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루 건너 구름에 달 가듯이

손주들을 위한 화성성행궁문화축제 나들이

왕언니 2011. 10. 10. 15:01

 

 

 수원과 제일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이상하게 수원나들이를  거의 안했습니다. 

 신갈오거리를 지나면 거의 직진만으로 교회 가는길이 정해지니 좌회전을 해야하는 수원쪽을 도외시?하는것 같습니다.

 아님 등잔밑이 어두워서 그런것 같기도 하구요.

 

 그런데 지난 토요일 에는  바쁜 와중에 잠깐  짬을 내어 화성문화축제 <님이 오십니다>를 구경 갔습니다.

 님이란 앞 스크랩에서 보셨듯이 화성을 축조한 정조대왕[이산]을 지칭하는말로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합장묘 융능을 참배하러 오는 것을 수원시민의 날과 합해 시적으로 표현하여

 화성축제의 이름을 <님이 오십니다>로 정한거랍니다.

 

 처음엔 우리 부부만 가려다가 유찬이 놀토인것이 생각나  요즘엔 모든게 체험학습화 ?하는게 대세라

 아침에 전화하니 마침 온식구가 안산에 결혼식이 있어  가야한다더군요.

 안산이면 수원과 30분거리에 있으니  애들만 떨궈 놓고 혼자서 결혼식에 가는걸로 이야기가 되었는데

 성산동에서 수원까지 오는길이 ,주말행락인파가 몰리는 10월의 첫 주말 이라 만만치 않았나봅니다.

 10시반쯤 출발한다기에 우리도 11시쯤  출발하여 네비가 시키는대로 신풍초등학교 임시주차장으로 향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10시에 시작했다는 행사는 이미시작하여 한시백일장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정조는 어려서부터 글을 읽고 짓는일에 재주와 관심이 있어 조선왕조에서 가장많은 저서를 남긴 임금이지요.

 

 

 

 

그의 호가 弘齋인데  그를 기리는 홍재미술대전 1회때  한글부문에 궁중 상궁들의 글씨인 봉서[편지글]로 특선한적이 있습니다.

다 지난 이야기지만....

벌써 10년전 일이네요.  계속 썼으면 지금쯤 심사위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데....^^

[실제로 제 후배들이 심사위원 되었습니다]

 

 

 

 

 

다음은 과거에 장원급제를 한 사람에게 임금이 상을 내리는 행사가  바로 옆 봉수당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정조로 뽑힌 모델의 용안?이 제법 그럴싸 합니다.

대사는 없지만 단역배우 못지 않았습니다.

 

 

봉수당 앞에 있는  이글씨는 정조의 친필입니다.힘이 있지요? 얼핏 훗날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 냄새가 나기도 하고...

 

행궁(行宮)이란  임금님이 궁밖으로 행차를 할때 임시적으로 머물던 곳으로 별궁 또는 아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고려 및 조선 시대의 역대 임금들은 본궁 이외에 전국에 행궁을 세우고 지방순행시 처소로 사용하거나

전란 발생시 피난처로 사용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화성행궁도 정조시대 때 사용하던 행궁의 일부 입니다.

이곳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1789년 10월에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이듬해 2월부터 1800년(정조 24년) 1월까지 11년간 12차에 걸친 능행(陵幸)을 거행하였답니다.

효심이 지극한 정조는 능행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였다고 합니다.

 

일제시대에 경찰서,병원등 각종 지장물및 사무실로 로 이용되다가

1995년부터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1996년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1997년 봉수당 상량식을 거행하고,

2006년에는 행궁앞 광장부지에 대한 시굴조사가 이루어져 명당수 호안석축과 신풍교 교대지가 확인되어 2007년에

새롭게 복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주소는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6-2번지 일대....

 

 

   궁중모습을 재현할곳으로 세트장 말고 이만한 곳도 없어 대장금촬영에 유용하게 쓰여  더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연휴말고도  정조대왕 능행차 재연때문에 축제장으로 오는 길을 다 막아  아이들이 오는게 많이 늦어졌고 결국 가까운곳에  

   아이들을 내려 놓고 주환이는 안산결혼식장에 가는 바람에 만나기로 한 신풍초등학교 주차장까지 걸어서  왔습니다.

 

 

                                   열두시가 넘어버렸지만 닥지 인형 체험장에서 14000원을 내고 약식 인형만들기 [옷입히기]를 하고

                                

                              유찬이의 왼쪽 눈이 부어 있습니다. 어제 야구공에 맞았다네요.  멍이 들까봐 계속  언 <설레임>으로 얼음찜질을 했습니다.

 

 

 

 

축제에 빠질수 없는 먹거리를 위해 음식축제도 같이 열리고 있었는데 시킨 음식중 자장면만 수타였고

짬봉은 기계면 이었습니다.

 

 

수원하면 빠질 수 없는 수원갈비 양념 시연도 하고 있었는데....

 

수원왕갈비의 유래는

조선의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성하고 수원을 자립기반을 갖춘 도시로 육성하기 위해

둔전을 경영하며 농사를 잘 짓도록 농민들에게 종자와 소를 나누어주며
수확기가 되면 수확의 절반을 거둬들이고 소는 잘 키워 3년에 1마리씩 갚도록 했다는데
점차 늘어난 소를 팔기 위한 장소가 필요했고 이때 자연스럽게 형성된 우시장이
수원 우시장의 역사를 남겼고

 

소를 이용한 음식도 다양하게 발전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수원갈비 수원왕갈비는 수원의 향토음식으로 가장 유명한데

1940년대 수원 영동시장 이귀성씨가 화춘옥이라는 간판을 걸고 시작한 것이
바로 ‘수원갈비’의 시초였답니다.

 

그런데 너무 비싸서 저는 아직도 한대에 3만원이 넘는  오리지날 한우 왕갈비를 먹어보지못한것 같습니다.

수입고기로 만든 짝퉁 왕갈비는 먹어봤지만...^^

 

날씨가 화창하다못해 너무 더워서 분수가 시원해보입니다.

 

 

 

 

 

 

익선관을 벗은 왕이 백성?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혜경궁홍씨

                                 

 

 

 

 

                                 마지막에 외국인들이 행렬에 많이 참가하고 있었는데  수원근처의 외국인 노동자와 투자자들인것 같았습니다.

 

                                    끝도 없는 저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동원했나? 했더니 수원근처의 정보고등학교학생들과 군인들이 동원되었다 합니다.

                                    허긴 알바를 썻다면 그 비용이 어마어마 하겠지요.

 

                                 

 

                                           유진이가 찍은 대장금 모델사진입니다.

 

                                 

 

 

 

 

                                 

                                 

 

 

 

 

 

유찬애비가 결혼식장에서 신풍초등학교 주차장으로 우리를 만나러 오기를 기다렸지만 

시가행진과 다른 행사가 끝나는 5시까지 진입금지가 되어 한없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리는 행궁 안으로 들어가 정조대왕의 이동궁궐인 행궁의  이곳 저곳구경을 하고

유찬이와 유진이는 뒤주속에 들어가보는 체험까지 하고도 한참이나 지나 창용문 근처에 주차하고  걸어 왔다고 했습니다. 

 

도로통제가 풀리기를 기다려 어딘가에서 저녁을 먹어야하는데 ....

결국 밖에서 사먹는것 보다는 우리집에 가서 먹자로 낙착이 되어

우리차를 타고 주환애비의 차가 주차되어있는 창용문까지 갔는데

여기도 늘어선 줄이 만만치 않아 차라리 내려서 걸어 주차장에 가라 하고

유진이만 데리고 먼저 우리집으로 왔습니다

 

 

 

 

 

 

 

 

 

 

 

 

 

덕분에 유찬이는 꿈에도 그리던? 무예24기 연습장면을 보고 왔답니다.

실제 공연?은 밤 7시 넘어 시작되기 때문에 옷을 얇게 입었고 ..갈길이 멀고 ..이산가족이 되었기에...

 

 

 

 

  이 멋진 장면을 못봤답니다.

  정말 등잔밑이 어둡다고 훌륭한 세계문화유산인 화성 을 너무 무관심했던것 같습니다.

  가까운 시일내에 다시 한번 성곽도 걸어보고 화성열차도 타보고 해야겠습니다.