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정현구목사님 목회칼럼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왕언니 2021. 9. 4. 20:24

마태복음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무엇을 구하는가?

 

 

 

 

기도에서 중요한 첫째는 누구에게 기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시다는 말은 땅에도 계시다는 뜻입니다.

아버지란 자녀를 잘 아시고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또 아버지란 자녀에게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는 특권과 사명을 주시는 분이란 뜻입니다.

기도할 때 먼저 기도를 받는 분이 누구인지,

나는 자금 누구에게 기도하는 지를 잠잠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기도에서 중요한 둘째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로 무엇을 기도하고 무엇을 먼저 기도합니까?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는 어떤 것을 먼저 구하고 어떤 것을 뒤에 구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도 포함합니다.

 

 

 

 

주기도문은 세 가지를 먼저 구하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정말 많고, 급히 구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먼저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먼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하십니다.

왜 우리의 필요와 별 관계도 없어 보이는 그 제목을 먼저 구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에 관한 것을 먼저 구하면 원하는 것이 잘 응답되는 일종의 비법이기 때문일까요?

사실 이것이 주기도문에 대해 드는 첫째 질문입니다.

이어 드는 질문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

그리고 셋째는 아버지의 이름이 어떻게 거룩히 여김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질문을 통해서 이 기도문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름을 먼저 구해야 하는가

 

첫째 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기도를 먼저 하게 하신 것일까요?

 

우리가 해야 할 일들 중에는 급한 일이 있고 중요한 일이 있는데

어떤 것은 아주 급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고, 어떤 것은 급하지 않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가 놀다가 칼에 손이 베었다면 이는 아주 급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어떠한 비전을 가지고 자라느냐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급한 일은 급히 기도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에 두고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구하는 제목은

급한 기도이기보다 매우 중요한 기도제목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는 것입니다.

또 이 제목은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의 뿌리에 대한 기도,

즉 세상의 문제를 만드는 수많은 원인들 중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다루는 기도이기에 먼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내용이 왜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인지를 알려면

모든 것의 시작을 알리는 창세기의 타락 사건을 봐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행했던 죄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피조물인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려고 한 것,

즉 피조물이 하나님이란 이름표를 달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삶의 원 질서가 뒤틀리게 된 것입니다.

기계의 부품이 있어야 할 제자리 있지 않으면 계속 오작동과 문제를 일으키듯,

수많은 문제가 생겨난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문제의 뿌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라고 말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지 않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본입니다.

 

이것이 뿌리의 문제라면 이것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문제의 진정한 답은 없습니다.

미얀마 사태에서처럼 군인은 군인의 본래 자리를 벗어나

정치가와 재판관의 자리에 계속 앉아 있으면 나라가 혼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피조물이 신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 행세를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면

일시적 문제 해결은 있을지 몰라도 문제는 다른 형태로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땅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구하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기도를 먼저 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존재의 원질서가 회복되지 않으면

참된 응답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의미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 의미를 알려면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나옵니까? 여호와, 혹은 야훼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매우 특별한 의미에서 이름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 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존재의 근원이란 의미도 되지만,

사실 피조물에게 하듯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존재란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보통명사인데, 그 하나님에게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마치 꽃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꽃은 우리에게 어둠이라는 김춘수의 시의 내용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분이지만,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아버지로 자신을 부르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 이름을 거룩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은 이름만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불리는 하나님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거룩한 분이신데, 그렇게 여김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본 것처럼 아담의 범죄 이래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을 대접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거룩한 분으로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여김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룩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먼저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에 존재에 있어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고

어떤 피조물과 비교할 수 없는 구별된 존재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죄와 구별된 분이시기에 어떤 죄나 불의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십계명 첫째 계명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있게 말지니라”입니다.

어떤 피조물에게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계명이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욕망을 따라 하나님을 상상하거나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셋째 계명이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지 말라’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의하게 사용하거나 불의와 연결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피조물을 신의 이름으로 숭배한다거나,

로마 황제를 신의 자리로 올리고, 어떤 이념을 절대적 진리라고 칭하고,

한 집단이나 정당을 비판이 필요 없는 권위에 올라선다면,

이는 상대적 존재를 절대적 하나님의 자리로 격상시키는 것이며,

존재론적 구별을 범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이익과 명분을 위해서 싸우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전쟁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자기 욕망을 따라 투사하고 조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피조물의 자리로 격하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도덕론적 구별을 범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존재에서나 도덕에서나 구별되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거룩히 여긴다는 것은

어떤 피조물이나 상대적인 것을 하나님의 자리로 올려 놓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님을 어떤 불의와 연결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

 

둘째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의미는 거룩하게 만드시는 분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존재와 도덕에서 구별되시는 거룩한 분이시기에

어떤 피조물도 그에게 가까이 갈 수 없고 어떤 불의도 그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죄 사이에는 절대적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은 피조물과 거리만 두시고,

불의와 거리를 두시기만 하지 않으십니다.

세상과 인간을 거룩하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구원을 위해서 존재적 경계를 넘는 성육신을 통해 인간이 되심으로

피조물인 인간을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구원을 위해 도덕론적 경계를 넘는 십자가 지심을

자신이 친히 죄를 지심으로 죄인을 거룩하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하실 뿐 아니라,

세상과 인간을 거룩하게 만드는 분이십니다.

 

바리새인은 자기들만 거룩하기 위해서

당시 불결하다고 여겨졌던 환자들, 이방인들과 늘 경계선을 긋고 그들과 거리를 두며 살았고,

그들이 그은 경계선 밖의 사람들을 배제하고 자신들만 의롭다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리새인의 거룩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만 거룩하게 계시지 않으시고,

당시 불결하다고 여겨졌던 한센병, 혈루병 환자들을 친히 안수하시고,

당시 거리를 둬야 한다고 여겨졌던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도 하시면서,

인간이 만든 그릇된 경계를 허무시고 그들을 품고 치유하시고 변화시킴으로

거룩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참 거룩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하실 뿐 아니라,

인간과 세상을 거룩하게 만드신다는 점에서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3인칭 수동태로 기도하게 합니다. 

Hallowed be Your name. May your name be kept holy.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만드시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부름으로 이름이 거룩히 여기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거룩히 여길 수 있는가?

 

 

 

예배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먼저 우리들에 의해서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그분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가장 중요한 길은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란 Worship,

즉 하나님에 합당한 가치를 인정하며 그분에게 합당한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존재적으로 피조물과 구별된 창조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도덕적으로 불의와 구별된 의로운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면 예배란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아

스스로 하나님의 이름을 달고 있는 모든 우상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애급 사람들이 태양과 나일강과 여러 동물들을 신으로 숭배했고,

파라오를 신으로 숭배했는데, 그런 애굽의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는 자신을 신의 자리에 앉히고 숭배를 강요했는데,

그런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돈과 권력과 성이 자기를 신의 자리에 앉히고 사람들에게 숭배를 요구하고,

이념이나 정당이나 개인이 그런 하나님의 이름표를 달고 행세할 때,

그런 것들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에게서 유사 하나님의 이름표를 떼내고 그것들을 비 신성화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주 예배를 드리는 것은

반복되는 예전이고 찬송과 설교도 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예배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세상 속에서,

은밀하게 하나님 자리에 올라온 모든 것을 끌어내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심을 매주 선포하고,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고백하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예배가

가정과 일터와 이 땅의 곳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는 참된 답입니다.

 

 

 

 

 

 

 

 

 

 

삶의 목적

 

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삶의 목적으로 두며 사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문의 내용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웨스터민스터 교리문답 1문)입니다.

 

사람의 목적이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보다 못한 것을 궁극적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고 만족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을 최고의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는

이미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허접한 짝퉁이 최고의 진품에 대한 모욕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최고의 가치이신  그분을 그렇게 여기는 것,

하나님을 궁극적 사랑과 최고의 목적으로 여기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최고의 사랑이며 최고의 가치이기에

정말 제대로 안다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우리는 하나님 자신을 누리가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 어거스틴이

“당신이 당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으니,

우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쉼을 얻기 전까지는 평화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 내용입니다.

 

 

기도와 감사

 

또 그분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사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기도하며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에게 의존되어 삽니다.

하나님이 주신 공기를 몇 분만이라도 의지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살는 것처럼 여긴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것이 죄라고 말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살아야 한다는 피조물의 당연한 고백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로 삽니다.

정말 고마운 은혜를 베푼 분이 있을 때

그분에게 감사하는 것이 그분의 이름을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을 만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아서 삽니다.

그 은혜에 늘 감사하며 사는 것이 그분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것입니다.

 

또 염려하지 않고 맡기면서 사는 것도 그분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거실에 계신데, 어린 자녀들이 한숨을 푹푹 쉬고 염려한다면,

옆에 있는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또 필요한 것이 있는데 아버지에게 가서 말하지 않고

옆 집 아저씨에게 도와달라고 말한다면 이 역시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염려가 생깁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를 잘 아시는 아버지이심을 믿고 맡긴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기는 것이고 그분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이 역사를

창조와 재창조의 거대한 하나님의 드라마가 쓰이는 무대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 드라마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맡은 배역이 있는데,

그것을 잘 감당한다면, 연출자와 작가의 이름이 높아집니다.

그러므로 내가 맡은 직책과 은사를 잘 감당하며 사는 것이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삶의 바른 목적을 통해서 기도와 감사와 신뢰를 통해서

내 삶의 성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길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바로 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만들라.

 

착한 행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에 의해서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이름을 모르는 그들에 의해서도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께 경배하고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시편 86:9).

이 말씀처럼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불러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들을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겨야 합니다.

달이 해를 반사함으로 해를 드러내는 것처럼,

회사의 좋은 제품들과 친절하고 유능한 직원들이 회사의 이름을 높이는 것처럼

아버지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이들이 하나님을 잘 반영해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존재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리하여 세상을 잘 다스린다면,

온 만물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 찬양하게 될 것이지만,

인간이 반대로 행함으로 만물이 신음소리를 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백성입니다.

하나님을 잘 반영함으로 열방의 빛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불량 제품이 회사 브랜드의 가치를 깎아 먹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에 의해서 멸시를 받게 되었다고 에스겔 선지자가 말했습니다.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이스라엘 백성)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에스겔 36:20)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을 갖고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빛을 잘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 5:16).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이들이 하나님을 잘 반영할 때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됨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잘 반영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선교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부르는 길은 우리의 착한 행실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가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선교가 필요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때 천사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이란 말을 세 번이나 사용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이사야 6:3)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이사야 6:5)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거룩하게 자로 바뀝니다.

 

그다음에 주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이사야 6:8).

하나님은 이사야가 자신이 거룩하게 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온 세상을 거룩하게 회복하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도록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에 이사야가 대답합니다.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이사야 6:8)

그래서 이사야는 자기 혼자 거룩하게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거룩하게 만드는 하나님에 참여하기로 결단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해 달라는 기도는

내가 그렇게 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이기도 하지만,

그들도 그렇게 되도록 내가 보냄을 받게 해달라는 다짐과 헌신이기도 합니다.

이 기도는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착하고 선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을 잘 반영함으로,

나아가 세상 속으로 내가 사는 일터로 보냄을 받은 선교사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에 의해서도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온 땅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됩니다.

이럴 때 모든 문제에 대한 진정한 응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기도합니다. 그 아버지에게 무엇을 기도해야 합니까?

 

급한 것, 개인적인 것들을 두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는 아버지이시고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는 아버지이시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또한 자녀 된 우리에게 아들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일, 세상을 거룩하게 회복하는 일을 함께 할

자녀의 사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려야 하는 중요한 기도제목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내가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매일 드리는 기도와 감사를 통해서

일상의 신뢰와 맡김을 통해서 성실히 행하는 내 일을 통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우리를 통해서, 달이 해를 반영하듯,

호수가 하늘을 반영하듯, 말과 행동과 삶이 그리스도를 잘 반영하도록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아버지가 나를 세상에 보낸 것처럼

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시며 우리를 세상 속으로 보내실 때,

제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렇게 나아가는 선교적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분의 이름이 우리 안에서 그들 안에서 세상 안에서 높임을 받으면 달라집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높이면 회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제목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고

기도제목에 넣고 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통하여 그들도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온 세상 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임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통한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21년 8월 29일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