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루 건너 구름에 달 가듯이

우리와 너무 가까이 있는 샹하이 [중국여행 5]

왕언니 2003. 9. 25. 01:07

드디어 열두시가 되어 짐을 부치고 출국창구로 들어가게 되었다.
단체 비자를 받은 사람들은 번호대로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는데 우리는 개인 비자를 받은 덕분에
딴줄에 서서 남보다 먼저 면세구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면세점들은 때마침 세일기간이라,구름처럼 몰려다니는 사람들로 붐벼서
이게 공항인지 시내의 백화점인지 분간이 잘 안갈 지경이다.

호주머니가 가볍기도 하지만, 원래 백화점 세일때도 잘 안가는 체질이라
우리는 단 한가지 목적,<딸이 적어준 화장품 사는일 >만 달성하면 그만이라 생각했는데
<편한 신발사기>가 추가되어 어쩔 수 없이 본의 아니게 면세점 마다 들러보기 시작했다.

딸의 화장품은 다 사니 130불어치나 되었다.
나는 남은 달러가 얼마인지 얼른 계산해보고 아무것도 사지 않으려다,
큰맘먹고 거금72 달러를 주고 벼르고 별렀던 겐죠향수[ 부부세트]를샀다.
남편이 씰데 없이 그런걸 왜 사느냐고 핀잔을 하는걸
傳家의 寶刀 처럼 써먹는 <결혼30주년기념>을 들먹이며 냄새를 맡게하니
<향기는 좋구만 >한다.

그러나 끝내 신발은 없어서 사지 못했고, 대신 나이키에서 좀 두꺼운 양말만 두켤레를 사고
주환이가 꼭 사라던 볶은 고추장 을 한세트[5튜브]샀다.
[이건 정말 요긴하게 잘 써 먹었다]
면세점 마다 꽉꽉 들어찬 사람들이 보따리 보따리 물건들을 사들고 나오는걸 보니
어쩌면 저사람들은 이 면세점에서 외제물건 싸게사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건 아닐까하는
우스꽝스런 생각까지 든다.

단체여행의 어수선함은 보딩패스의 좌석배정부터 시작되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의 표를 한꺼번에 구입하다보니,
여권이 뒤섞였는지 일행끼리도 좌석이 뒤섞여 따로 따로 앉게 되었다.
누군가 우리 가이드가 젤 띨띨하여
수속도 늦고 표도 맨나중에 가져 온데다 뒤죽박죽이라고 불평하였다.

남편은 2인석 창쪽에 앉았고 ,나는 뒷줄 가운데에 앉게 되었다.
그래봐야 한시간 남짓 가면 내릴테니 그냥 가기로 마음먹고 있는데
뒤늦게 들어온 가이드가 교통정리를 했는지 남편이 옆자리로 찾아왔다.

드디어 이륙을 하고,TV 모니터로 보는 비행기는
인천을 떠나 오산을 거쳐 남쪽으로 직진하다 군산을거쳐 제주도 남쪽으로 내려와
우회전하여 황해[저쪽에선 동해라 하였다]를 가로 질러 샹하이로 가고 있었다.

겨우 1시간 남짓 타는 비행기인데 ,점심인지 저녁인지 간식인지
도시락 식판에 기내식이 나온다.
파이한개, 채썬우엉초절임과,야채샐러드,양갱한조각, 분홍메론 세조각, 피너츠,샤브레,그리고 생수한컵,
나는 배가 고파 파이만 남기고 다른것은 알뜰히 비웠다.
나중에 보니 다른 사람들은 캔맥주도 먹었는데
우리 남편은 촌스럽게 커피만 먹었다고 애석해 했다.


비행기는 3시쯤 上海 浦東 國際空巷 에 도착했다.
중국은 우리보다 한시간 늦어서 ,우리시계는 세시인데 현지시각은 두시였다.
[처음 스케쥴페이퍼에 11시반 출발에 12시 도착이라 써있어서
순 촌년인 나는 30분 밖에 안걸리는줄 알았더니 현지시각으로 써있어서 그런거였다.]

인천 공항만큼은 못해도 푸동[浦東]공항도 어마어마하게 컸다.
나중에 가이드의 말을 들으니 지금 계속 공사중인데 5년 뒤에는 인천공항보다 더큰,
아시아에서 제일큰 공항이 될거라 한다.

쏼라거리는 중국말이 여기저기서 들리는걸로 보아 우리가 서있는 땅이 중국이 분명하다.
세상 참 좋아졌다.
그렇게 오랜동안 발디딜 수 없을 敵性國家로 치부하며 살아온 베일에 쌓였던 땅을
竹의帳幕이니 뭐니 하면서 잔뜩 긴장하며 웅크리고 바라보던 이 광대한 땅을
우린 이제 돈만 있으면, 아무 거리낌없이 구경 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약간의 우월감을 가지고 은근히 뻐기면서...

입국심사역시 개인비자를 가진 덕분에 우리는 제일먼저 창구를 빠져나와
짐찾는곳에서 한없이 일행을 기다려야 했다.

알고보니 우리가이드가 아직 경험이 적은 신출내기여서 열개정도의 팀중에서도
항상 뒤로 밀려 맨 꼴지로 수속을 마치는듯 했다.
어디가나 줄을 잘서야 하는데....

공항 밖으로 나오니 시끌벅적한 우리나라 어느 항구의터미널 같은 느낌이 든다.
錦江汽車服務有限公社라고 쓰인 대형 버스들이 우리 비행기에서 내린 관광객을 태우기 위해
복잡한 주차장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닌다.
[중국에서는 버스는 汽車이고 ,우리가 말하는 汽車는 火車라 했다]

오는대로 줄줄이 태우면 좀 쉬울것 같은데,이미 가이드별로 팀이 짜져있고
또 한국가이드는 자기와 연결된 현지 가이드를 만나야 하고
그 현지가이드는 또 자기와 약속된 버스기사와 만나야 하는 복잡함때문에
하나투어의마크에 또다른 표식으로 별 스티커를 촘촘히 붙인 깃발을 따라
우리 일행 26명은 이리갔다 저리 갔다 한참을 헤매야 했다.

드디어 이미향이라는 눈이 예쁘고 볼살이 통통한 스물대여섯정도로 보이는 조선족 현지 가이드를 따라
우리의 중국여행이 시작되었다.

연변에서 자란 가이드 미쓰리는 황해도 곡산이 고향인 부모 탓으로 약간 북한냄새가 나기는 해도
비교적 유창한 한국말을 하고 있었고,중국어는 물론이고,일본어와 영어까지도 웬만큼 한다했다.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94%이상이 漢族이고 ,장족,회족,묘족,만주족등
55개의 소수민족 중에 우리 조선족도 끼어있다

약 200만명정도 되는 조선족은
공식적으로 12억[호적에 올라있지 않은 헤이하이즈[黑孩子]까지 합치면 13억이 될지도 모른단다]인구의
1%도 안되는 소수이지만 문맹이 많은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학력수준도 높고
연변에 우수한 대학도 둘이나 있어 본인이 열심히만하면 돈도 벌고 인정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달러를 벌어들이는 업체는 모두 국영기업이고 그곳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공무원인셈인데
가이드는 월급은 없고,관광객들이 주는 가이드팁과,관광도중 물건을 많이 팔게 해주면
연말에 성과급 보너스가 주어지고 상도 받는다고 아주 솔직히 털어놓는다.

우리의 애초 일정은
상해임시정부청사와,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이기도 한 魯迅공원 관람이 먼저이고
예원관광과 유람선으로 黃浦江관람을 나중에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비행기가 두시간이나 연발하는 바람에 유람선 예약시간을 어길 수 없어
제일 먼저 유람선을 타기로 하고 우리 버스는 상해시내를 가로 질러 浦東港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