 지하철이 물에 잠기는 걸 보고 버스를 타러 왔다"고 했다.
8~9일 쏟아지는 비를 보며 출퇴근길 반바지에 슬리퍼를 준비한 직장인도 많이 보였다.
여의도 직장인 김지연(26)씨는 "회사에서 남자 직원들은 반바지를 못 입는데 반바지를 챙겨와서 퇴근길에 입고 가기도 했고 여직원들도 슬리퍼로 갈아 신고 집에 가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도로도 상황이 나빴다. 이날 오전 반포대로 잠수교, 경부고속도로 서초→양재 방향,
올림픽대로 여의 하류~여의 상류 양방향 등이 전면 통제됐다.
오후부터 다시 비가 쏟아지면서 퇴근 시각인 오후 6시 전후 동부간선도로와 내부순환로 등 주요 도로의 일부 구간이 또 통제됐다. 오후 9시 30분쯤 노들로 당산역→여의하류IC 구간도 전면 통제됐다.
그 여파로 서울 안팎에선 온종일 정체가 이어졌다.
서울 사당동과 양재동을 연결하는 서초터널의 경우 평소라면 출근길에 이 터널을 통과하는 데 10~15분이면 되지만,
이날은 최대 3시간 안팎이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 매헌순환도로가 침수돼 이 도로를 전면 통제하면서 차량이 몰린 데다, 터널 안에 연료가 떨어진 차를 놓고 간 운전자가 있었던 탓이다.
오전 8시 이후 한때 차량이 1000대 가까이 들어와 터널 내부가 가득 찼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 침수 등 피해가 잇따르면서 행정안전부는 수도권 소재 행정·공공기관과 산하기관, 단체의 출근 시간을 오전 11시 이후로 늦췄다. 재택근무를 권고하는 민간 기업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공지가 늦게 전달되면서 혼란이 생기기도 했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비상근무를 해야 할 공무원들의 출근 시간을 늦췄다는 비판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