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9).......베데스타,통곡의 벽,비아돌로로사
베데스타연못
‘자비의 집’(House of Mercy)이라는 뜻을 가진 베데스타 연못은
제2성전의 북동쪽 밖 가까운 곳인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양문(Sheep Gate, 느헤 3,1; 요한 5,2) 곁
기드론 계곡의 상류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는 사자성문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스테반 성문 근처에 있는 성 안나 성당 경내에 그 흔적들을 볼 수 있다.
베데스타 연못은 기드론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모아 성전에 물을 공급하였고, 종교적이고 의학적인 치료를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특별히 연못의 동쪽은 기원전 150년에서 기원 후 70년 사이에
치유와 종교적인 목적으로 욕실과 동굴들이 만들어져 대중적인 치료센터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요한복음 사가에 의하면 다섯 개의 회랑이 있었으며,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38년 된 중풍병자를 안식일에 치유하셨다.
연못은 직사각형의 형태로 깊이가 20m 정도 되었고, 120 x 60m의 크기였다.
십자군은 요한복음의 치유의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 비잔틴 성전의 폐허 위에 작은 기념 성전을 지었다.
이 기념 성전은 비잔틴 성전의 유적들 위에 그 골격이 남아 있다.
고고학 발굴 작업은 1871년에 실시되었고, 두드러진 발굴 작업은 마리아 성년인 1954년과 1957년에 이루어졌다.
발굴 작업을 통해서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성전의 골격을 볼 수 있는데
깊은 연못 위에 건물을 지탱하기 위한 웅장한 버팀목 돌기둥들이 순례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기념성전 끝에는 베데스타 연못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
계단을 내려가면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물 저장소가 나온다.
벽에 회칠을 하여 물이 새어나가지 않게 한 후 물을 저장했던 곳이다.
성 안나 성당과 벳자타 연못은 크림 전쟁 후 1856년부터 프랑스 정부의 소유로 비안키 수도회에 위탁 관리되고 있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 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타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다리저는 사람,혈기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금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들어가는 자는 어떤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서른 여덟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것을 보시고 병이 벌서 오래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때에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 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날은 안식일이니... (요 5,1-9)
성안나교회와 베데스타연못을 구경한 후 통곡의 벽으로 갔다.
사실은 어젯밤에 들렸었으나 너무 늦은 시간이라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내 카메라는 건전지가 다 돼어 사진도 찍지 못했다.
온달의 스마트폰으로 찍기는 했지만 그또한 화질이 좋지 않아
통곡의 벽은 다른블로그에서 빌려온것으로 대치합니다.
서쪽 벽(통곡의 벽)은
서기 70년 로마인들에게 파괴된 예루살렘 제2성전 가운데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유적지이고 마지막 유적지이기 때문에 비잔틴 시대부터
지금까지 유대인들의 희망과 순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민족의 단결 및 구원의 상징으로 비추어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오스만 터키 시대부터 이스라엘은 물론
전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곳에 순례차 와서 소원이 적힌 쪽지를 벽의 돌 틈새에 끼워 가며 기도를 하였다.
▲ 오늘날 이 벽은
691년 이슬람교도들이 세운 ‘바위 돔 사원’(Dome of the Rock)과 '알 아크사 모스크'(al-Aq Mosque)를 둘러싼 담벽과 마주하는 일부로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시에는 요르단의 관할이었다가
1967년 6월전쟁 때 옛 예루살렘 시(市)를 점령함으로써 1800년 만에 처음으로 예루살렘 전체를 유대인들이 관할하게 되었다.
통곡의 벽을 나와
십자가의 길 (슬픔의 길,비아 돌로로사) , 체포에서 장사까지의 길...로 갔다.
예수가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다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갈보리)까지 걸어간 약800m의 길과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처형에 이르기까지의 전과정을 의미한다.
이 길은 복음서에 근거한 역사적인 길이라기보다는 순례자들의 신앙적인 길로서
14세기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에 의해 확정된 길이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걷는 이길에는 각각의 의미를 지닌 14개의 지점이 있으며 이는 18세기에 확정된것이다.
이중 일부는 19세기 이후 고고학 발굴을 통해 확인되었다.
현재 매주 금요일 순례자들은 십자가 수난을 기리는 의식을 거행한다.
(우리는 주일이었지만 남자들이 교대로 십자가를 지는 체험을 했다.)
(온달도 아픈 몸으로 십자가를 졌다. 어느구간인지는 모르지만)
사자문을 들어서면 성안나 교회가 있고, 바로 앞에 비아 돌로로사의 출발점인 '채찍질의 교회'가 있다.
매를 맞으며 걸어가던 예수가 수난을 당한 곳에는 모두 14곳에, 십자가의 길이라는 예배소가 설치되어 있고,
그 중 10~14번째는 성분묘 교회(예수님 무덤성당) 안에 있다.
제1지점 :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가 재판을 받은 곳.
제2지점 :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입고 희롱당한 곳.
제3지점 :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
제4지점 : 예수가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
제5지점 : 시몬이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곳.
제6지점 : 성 베로니카 여인이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곳.
제7지점 : 예수가 두번째로 쓰러진 곳.
제8지점 : 예수가 여인들을 위로한 곳.
제9지점 : 예수가 세번째로 쓰러진 곳.
제10지점 : 예수가 옷 벗김을 당한 곳
제11지점 :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곳.
제12지점 :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운명한 곳.
제13지점 : 예수의 시신을 놓았던 곳.
제14지점 : 예수가 묻힌 곳
1. 십자가의 길 제1처소-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가 재판을 받은 곳
안토니아 요새(빌라도법정, 안토니아 성)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위 사진은 현재 이스라엘 박물관으로 옮겨 놓은 제2성전시대 예루살렘 대성전 모형이다. 사각형 건물이 대성전이며
오른쪽 뒤쪽에 4개의 탑이 있는곳이 안토니아 요새이다 헤로데(기원전 37-4년 재위)는
기원전 37년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한때 하스몬가의 요새가 있던 ‘바리스(성)’ 자리에
후원자 마르코스 안토니우스에게 경의를 표하여 기원전 31년에 가장 전략적인 자리인 예루살렘 대성전(현 회교 대사원) 북서쪽
즉 성전 벽의 모퉁이에 요새를 세우고 ‘안토니우스’에게 헌정하였기 때문에 ‘안토니아 요새’라고 부른다.
안토니아 요새(빌라도법정, 안토니아 성)
빌라도의 법정이 어느 곳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상반된 주장들이 있다.
그 중 당시 헤롯의 궁에 빌라도가 머물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여 법정도 그 안에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과
당시 총독관저로 사용하던 하스모니아 궁전에 법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학자들에겐 더 많은 지지를 받지l만,
의외로 공식적인 순례지로 정해진 곳은 예루살렘 성전 북서쪽 모퉁이 외곽에 위치해 있던 로마군 주둔지인 안토니오 요새이다.
.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마27:27~31)
엘 오마리에 아랍 초등학교 (빌라도법정),
철책문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이 공식적인 십자가의 길을 할때 1처소가 시작되는 곳이다.
2. 십자가의 길 제2처소(선고교회) -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가시관을 쓰고, 채찍에 받으시며 홍포를 입고 희롱당한 곳
엑체호모(에케호모) 아치, “자, 이 사람이오”(라틴어로 Ecce Homo) "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사람이로다 하매”(라틴어로 Ecce Homo)
시온 수도회에서는 1931-33년과 1934-37년 두 차례에 걸쳐 고고학 발굴을 하였는데
, ‘아치’(요 19,5)와 석판으로 깔린 포장도로인 ‘리토스트로토스’(요 19,13)를 발굴 하였고,
이곳이 바로 안토니아 요새가 있었던 빌라도 총독의 법정자리(마태 27,2)라고 확신 하였다.
에케호모수도원 지하실 입구 '리토스트로토스' 안내판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고 아무런 죄목을 찾지 못하였지만 성난 군중들의 성화에 못 이기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리토스트로토스’라고 하는 재판석에서 예수님을 넘겨 주었다.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리토스트로토스라고 하는 곳에 있는 재판석에 앉았다.
리토스트로토스는 히브리 말로 가바다라고 한다.(요19:13)”
'리토스 트로토스'(Lithos Trotos)
'리토스 트로토스'(Lithos Trotos) 란 '돌 판'(가바다)이란 뜻으로 로마시대에 도로나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바닥에 깔았던 큰 돌 판을 말한다.
요한복음 19장 13절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할 때 박석(히브리 말로 '가바다')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다고 했는데
이 박석이 곧 리토스 트로토스이다. 오늘날 빌라도 법정 자리에 위치해 있는 시온 수녀원 지하에는 발굴된 돌판 바닥의 일부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사람이나 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홈을 파놓은 것과 로마군인들이 장난으로 새겨놓은 장기판 등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리토스 트로토스'(Lithos Trotos)
'리토스 트로토스'(Lithos Trotos) , 예수님 십자가 성화
채찍교회
작은형제회 수도원을 들어가서 오른쪽 작은 건물이 '채찍성당' 이다.‘채찍 교회는 예수님께서 채찍을 맞으셨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곳 위에 지어졌다.
채찍 성당에서 두드러진 것은 제대를 중심으로 3개의 창문이 있는데 ‘채찍질을 당하는 예수님’(마태 27,26),
‘손을 씻는 빌라도’(마태 27,24) 그리고 바라바의 승리’(마 27:21)가 색유리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바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마 27:26)”
채찍성당 출입문, 채찍
채찍 성당내부
채찍 성당내부 제대 위 중앙 쿠뽈라
채찍 성당내부 감실,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채찍성당 제단 중앙의 유리화
돌기둥에 묶여 채찍질을 당하는 예수님’(마태 27,26), 이 돌기둥의 일부는 현재 무덤성당 발현경당 오른쪽에 모셔져 있다
사형선고 성당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채찍 성당’을 나와 회랑을 조금 걷다보면 왼쪽에 있는 것이 ‘사형선고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리토스트로토스’가 시작되는 곳으로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곳이다.
사형선고 성당 중앙제대
제대 중앙에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어주며 손을 씻는 장면이고,
제대 왼쪽은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결박당한 채 끌려가는 모습이며, 제대 오른쪽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예수님이시다.
성당 입구에서 바라보이는 정면은 십자가의 길 4처에서 성모님과 예수님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다.
제대 중앙에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어주며 손을 씻는 장면
예수님께서 걸어 내려오고 있는 계단은 '거룩한 계단'(Santa Scala)라고 합니다.
이 계단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녀에 의해서 로마로 옮겨갔고,
현재는 라떼라노 대성전 옆에 위치한 '싼타 스칼라'(Santa Scala) 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싼타 스칼라 성당을 순례할땐 아래 계단부터 28개가 되는 계단을 무릎을 꿇고 올라가는것이 순례 전통입니다.
“빌라도는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동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받아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하였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마27:24).
제대 왼쪽,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결박당한 채 끌려가는 모습
제대 오른쪽, 십자가를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예수님
3. 십자가의 길 제3처소-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
3처, 예수께서 첫번째로 쓰러지신곳
제 3처소 기념 교회의 내부
밤새 심문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시고 쓰러지실 때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천사들의 모습의 성화가 교회 정면에 그려져 있다.
십자가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은 우리들의 죄로 인한 무게였으리라
4. 십자가의 길 제4처소 - 예수가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
4처
이 곳은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81년에 교회를 만들었고 입구에 예수님과 마리아의 만남을 조각해 놓았다.
5. 십자가의 길 제5처 - 시몬이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곳
이 곳은 골고다를 향해 올라가는 시작지점이다. 이 지점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다(마 27:32, 눅 23:26).
이 교회는 1895년 카톨릭에 의해 지어졌다
교회내부에는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6. 십자가의 길 제6처 - 성 베로니카 여인이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곳
제 6처 (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이 곳은 예수님께서 피와 땀을 흘리며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실 때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얼굴의 피와 땀을 닦아 준 것을 기념하는 자리에 1895년 비잔틴 시대의 수녀원이 세워졌다
수녀원 안에 모습이다.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이 여인에 대해서는 그 이름이 밝혀지지 않지만
열두 해 혈루증을 앓다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나음을 입은 여인(막5:25-34)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7. 십자가의 길 제 7처소- 예수가 두번째로 쓰러진 곳
예수님은 이곳에서 두번때 쓰러지신다.
지금 있는 건물은 1875년에 카톨릭에서 구입하여 Schoolof the Arts and Crafts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가 예수님시대에 예루살렘성의 서쪽 문이 있는 곳이다.
이곳을 나가면 서쪽 영문밖이 된다. 그 곳에 골고다 언덕이 있었다
7처소 교회안의 모습
이제 성밖으로 나가게 된다. 여기서 다시 쓰러지심은 예수님을 성밖으로 내치는 상황이었을까? 쓰러지신 예수님이 조각되어 있다.
8. 십자가의 길 제8처소- 예수가 얘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한 곳
이 지점은 돌벽에 라틴 십자가와 희랍어로 "NIKA = 예수님은 승리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슬피울며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신 곳을 기념하는 곳이다.
지금은 희랍 정교회 벽으로 되어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31)
8처, 예수님의 손 바닥 자국 (출처- http://blog.paran.com/)
9. 십자가의 길 제9처소- 예수가 세번째로 쓰러진 곳 (기독교구역)
골고다 언덕의 정상을 바라보는 곳에서 다시 3번째로 쓰러지신다. 지금은 애굽의 콥틱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10. 십자가의 길 제10- 11처소, 성묘교회 내부>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주니라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게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이라하는곳에 나가시니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을쌔 다른 두사람도 그와 함께 못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요 19:16-18 )
무덤 교회 정문과 광장
오늘날 순례자들은 무덤성당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지만, 이슬람이 통치하던 1187-1832년에는 항상 닫혀 있었다.
현재 광장에서 볼 때 오른쪽에 있는 문은 아예 봉해져 있는데 1187년 예루살렘을 접수한 살라딘은 성당에 들어가는
그리스도 신자들의 수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모든 문들을 폐쇄하고 하나의 문만을 남겨 놓고 순례자들로부터 성지
순례 세금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246년부터는 두 이슬람 가정에 무덤 성당 열쇠를 맡겼는데 한 집은 성전 문을 열고 닫는 권한을 그리고 다
른 한 집은 성전 문의 열쇠를 보관하는 권한을 주었다.
이것은 현재도 유효하게 적용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종파들이 내부 성전의 소유권과 관할권을 놓고 다툼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열쇠를 가지고 있는
이슬람 신자가 실질적인 무덤 성당의 주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덤교회정문앞에서 내가 찍어준 기념사진.
예수님의 시신이 뉘였던곳
예수님 무덤위의 천정 돔 12사도를 상징
성당 문을 들어서서 바로 오른쪽. 오른쪽 보이는 계단이 골고타로 오르는 계단
(왼쪽 문은 골고타 언덕의 아래로 아담경당으로 들어가는 문)
왼쪽 벽면쪽에 나 있는 골고타에 오르는 계단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출입문쪽 오른쪽에 보이는 그 계단 - 골고타에 오르는 계단, 계단 출입구 중앙 위쪽엔 성지관구 십자가
십자가의 길 제 10처와 11처 (예수님께서 옷벗김을 당하시고, 못 박히신 곳) : 가톨릭 소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 망나니에게 사형 집행을 선고하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망치를 내려친다.
이 지점은 카톨릭 소속이며 제단 오른편 프란시스코 수도회 예배당 앞의 성화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슬픈 눈으로 내려다 보는 성모 마리아 모자이크가 보인다.
비아돌로로사 제11지점에 세워진 성묘교회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소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장소가 구별되어 있다.
이 성화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소를 기념,그곳 벽에 그린 작품이다
12. 십자가의 길 제12처소-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운명한 곳
골고타. 12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12처의 자리는 그리스 정교회의 소유이다.
골고타. 12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골고타. 12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골고타. 12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골고타. 12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왼쪽에 성모마리아, 오른쪽에 세례요한
12처 제대 (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12처, 십자가가 세워졌던 바위 구멍 (출처- http://blog.paran.com/)
12처, 둥근 원 안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졌던 골고타의 바위를 만져볼 수 있다.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성소 휘장이 한 가운데가 찢어졌다.
(눅 23:44-45) 그리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렸다.
이러한 일련을 사건을 보여주기 위하여 갈라져 있는 바위를 유리로 덮어서 보여주고 있다.
무덤교회천정 돔
다윗성문근처의 각국군인들
여기는 또 다른 군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