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 녹듯이
한주간의 短想일기 .....[2].
3월9일 화요일.
열두시반에 명퇴자 지점장들과 회식이 있다고 교대해달라는 남편의 부탁대로
오늘은 뉴스도 안보고 내 딴엔 좀 부지런을 떨어
며칠동안 늘어놓고 다닌 집도 대청소를 하고 ,
내일 여전도회의 사회를 맡은지라 흰머리 염색도 좀하고
나가는길에 기름도 채우고 세차도 하려고 8시부터 내내 동동거리다가.
열한시쯤 집을 나서려고 열쇠꾸러미를 찾는데 열쇠가 없다...
문이야 저절로 잠궈지고 열리지만 자동차키가 없으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인데...
진땀을 흘리며 가방과 방방을 돌아다니며 뒤졌지만 아무데도 없다.
혹시 자동차에 놓고 내렸나하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유리창 너머로 차안을 살피지만 역시 없다.
<여보 어떡해,일찍 가려고 했는데 차 열쇠가 없어....>
아침에 나가면서 지겹게 신신당부했는데 이런 말을 하니 열받게도 생겼다.
남편은 예상대로 속사포처럼 독설을 쏘아대다가 ,안됐는지
<다시 잘 찾아보고 정 없으면 다시 전화해,못간다고 할테니까...>하고 선심을 쓴다.
찍소리도 못하고 다시 집으로 올라와서, 추리에 추리를 거듭하고 기억을 더듬으며 집안 곳곳을 뒤지다가
드디어 뒷베란다 김치냉장고 위에 얌전히 올라 앉아있는 열쇠꾸러미를 발견했다.
<어 이게 왜 여기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열쇠가 왜 거기에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찾았어 찾았어 지금 가요.>
<거 봐라 ,내 잘 찾아보랬지...암튼 당신은...>
終章까지 듣다가는 더 늦게 생겨 후다다닥 지하차고로 내려가서 시동를 걸며
머리속으로는 계속 타임머신을 가동해본다.
아아 이게 치매의 시초인가?
이제 나도 머지않아 냉장고에 전화 집어 넣고 ,다리미로 전화받는날이 오려나보다.
애들도 못알아보고 <뉘시요?>하게되면 어쩌지?아이구 슬퍼라.
<좀 늦겠다 했으니 너무서둘지 말고 찬찬히 와>
도중에 걸려온 남편의 선심전화에 한층 마음이 놓여
그 와중에도 기름넣고 세차하고 할짓 다하며 가게로 오니 생각보다 그리 늦지 않았다.
개포동에 들어서며 곧 도착하니 문잠그고 가라고 전화를 했다.
혼자서 세시간동안 남편없는 가게를 지키며 ,내내 왜 열쇠가 그곳에 있었는지를 추리했다.
집에오는 시간에야 추리의 엔드마크가 보였다.
어제아침,다음주일 교회 국에 쓸 들깨가루 통을 같이 넣은것을 깜박하고,
김치냉장고를 <익힘>으로 가동한채 출근했다가, 집에 올때야 그것이 생각나서,들깨가루가 뜨뜻해져 변했을까봐
열쇠를 쥔채로 집에 들어와 김치냉장고로 가서 황급히 통을 꺼냈는데....
그만 열쇠는 그곳에 두고 몸만 거실로 온것이었다. 대장금 보려고...ㅎㅎㅎ
기억이 살아나니 <그럼 그렇지 치매는 아직 아니야>혼자서 위로한다.
3월10일 수요일
그 옛날에는 3월10일이 노동절이었는데...
주환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1982년] 입학식날이 노동절이어서
전무후무하게 아빠랑 주환이의, 동북국민학교 입학식에 갔던 것이 생각난다.
금년들어,몇년동안 사업한답시고, 사양하고 사양했던 3여전도회 회장을 떠맡아서 바빠졌는데
오늘이 3월 전체 여전도회 월례회이고 내가 사회를 봐야한다.
보기보다는 숫기가 없어 대중들 앞에서 잘 나서지 못하는데,
오늘은 별수없이 목사님이 서시는 강단에 올라가 사회를 봐야하는것이다.
새벽부터 일어나,실수안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순서를 타이핑하고 ,시작기도를 메모했다.
남편은 무심하게 아침식사를 했지만 나는 두어숟갈 청국장 식사도 입에 들어오지 않는다.
남편이 설겆이 하는동안,흰블라우스위에 검은정장을 챙겨 입는다.
이젠 정말 좀처럼 하지않는 정장이지만,
강대상까지 올라 가야하니까 이게 제일 단정해보이겠지?
역시 수요일엔 차가 적다.
8시 20분에 집을 나섰는데도 가게들러 교회엘 갔어도10시가 안되었다.
10시30분으로 시간이 늦춰져서인지 교회엔 두어사람밖에 오지 않았다.
본당으로 올라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다스리기위해 구석자리에 앉아 오래 기도했다.
예배가 시작되어 찬송인도하고 개회기도하고 눈을 떴는데도, 교인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휴우..난 어쩌다 한번 하는데도 이런데....
목사님들은 매주마다 어떻게 떨지않고 설교를 하실가?
전체 예배 마치고 각 여전도회별로 모여 회무처리를 하고 식사하고 가게로 돌아오는데
다들 잘했다고 위로를 해주건만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단상에 서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높은자리 차지하려고 애쓰는 정치가들...하여간 간이 크긴 큰것 같다.
강원도 속초에 또 큰 산불이 나서 ,강풍을 타고 온 마을까지 휩쓰는 바람에 이재민이 많이 생겼단다.
작년에는 태풍 루사로 물난리를 겪더니,3월 폭설에,또 대형 산불이라니...
정말 이세상은 하루도 잔잔할날 없는 苦海다.
3월 11일 목요일.
모처럼 집에서 쉬며 칼럼을 쓸까?,산에 갈까? 하는데
라디오에서 황사가 심하니 외출을 삼가하란다.
남편은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 나가면서,내 심중을 눈치 챘는지 산에 가지 말란다.
오랫만에 느긋하게 TV아침 뉴스를 트는데,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결의를 반대하기위해
열린우리당 당원들이 이불을 깔고 국회의장석을 점령?하는 화면이 보인다.
저렇게 밖에 할 수없는가? 몇년이 지나도,얼굴만 바뀐 유치한 몸싸움 그림들이 한심하다.
열시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역시 말잘해서 청문회스타로 뜬 대통령답게 말은 잘하지만
완곡한 표현이나,심사숙고가 부족한듯하다.
나이탓인가? 내생각엔 사석에서건 공석에서건 노대통령이 좀 신중했으면 좋겠다.
성경에서는 ,하늘에게도 땅에게도,아무에게도 함부로 맹서 하지말라했는데 ,
노대통령이 크리스찬이었으면 그명령을 함부로 듣지 않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있다.
똥묻은 개들이 겨묻은 개에게 얼굴 빳빳이 들고 뻔뻔하게 덤비는 세상인데
<십분의 일>이 넘으면 그만두겠다는 맹서는 왜 하누...
또 기자들이 묻는다고 솔직하게 <할 수만 있으면 무어라도 해주고 싶다>라는 말은 왜 하누...
그런 솔직한 얘기는 이불속에서 권양숙여사와 둘이서만 했어야할 말이었다.
아직 입당도 안했고 질문에 답한것이니 선거법 위반은 아니라고 선관위에서도 밝혔다지만
<건드리면 톡하고 터질것만같은>,< 따로 또 같이 나란히 중>인
어제의 오월동주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의원들은
사과를 해라,탄핵하겠다 난리를 치는데....
대통령은 너무 뻣뻣하게 나온다.
누구말대로, 아무리 그래도 이나라에서 나만큼만이라도 깨끗한 대선주자있으면 나와봐라라는 속셈일까?
탄핵안은 잘못된것이다. 총선결과를 보고 태도를 취하겠다.
그리고는 무심하게,노건평씨에게 청탁을 한 대우건설 前사장을 들먹거렸다.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게 했노라고...
그런데 그 회견이 끝나자마자 ,문제의 그 남 사장이 한강에서 투신 자살을 했다는속보가 들어왔다.
또 국회앞에서는 50대 노사모회원이 시너를 온몸에 뿌리고 분신자살을 꾀했다고 한다.
또 무소 자동차를 몰고 국회앞으로 돌진해서 차에 방화를 한사람도 있었단다
아무리...정말 왜들 이러는지, 이렇게도 속전속결이라니....
요즘 우리나라의 하루는 옛날 10년과 같다고 한다.
빨리빨리의 왕국답게 ,I.T산업이 눈부시게 발달하여 ,온갖 디지털 제품들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가격도 저렴해지는것 까지는 좋은데, 사람들까지도 모두들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가 되어 간다고 한다.
급하게 달려들고 빨리 익숙해지는것 까지도 좋은데,시들해지는것도,잊지말아야할 사건들까지도 너무 빨리 잊어버리고...
내가 언제 그랬냐는듯 천연덕스럽게 식어버린 양철지붕에서 午睡에 빠져드는 고양이처럼...
눈과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져
아무리 황사가 온다해도 산에가기로 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스카프로 복면강도처럼 입을 가리고,
그위에 트레이닝점퍼의 후드까지 끌어 올리고...
황사여 올테면 와라 내가 나간다! 하고...집을 나섰다.
오랫만에 산길에 나서니 그동안 으름짱만 놓던 주공아파트가 드디어 땅고르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바싹 산밑까지 트랙터가 진입하여 할퀸 흔적이 있고, 아까시아나무들이 여기저기 잘려져있다.
용인이 살기좋은 시골이라는것도 옛말이 되나보다.
이렇게 아파트들이 무차별로 들어서기 시작하면
이삼년안에 막바로 산으로 오르는 길조차 없어지고
빙글빙글 돌아서야 겨우, 여기저기 토막난 조그만 언덕을 오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 뒤에 오던 사람들이 나를 제치고 뛰어간다.
나는 언제나 처럼, 아주 천천히 걷되 정상까지 쉬지않고 오른후,내려올때도 쉬지않고 내려온다.
아직은 회갈색으로 앙상한 나무가지들 위에도,말라붙은 잔디위에도,
길은 녹아서 질척거리지만 어디에도 남아있는 봄눈이 없었다.
불과 며칠전에 그렇게 퍼부었던 눈인데....봄눈인것이다.
봄눈 녹듯...이란 말이 있다.
응어리진것,분한감정이 스르르 녹는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3월에 온 눈은 아무리 많이 내렸어도 봄눈이다.
봄이 지표 바로 밑에 숨어있는한 ,쌓인 눈이 오래 가지못한다는 말이렸다?
이땅에 서로 적이되어 으르렁거리는 모든 사람들의 응어리가
어서빨리 봄눈이 되어 녹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는
생각의 가닥을 바로 잡고,아닌것은 아니라고,긴것은 기다고 할수있는
잘못을 사죄하고 ,사죄한 자들을 서로 용납하며 감싸주는 상생의 정치인들을 뽑았으면 좋겠다.
비록 시끄럽기는 했어도,이젠 관공서의 뇌물상납도 많이 줄고
보상금탓인지는 몰라도 돈선거가 어렵게 되어가는 눈치이다.
옛날 옛날부터 선거철만 되면 되풀이되던 이야기들...
고무신돌리기,막걸리잔 돌리기,영삼시계,영삼조끼,경로당 온천관광....등등
요즘 선거철인데도 관광업계도 한산하고 음식점단체 예약도 없다니,
머지않아 이땅에도 꽃피는 사월이 오기는 올것인가....?
돌아오는 길에 수퍼에 들려 돗나물한웅큼,부추한다발,콩나물 한근을 샀다.
집에 들어가면 미지근한 물에 오랫동안 반신욕하고
봄나물들 무쳐서
양념장 맛있게 만들어 맛있게도 얌얌 비벼먹을 작정이다..
3월 12일 금요일
아침부터 칼럼을 쓴다고 TV를 꺼놓았더니
칼럼을 다 쓰고 나자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9시 뉴스를 틀고 나서 야
마치 긴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처럼,TV속의 격앙된 사람들을 낯선 얼굴로 바라보았다.
나는 순간 5.16이 나던해 전국을 뒤흔들던 군화발자욱소리,검은 안경쓴 군인들의 벽보가 생각났고
80년 광주항쟁의 한복판에 있던 광주 금남로의 불꽃과
그날밤 내내 광주시내 상공을 떠돌던 헬리콥터 소리, 총소리가 떠 올랐다.
설마 설마가 이제 현실로 나타났다.
전국각지의 시민들은
<두야국회의원들이 당리당략으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국민들을 무시하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임기가 한달도 안남은 국회의원들이
자기들 비윗장 대로 끌어내렸다>고 비난하고 있다.
전국각지에서 탄핵반대,국회해산을 외치는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삭발,혈서쓰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단다.
어쩌면 사태가 엉뚱한 방향으로 발전될지도 모르는 긴박감도 든다.
각국은 여러가지로 불안한 눈이고 ,
미국은 파병에 걱정이 앞서고,
각국에 흩어져있는 교민들과 서민들은 적어도 6개월동안,
정식으로 헌법재판소의 심판 나기까지 벌어질 혼란과 경제적 침체를 두려워하는것 같다.
당분간 고건 총리가 총대를 메고 임시대통령직을 연습?하는동안,
노대통령은 다만 서류에 싸인만 못하고,
청와대에서 여전히 월급 받으면서 ,책이나 읽고, 기도나 하면서 쉬면 된다고 한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
세계사람들이 우리 국회의원들 보고 이렇게 말하지 않을가?
<쟤들 참, 이젠 별짓을 다 하네....?>
나도 나에게 충고합니다.
영화의 끝이 가까워 오면 오줌이 마렵더라도 성급히 일어나지말고 조금 더 참고 앉아서
<끝>자막이 올라올때 까지 기다릴것...
아니 좀더 앉아서 N.G모음까지 보고 일어날것....
***앞엣글 [1]도 같이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